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예진
[이문원의 문화비평]= 손예진·이민호 주연 MBC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첫회부터 KBS2 ‘신데렐라 언니’에 뒤지더니, 3·4회차에선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10.1%(AGB닐슨) 시청률까지 떨어져 한 자릿대 하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치고 올라오는 SBS ‘검사 프린세스’에 밀려 곧 ‘수목극 꼴등’이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의외인 일은 아니다. 손예진은 원래 TV드라마가 잘 안 된다. 데뷔작인 MBC ‘맛있는 청혼’(2001) 이후 제대로 된 게 없다. SBS ‘스포트라이트’(2008)처럼 ‘박살‘난 것들이 많다. 팬층이 분리돼있기 때문이다. 손예진은 20, 30대 남성층의 공주님이다. 영화의 주 소비층이다. 그러나 TV드라마 시청률을 쥔 건 중장년 여성층이다. 그래서 ‘영화 흥행보증수표-TV드라마 시청률부도수표’가 됐다.

여기까진 그렇다 치자. 세상에 천하장사란 없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살아가는 거다. 문제는 근래 들어 손예진이 영화에서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전까지 손예진은 ‘150만은 해주는’ 배우였다.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는 ‘무방비도시’(2008)까지도 160만은 넘겼다. 그러나 ‘아내가 결혼했다’(2008)부터 문제가 생겼다. 개봉 전 300만은 너끈히 넘기리라 예상됐던 영화다. 뚜껑을 열자 200만에도 채 못 미쳤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선 드디어 보증수표마저도 깨졌다. 150만은커녕 100만 명에도 채 못 미쳤다. 94만5938명을 동원했다. 어떤 기준으로도 실패다.

물론 동시기 ‘2012’에 밀려 기를 못 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말이 안 된다. ‘아바타’ 천하에서도 ‘전우치’는 600만 이상을 모았다. 무주공산보다 오히려 초대박이 나올 경우 관객이동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2012’를 이미 본 관객들이 ‘백야행’을 차선책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그만큼 손예진은 집객력이 떨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이제 손예진은 영화도 TV드라마도 모두 안 되는 상태에 놓여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쉽게는 영화 선택 탓이다. 아무리 영화 흥행보증수표라지만, 사실 손예진도 만능은 아니었다. 최루성 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에 국한해 흥행몰이하던 배우다. ‘연애소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작업의 정석’ 등 그녀 최고 히트작들은 모두 그리로 몰려있다. 그러나 일처다부제를 주장하는 ‘아내가 결혼했다’는 그녀를 소비하는 관객층 입장에서 ‘너무 멀리 나간’ 콘텐트였고, ‘무방비도시’와 ‘백야행’은 애초 그녀 영역이 아니었다. 박중훈이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한 ‘세이 예스’를 아무도 안 봤듯, ‘백야행’을 관객들이 외면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만 그칠 일이 아니다. 손예진도 로맨틱 코미디, 최루성 로맨스를 하고 싶지 않아 안 한 것은 아니리라는 것이다. 점차 자기 장기를 펼칠 수 없는 환경이 돼가고 있다. 애초 손예진이 뜨게 된 배경 탓이다.

일단 손예진의 인기비결을 생각해보자. 언급했듯, 그녀는 단연코 젊은 남성층의 아이콘이었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소녀부터 섹시 코드를 입은 여우까지 남성이 좋아하는 이미지는 다 덮어썼다. 그러나 그런 인기와 실질적 티켓 파워는 다르다. 영화는 점차 데이트 코스화 돼가고 있다. 최루성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는 그 중에서도 더 심한 데이트 종속형 장르다. 그리고 데이트 종속형 장르에 있어 실질적 티켓 구매권은 여성에 있다. 여성이 이끌거나, 최소한 여성의 동의가 있어줘야 한다.

또한 굳이 데이트가 아니더라도, ‘내 머리 속의 지우개’나 ‘작업의 정석’ 같은 영화를 남성 혼자, 또는 남성들끼리 보러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여성은 동성끼리 로맨스 영화 관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손예진 영화의 중박급 행진은 젊은 여성층이 반응해줬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예진의 어떤 부분이 젊은 여성층을 자극한 걸까. 단순하다. 동경심리다. 손예진이 보여준 모습은 대부분 여성이라면 한 번쯤 동경했을 법한 것들이다. 비 한 번 맞았다고 앓아눕는 병약 미소녀 역할은 사실상 여성의 궁극적 로망이다. 남성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헌신을 마다할 여성은 없다. 한편 자신의 이성적 매력을 무기로 뭇 남성을 유혹하고 요리하는 소악마 역할 역시 여성을 자극한다. 병약미소녀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로망에 속한다. 한 마디로 남성이 갈구하는 욕망은 상당부분 여성의 동경과도 맞닿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예진은 이제 그런 동경심리를 자극하지 못한다. 손예진은 나이가 들었다. 올해 29세, 곧 30대로 넘어간다. 일단 여리디 여린 병약미소녀를 재탕할 수 없게 됐다. 병약함은 소녀성이라는 코드 내에서만 효력을 발휘한다. 30대 언저리에 앓아 누으면 그저 건강이 안 좋은 여자로만 보인다. 되레 매력 감퇴다.

30대에 여전히 남자 사냥이나 하고 있어도 곤란하다. 그런 역할은 20대 전반까지가 피크라는 걸 여성층도 다 안다. 그 나이를 넘어가면, 안쓰러워 보인다. 정 유사한 캐릭터로 가려면 김혜수처럼 압도적인 성적 매력으로 남성을 지배해버리는 캐릭터가 돼야한다. 그러나 손예진은 애초 압도가 아니라 남성을 이용하는 캐릭터였으니 그 역시 불가능한 방향이다.

그래서 최루성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어도 못 했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더 이상 맡을 수 없게 됐다. 스릴러 장르, 미스터리 장르 등으로 영역을 바꿔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여타 장르에선 쌓아놓은 경력도 없고 신뢰도 없었다. 그래서 도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돌아갔지만, 동경심리가 꺼진 뒤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내가 결혼했다’ 같은 극단적 콘텐트밖에 없었다. 소악마 로맨틱 코미디에 나이를 얹어 진화시키면, 결국 탄생하는 건 ‘괴물 대소동’뿐이다.

그리고 이제 ‘개인의 취향’이 등장했다. 지난 수년 간 선택들보다는 낫다. 상식적이다. 여배우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동경심리 자극’에서 ‘공감 모드’로 전환해줘야 옳다. 어차피 겪을 것 다 겪고 초연해졌을 법한 나이다. 굴욕적인 모습, 신경질적인 모습 등을 보여줘 20, 30대 여성층의 공감을 사야한다. 처음에 손예진과 비슷한 이미지였던 김하늘이 그런 전략을 잘 펼쳤다. 우아함의 상징과도 같았던 심은하마저도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털털녀로 전환했다.

‘개인의 취향’은 이런 공식에는 잘 맞는다. 연애숙맥에 자기 치장도 잘 하지 않는 엉뚱녀 박개인 역을 맡았다. 아무리 TV드라마에 약한 손예진이지만, 이 정도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주면 관심은 끌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못했다. 반향이 일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해,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동경심리 자극에서 공감 모드로의 전환은, 시점을 잘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 데뷔로부터 4~5년 내가 유리하다. 심은하의 ‘미술관 옆 동물원’은 MBC ‘마지막 승부’로부터 4년 뒤였다. 김하늘의 ‘동갑내기 과외하기’도 ‘바이 준’으로부터 5년 뒤다. 인지도는 쌓였지만 아직 이미지는 고정되지 않은 시점이다. 나이로 봤을 때도 20대 초반 론칭에 성공했다 쳤을 때 20대 중반 언저리가 된다. 이도저도 아닌 시점이라 딱 적절하다.

반면 송혜교는 KBS2 ‘가을동화’로부터 8년이 지난 뒤에야 KBS2 ‘그들이 사는 세상’을 내놓았다. 이미지를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까지 왔을 때에야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안 풀렸다. 손예진도 마찬가지다. ‘맛있는 청혼’으로부터 9년이 지난 시점에야 간신히 망가졌다. 그간 같은 이미지를 너무 오래 팔아 전환이 안 됐다. 이제 와서 떡진 머리에 ‘츄리닝’ 입고 뛰어봤자 아무도 안 믿는다. ‘손예진이 망가졌네’로 끝나지, 배역이 와 닿진 않는다.

그렇다면 손예진 같은 경우는 향후 어떻게 커리어를 만들어가야 할까.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쌩쌩한 병약미소녀, 서른 언저리에 다다른 소악마는 어디로 가야할까. 막막하긴 하다. 본래 한끝 잘못 나가면 망치는 게 연예인 커리어다. 이 정도면 한끝이 아니라 큰 줄기 하나를 놓친 셈이다. 그만큼 되돌리기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제안해볼 방법은 있다. 자신을 성공시켰던 바로 그 이미지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대신, 그 동안 흐른 시간만큼 나이를 먹어 조금 변화한 형태다.

정확한 예는 아니지만, 할리우드 명배우 폴 뉴먼이 그랬다. 나이를 너무 의식해 지친 노년의 변호사 등 역할을 맡다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자 도로 돌아갔다. 1961년작 ‘허슬러’ 주인공 에디 펠슨의 ‘35년 후 모습’을 그린 속편 ‘컬러 오브 머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다. 그 뒤 다시 하락세가 따르자 ‘허드’ 등에서 보여줬던 젊은 반항아가 어느덧 60대에 이른 모습을 보여줬다. ‘노스바스의 추억’이다. 역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인기를 모았다. 젊은 시절 ‘하퍼’, ‘드라우닝 풀’ 등에서 분한 탐정이 30살 더 먹은 버전 ‘트와일라잇’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가다가 막히면 다시 돌아와서 ‘그 후일담’을 보여준다는 개념이었다.

손예진도 그런 발상을 해봄직하다. 어차피 자기 이미지가 고정돼 더 갈 곳이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본래 이미지로 돌아가 그 후일담을 들려주는 배역을 고려해볼 만하다. 예컨대 잘 나가던 작업녀가 결국 30줄을 넘긴 노처녀가 됐을 때의 모습이다. 예전처럼 잘 나가지는 못하게 되고, 여러 딜레마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성숙해져 가는 여우다. 병약미소녀가 30대를 맞이한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만큼 절망감은 덜해지고, 내면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서른을 넘기고도 여전히 세상물정 모르는 공주님 역할도 가능하다. 비슷한 패턴으로 에이미 애덤스가 ‘마법에 걸린 사랑’을 통해 스타로 거듭났다.
어찌됐건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 이제 와서 털털녀 변신은 아니다. 되레 환멸감만 불러일으킨다. 제3의 방식, 아직 한국 스타산업에서 제대로 검증돼본 적 없는 전환을 시도해볼 때다.

손예진에게는 그런 모험을 걸어볼 만한 저력이 있다. 손예진처럼 단명하기 쉬웠던 캐릭터가 벌써 10년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일이다. 그 10년 간 수많았던 청순가련-약삭여우 캐릭터 후배들을 제치고 살아남았다. 그만큼 손예진이라는 배우의 아이콘성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이를 믿고, 과감한 시도를 해보길 기대한다. 세상에는 공주님과 털털녀 둘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해서 왕자님과 공주님은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는 대중도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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