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살던 마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아이는 부모님이 슈퍼를 운영하시는 일명 슈퍼집 아이였다. 부모님을 아무리 졸라도 소용없어서 몰래 겨우 먹을 수 있었던 달달구리한 불량식품은 물론, 무더운 여름에 침까지 흘리며 지켜봐야 하는 빨간 쮸쮸바. 누구나 한번쯤은 이 다음에 커서 슈퍼집 사장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이 얘기를 하느냐고? 어쩌다 이장이 된 내가, 이제 어쩌다 사장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사연을 풀어보고자 한다.우리 선흘2리에는 마을의 자랑인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이 있다. 그리
누구에게도 말 못한 고민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선흘2리 이장으로 임명되면서 주위 분들로부터 과분한 축하와 격려를 받았지만, 정작 3개월 내내 마음이 심란했다.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결론이 날 때까지는 언급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괜시리 언급했다가 엉뚱한 소문이라도 나면 또다시 마을이 다시 혼란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며칠 전 고민하던 일이 결론이 났고, 이곳을 통해 털어놓는다.상황은 이렇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기
지난 2월 5일 오전, 긴급하게 이장회의 소집 문자를 받았다. 첫 회의인지라 인사도 나누고 분위기도 익힐 겸, 오후로 예정되었던 주민과의 선약을 급히 미루고 조천읍사무소로 차를 몰았다. 회의실에는 조천읍 12개 리(里) 중 8개 마을 이장들과 조천읍장을 비롯한 간부직원들이 모여있었다. 회의는 코로나19가 재확산 되는 분위기에서 마을포제와 관련한 제주도 방역 지침을 이장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조천읍 12개 마을 중 9개 마을에서 해마다 정성스럽게 마을제가 봉양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육지
2007년 1월 27일, 서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 한강변 올림픽대로에서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태운 승용차가 멈춰서는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눈이 오면 잘 산다’라는 어르신들의 위로 같은 덕담을 들으며 우리는 어찌어찌 결혼식을 치러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하는 나와, 먼저 일을 저지르고 후회 따윈 하지 않는 한 사람은 이후 10년이 넘도록 한집에서 서로 적응하며 살아오고 있다.선흘2리 이장으로 당선된 뒤 우여곡절 끝에 조천읍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지난 2020년의 마지막 날에도 폭설이 내렸다. 폭설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