이상영 선흘2리 전 이장은 20년간 학교에서 지리와 사회를 가르치다 제주로 이주했다.선흘2리에 야생동물 사파리를 조성하는 제주동물테마파크에 반대하며,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후 이장으로 선출됐다. 주민들과 함께 전임 이장과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 측의 비위를 밝혀내는 성과를 올렸다. 1973년생인 그는 제주 지역 첫 70년대 생 '육짓것' 이장이다. 3년 동안 이장으로 일하면서 제주 지역 마을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의 마지막 '이장일기'다. 수고 많으셨습니다.오랜 고민
올해 초 선흘2리 마을총회에서는 정원축제 예산이 통과되었다. 총회결과에 따라 10월 마을 정원축제를 앞두고 실무를 책임지는 8명의 주민으로 구성된 준비팀이 꾸려졌다. 일주일에 두 번 밤늦은 시간까지 치열한 회의를 진행했다. 작은 마을에서 처음 시도하는 행사이기에 마땅히 참고될 만한 사례도 별로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으로 준비팀이 고생을 많이 했다.축제의 주제는 ‘정원’이다. 누구의 집에나 마당과 정원이 있는 한라산 중산간의 우리 작은 마을에서는 골목길을 따라 산책하는 여행자들이 돌담너머 주인들이 가꾼 정원을 보고 이내 발걸음
며칠간 쏟아붓던 장맛비가 잠시 주춤하자 아침부터 시끄러운 예초기 엔진 소리가 마을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여름 시골은 풀들과의 전쟁이다. 잠시 해가 얼굴을 내밀 때 곧바로 풀을 제거하지 않으면 긴 장마에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주저하는 사이 풀씨라도 생기면 예초 후 곧바로 다시 올라오기 때문에 그 전에 얼른 제거하는 게 상책이다.풀들이 자라는 걸 보면 정말 경이롭다. 코딱지 만한 우영팟에 쪼그려 앉아 이른 봄부터 열심히 검질을 맸지만 흘렸던 땀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올라오는 풀들 때문에 허리가 부러진다. 요즘처럼 매일 비가
“우진동에 사시는 김씨 어르신도 찾아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아이고. 니는 모르면 말도 마라. 그 집은 개가 하도 짖어서 들어가지도 못한다. 김씨는 우리양반 갑장이라 내가 챙겨보는데 요즘 얼굴도 못봤다. 니가 가도 절대 못본다.”“형님. 근데 올해는 마을대청소 안하냐고 누가 물어보던데?”“지난해 대청소한다고 방송을 그렇게 해도 나오지도 않는데... 이 무슨!”“며칠전에 청년회가 마을길에 풀을 깎았는데, 풀을 깎았으면 훅 부는 걸로 치우면 되는데 저렇게 그냥 어지럽혀 놓고 갔다.”벌써 2시간째다. 50대 막내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아침에 부랴부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일찍 법원에 도착했다. 재판이 열리는 302호 법정은 아직 안내 모니터조차 켜지지 않았고, 한 법원 직원은 덜 마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황급히 사무실로 들어갔다. 법정 앞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잠시 후, 제주사회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이번 사건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서 대표가 여유롭게 4층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선고를 앞둔 피고인임에도 연신 웃으며 일일이 호화 변호인단과 서로 덕담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 잠시 호흡이 가빠졌다.제주지방법원 302호 법정 앞 의
밤새 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리는 꿈을 꾸었다. 물론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힘들 바에야 차라리 속 시원히 빠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서울에서 고3 담임을 연속으로 내리 맡으면서 스트레스로 생니가 빠지는 걸 불쌍히 여기신 부인님의 결단으로 제주에 내려오게 된 나에겐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에 버금가는 악몽 중 하나이다.제작년 봄에 한 업체에서 마을회로 연락이 왔었다. 우리마을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제주시 담당부서에서 리사무소로 한 번 가보라고 권해서 연락했단다. 며칠 후 음료박스를 들고
풍경1. 뿔쇠오리와 마라도 고양이요즘 우리 마을 핫이슈는 섬에서 섬으로 이주(?)해서 세계자연유산본부에 주소가 생긴 ‘마라도 고냉이’들이 아닐까한다. 최근 문화재청과 제주세계유산본부가 마라도에 살던 고양이 마흔 일곱 마리를 제주세계자연유산본부 뒷 마당으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세 고양이들의 충성스런 집사이자, 마을 곶자왈에 멸종위기조류 생태조사 뿐 아니라 그걸 찍어서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거문오름마을의 산새들”이라는 엽서북까지 판매하고 있는 아마추어 조류 사진가로서 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조심히 밝혀 본다.언뜻 믿기 힘들겠지만 마
지난 2월 4일 폭설로 한차례 연기되었던 정기총회가 무사히 끝났다. 총회를 끝내고 한동안 맥이 풀려버렸지만, 바야흐로 봄은 시작하는 기운을 지니지 않았던가? 잔디가 쏙쏙 올라온다. 이제 이장도 새로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올해 마을회는 마을 자체 돌봄사업을 한 번 추진해보기로 했다. 마을이 이장이 되고 이렇게 저렇게 주민들을 만나다 보니 어려운 형편을 외면하기 힘든 주민들이 꽤 있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하지만 마을은 그래도 이웃을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부자들이 선심처럼 내놓는 시혜적인 돈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
‘선흘2리’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제주동물테마파크’ 관련 기사가 수 백개가 검색되지만, 사실 마을 주변에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이외에도 크고 작은 관광 시설들이 많이 있다. 지가가 저렴한 중산간에 일찍부터 자리 잡았던 시설들인데, L업체도 그 중 하나였다. L업체는 10여년 전부터 녹차밭을 테마로 운영하다가 최근 새롭게 농어촌관광휴양단지로 탈바꿈하려고 시도하고 있다.오늘은 선흘2리 마을회와 L업체가 2021년 초부터 협의를 진행해 지난해 12월에 상생협약 체결을 하게 된 2년여의 과정을 ‘전지적마을회시점’에서 돌아보려고 한
얼음을 넣은 보냉병에 음료를 담고, 부엌선반에 아내가 숨겨놓은 간식들도 살뜰히 찾아 챙긴다. 달콤한 초콜릿 과자면 더 좋지만, 텃밭에서 수확한 방울토마토나 먹다 남은 수박도 괜찮다. 무더운 날씨지만 긴 옷을 껴입고 챙이 넓은 모자와 장갑까지 낀 채 큰 가방을 메고 인적이 드문 마을숲으로 도둑고양이 마냥 살금살금 기어들어간다. 70-80년대 험한 시절이었다면 간첩으로 신고되기 딱 좋은 모양새다.요즘 MZ세대들에게 다시 유행되고 있는 MBTI(성격유형검사)중 타고난 I유형(내향형)의 대표적 인간형인 나는 사람들과 만날라치면 이틀 전부터
올해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지 15주년을 맞이한다. 제주도는 당시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의 권고에 따라 세계자연유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주민참여 방안을 마련하겠노라고 약속하며 ‘제주특별자치도 유네스코 등록유산 관리에 관한 조례’에도 명시했다. 하지만 정작 15년이 지난 지금, 지역주민들은 참여 주체로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할까? 선뜻 ‘예’라고 답하기 어렵다.올해 들어 선흘2리 주민들과 마을에 위치한 세계자연유산본부의 관계는 시작부터 어긋나고 있다. 마을 주민의 대표인 이장으로서의 문제 제기가, 세
우리마을 사무장은 지난 11월 말부터 한해 마을 살림을 결산하는 등 정기총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새 예산안과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총회 안건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준비하는 건 이장의 몫이다. 우리마을 향약에는 해마다 1월에 정기총회를 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확산으로 어쩔수 없이 6월에야 비대면 총회를 진행했었다. 올해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2차까지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완료하셨고, 새롭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안건들이 많아 마을복지회관에서 총회를 진행하기로 개발위원회에서 결정되었다.향약에 따라 총회 7일 전에 마을문
안녕하십니까? 이석문 교육감님. 저는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선흘2리 마을 이장 이상영입니다. 현재 54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작은 선인분교장에 저 역시 딸을 보내는 학부모입니다.저는 서울에 있을 때부터 이석문 교육감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2013년도에 출간된 ‘유쾌한 제주교육의 변화와 혁신! 듣고, 즐기고, 소통하자’라는 책이 서점에 나오자마자 주변 학부모들과 함께 구입해 읽었고 당시 ‘들엄시민’(제주어로 ‘듣다보면’이라는 뜻) 영어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서울에서도 TV를 보며 교육감님의 역전 당선
11월 23일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심의회를 앞두고, 마을회에서는 제주도 투자유치과에 한 달전부터 행정부지사 면담과 마을대표인 이장의 심의위 참여를 수 차례 요구했다. 이번 심의위에서 사업기간 연장이 부결된다면 사실상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은 마무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장이 되고 난 이후에는 최대한 행정과 갈등보다는 소통하려고 노력했지만, 행정은 늘 거절하기 바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중하게 거절한다는 점이다. 공문으로 보내오는 거절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결국
이 코너에 무거운 싸움(투쟁)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아도 무겁고 심각한 기사들이 많은 요즈음인데, 굳이 독자들 마음에 돌덩어리를 얹어 드릴 필요는 없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 편하게 읽고 웃음 한 번 지을 수 있도록 초보 이장 경험담을 최대한 짧게 풀어 보려고 나름 고민한다.근데 이번 달에는 싸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가 7월부터 공사를 슬금슬금 재개하는가 싶더니, 동시에 사업 찬성 인사들이 대책위원과 마을을 상대로 고소와 소송을 걸어왔다. 그리고 10월 29일, 사
“이장님, 안 바쁘요?”“아..네... 괜찮습니다”“그라마 내 하나 물어보입시다. 이거는 어떻게 하면 좋겠으요?”A 할매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전화를 하신다. 전화를 받기 전엔 침을 꼴깍 삼키며 각오를 좀 해야 한다. 할매와의 통화는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걸걸하고 화통한 부산 할매인데가 일면 꼼꼼하기까지 하셔서, 내가 알 수 없는 노인회관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신다. 어느댁 어르신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알려주시기도 하고, 도로 옆 제초작업을 해놓고 풀을 널브러뜨리고 안치우고 갔다고
올해는 장마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릴 거라는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7월 이후 역대급으로 짧게 흐지부지 끝나는 듯했다. 맑은 날을 좋아라하는 나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장마 후 당연히 햇살 쨍쨍한 폭염이어야 할 8월이 뒤통수를 쳤다. 반짝 무더위인가 싶더니 8월 초순부터 지금까지 때 이른 가을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중산간 350고지에 위치한 우리 마을은 지형적인 이유로 해안지역보다 훨씬 비가 많이 내렸다. 마을 인근에 설치된 기상청관측자료시스템(AWS) 자료를 확인해보니 8월 중 비 내린 날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8월 25일)
여름 폭염이 시작되었다. 무더위에 한방 먹어서인지 띵띵한 머리는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무거워진 머리만큼 이장일기 내용마저도 자꾸 무거워져 여러 차례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약속한 마감 날짜를 넘겨버리고 말았다. 무더운 여름엔 거하게 차린 무거운 밥상보다 가볍고 시원한 국수가 당기는 법! 그래서 이번 달에는 무더위에 열무김치 국물에 국수를 대충 말아먹듯 최대한 신변잡기적이며 가벼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제목은 이장 사용설명서!한때 ‘내 몸 사용설명서’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사용설명서는 어떤 제품을 사용할 때 도움을
길일인 날이었나 보다. 검찰총장 출신 윤 모씨가 대권 도전을 선언해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6월 29일! 선흘2리 마을회는 세계자연유산센터내에 직영하는 오름보러가게 개업식을 열었다. 마을가게를 가오픈해서 운영한지 딱 2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야외에 모인 주민들과 손님들이 함께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마을가게의 대박을 기원했다.사실 개인적으로는 개업식을 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다. 인생에서 남자, 어른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제일 힘든 사람이 아마 바로 나일게다. 그래서 몇 안되는 친구들마저 대부분 여성들이다. 게다가 누군가에 아
요즘 마을 어르신들의 핫이슈는 ‘코로나19 예방백신을 접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이다. 지난 4월에 이미 마을 사무장님이 75세 이상 어른들께 일일이 전화드려 동의서를 읍사무소에 전달했지만, 선흘2리는 접종 순서가 제일 마지막에 배정된 탓에 6월 1일에야 맞게 되었다.연로하신 어르신들이라 제주도에서는 관광버스를 대절했다. 75세 미만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6월 3일까지 직접 신청을 해서, 개인별로 인근 병원에서 백신 접종을 맞게 된다. 부작용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아서인지 접종을 포기(거부)하시는 분들도 있고, 포기했다가 다시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