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위치한 큰넓궤 입구.
14일 제주포럼C와 함께 '해방 그리고 4.3' 제주 탐방에 나섰다.

제주4·3사건을 몸으로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곳, 학살을 피해 마을 주민들이 피신 장소였던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소재 큰넓궤다.

궤는 작은 자연동굴을 뜻하는데 큰넓궤라고 하면 크고 넓은 동굴을 의미한다.

큰넓궤는 4.3 당시 동광리 마을주민 120여명이 토벌대를 피해 동굴 안에 50일 동안 숨어 지낸 곳이다.

큰넓궤에 도착했을 때 입구는 철문으로 닫혀 있었지만 자물쇠는 채워지지 않았다.

▲ 큰넓궤 안 좁은통로를 지나 3~4m 정도 높이의 절벽의 모습.

동굴 안은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굴 속을 들어가는 것부터 수월치 않았다. 굴 입구는 한 사람만이 기어서 들어 갈 수 있을 만큼 비좁았다.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넓은 장소에 이어 절벽이 나오고 다시 한사람이 기어서 들어갈법한 좁다란 통로를 지나면 다시 넓은 곳이 나온다.

이처럼 캄캄한 공간에서 공포에 떨며 앞날을 걱정해야 했던 이름 모를 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 큰넓궤 굴 안에 있던 깨진 항아리 조각.
▲ 큰넓궤 동굴 속 4.3당시 은신하고 있던 마을주민들이 토벌대를 막기위해 쌓아놓은 돌무더기.

동굴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깨진 항아리 조각들과 바리케이트로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보였다. 이곳에 은신했던 마을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었다.

큰넓궤는 이제껏 봐왔던 굴의 모습과는 완연히 달랐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가슴이 시리도록 아픈 삶의 현장'이라고나 할까.

김은희 4·3전문위원은 "다행히 이 굴에선 희생자가 없었다"며 "아마도 사람들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곧 토벌대에게 굴의 위치가 발각되면서 숨어지내던 주민들은 다시 피신을 가게 됐다"고 소개했다.

큰넓궤는 당시 사람들의 공포와 답답한 심정을 적막감과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곳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큰넓궤를 나와 동광리에 위치한 '헛묘'로 향했다.

피신생활을 하던 마을 주민들은 굴이 토벌대에게 발각되자 대부분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길이었다. 토벌대는 이들을 모두 체포해 옥석을 가리지도 않고 정방폭포 위에서 집단학살을 했다.

▲ 동광리 6거리에 위치한 '헛묘' 모습.

사태가 진정된 후 정방폭포를 찾았을 땐 이미 시신의 뼈들이 뒤엉켜 구분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원혼을 달래기 위해 죽은 이들의 혼을 불러다 헛 봉분을 쌓고 묘지를 만든 것이 지금의 '헛묘'다. 동광리 육거리 인근 밭엔 4·3희생자 9명을 기리는 헛묘가 세워져 있었다.

4.3탐방을 마치자 자연탐방에 나섰다.

▲ 안덕면 동광리에 위치한 '동광 자연 돌다리'.

동광리 어느 숲을 지나 일명 '돌 다리'라 불리우는 다리가 보였다.

사람이 직접 쌓아 인위적으로 만든 것 처럼 보였지만 자연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한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태고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돌다리 위의 시원한 바람을 한 껏 마시고 '병악 오름'을 찾았다.

▲ 병악오름 모습.

'병악오름'은 크고 작은 두 개의 오름이 쌍둥이처럼 나란히 있어 '병악'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름을 올라가는 길목에서 부터 고사리와 삼나무, 소나무 자연림들이 무성했다. 시원한 바람과 자연을 느끼며 큰넓궤의 무거운 마음을 잠시나마 병악오름에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제주투데이>

▲ 병악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 본 마을의 모습.
<이보람 기자 / 저작권자ⓒ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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