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도로를 탄다. 어느 곳이든 좋다. 까만 현무암 해안으로 밀려오는 옥빛 파도. 파도 사이에서 자맥질하는 잠수들의 모습…. 환상적이다.

지난 89년부터 해안절경의 관광 자원화를 위해 개설되고 있는 해안도로는 관광객들에게 독특한 제주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잠수들이 언 몸을 녹이던 불턱, 씨줄·날줄로 얽혀 있는 돌담과 밤바다의 불배…. 사람이 만드는 풍경이지만 이미 자연속에 녹아서 동화돼버린 또다른 자연의 모습이다. 차에서 내려 그 해조음에 잠시 몸을 맡기고만 있어도 제주에 온 것이 실감난다.

그러나 해안도로는 해안 생태계 파괴의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지금까지 건설됐거나 추진되고 있는 해안도로는 환경·경관 영향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환경영향평가법상 4km이상 도로를 만들려면 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자체에서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구간별로 도로를 건설한다. 이 때문에 법망을 피할 수 있다.

▲ 왜 난개발인가?=해안도로 개발사업은 오는 2010년까지 19개 노선에 153km를 건설한다. 관광자원화와 지역주민들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한다는 게 해안도로 개설 목적이다.

그러나 해안도로의 개발로 인해 자연생태계의 상생과 순환의 원리가 깨지고 있다. 공사과정에서 모래언덕과 환해장성이 훼손되고, 물골이 잘 발달된 뻘을 헤쳐 놓고 있다.

특히 모래언덕, 즉 해안사구는 바람에 운반된 모래가 해안식물에 붙잡혀 오랜 기간에 걸쳐 층층히 쌓여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해안방어기능을 갖고 있는 모래언덕이 훼손되면 모래교환이 차단되고 백사장의 모래가 계속 씻겨 내려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원시 어로문화 시설물인 원담과 포구, 해안 용천수, 도대불 등이 개발바람에 밀려 크게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애월읍 구엄리 속칭 ‘산바달’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하던 이곳도 해안도로 개설과정에서 거대한 암석으로 바닷가를 매립함으로써 먹돌과 조간대가 사라지는 등 옛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 해안방어 시스템이 무너진다 =성산읍 오조리에서 시흥리로 이어지는 구간, 구좌읍 하도리·김녕리, 조천읍 신흥리 바닷가는 모래언덕(砂丘)이 크게 발달한 곳이다. 모래언덕은 겨울철에 강한 북서풍을 타고 해변에서 운반돼 온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모래언덕은 모래공유 시스템이나 다름없다. 모래는 해변에서 모래언덕으로 날아오고 태풍이 불면 다시 모래를 해변으로 돌려준다.

해안방어 기능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모래언덕을 훼손하게 되면 해변의 균형이 깨지고 침식을 부추기게 된다.

그러나 99년 시흥리와 오조리를 잇는 2.9㎞의  해안도로가 개설되고 인위적인 제방이 들어섬에 따라 모래언덕이 크게 훼손됐다.

제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이와 관련 “무분별한 해안도로 개발을 중단할 것과 기존 모래언덕에 대한 복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침식현상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 '잦은 월파 현상, 그리고 조간대 훼손까지' = 구좌읍 월정리 ‘한모살'일대는 조금만 파도가 높아도 월파 현상이 나타나 피해를 주고 있다. 또 애월항 방파제 부근도 만조나 파도가 높을 때 바닷물이 인근 주택가를 덮치고 있다. 애월읍 하귀리 가문동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월파 현상의 원인으로 공유수면매립에 따른 조류변화를 꼽는다. 즉 무분별하게 공유수면을 매립하면서 해안도로를 개설해 조류변화를 가져왔다는 얘기다.

구좌읍 하도리 창흥동 지역의 경우에는 물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 하도리-종달리를 잇는  창흥동 해안도로는 94년에 완공된 것. 하도리 조간대를 가로질러 제방을 쌓고 수문 1개를 만들었다. 수문은  마치 숭어와 농어의  회유 방해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 같이 비쳐진다.

특히 제방이 축조됨으로써 조류의 흐름이 방해받고 있고 해양오염이 가중되고 있다. 간혹 바다에서 심한 악취까지 난다. 조류가 바뀌는 바람에 파래와 감태 등 해산물들이 밀려와 썩어가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석축을 쌓아 만든 해안도로가 개설된 후 해조류가 해안으로 밀려들어 아무리 치워도 끝이 없다”고 말했다.

해안도로는 성산읍 온평리 자연환경에도 큰 변화를 줬다. 가장 눈에 띄는 게 해송과 우묵사스레피로 가득한 해안가 식물군락이 훼손된 것이다.

보호가치가 큰 갯대추 군락도 마찬가지다. 갯대추 군락은 대정읍 일과리와 남원읍 태흥리, 한경면 용수리, 구좌읍 김녕리 일부 지역에만 자생한다. 그러나 한경면 용수리 지경의 갯대추 군락은 도로개설과정에서 크게 훼손되고 만다.

원시 어로문화 시설물인 대정읍 동일리 지경의 소금밭은 공사용 임시 야적장으로 쓰임새가 바뀌었고, 각종 원담과 용천수 등 옛 주민들의 정취가 살아있는 생활문화유적들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춰 아쉬움이 크다.

▲ 숭숭 구멍이 난 돌길을 걷고 싶다 =바닷가의 돌은 바다생물의 모태다. 바다에 돌이 없으면  해조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며 어족들은 어족대로 몸을 숨길 거처를 잃게 된다. 매년 투석사업을 하지는 못할망정, 그 귀한 돌을 캐낸다는 것은 마을 공동재산을 축내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집안의 흥망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대로 애써 가꿔 온 이 생업의 터전은 해안도로 개설과 함께 각종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황폐화되고 있다.

더욱이 개발바람에 밀려 삶의 흔적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최근에는 촌로들의 입을 통해서야 ‘그 때 그 시절’을 더듬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무분별한 해안도로 공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경운동연합은 △도로건설에 앞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환경영향평가 실시 △도로를 개설할 때 생태통로와 농경지 침수방지용 빗물 관로 설치 △지형조건을 무시한 절토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늦었으나 제주의 해안을 더 이상 지워서는 안된다. 애기달맞이, 갯메꽃, 쑥부쟁이, 순비기가 온갖 향을 피워 올리는 제주해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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