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세계적 도공 14대 심수관(沈壽官)옹이 제주에 온다.

본관이 청송(靑松)으로 1598년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심수관옹의 선대들은 지금의 가고시마(鹿兒島)에 정착했다.

초대 당길(當吉)에서 지금의 아들까지 15대의 외길을 걷는 심수관가는 세계적인 도공 집안이다.

필지가 심옹을 만난 것은 1986년 12월 옹의 환갑을 맞은 해였다.

가고시마현 나이시로가와(苗代川)의 수관도원(壽官陶苑)에서 였다.

첫인상이 400년 넘게 가업을 전승해온 전통도예가의 가장다움이 몸 전체에 베여있었다.

훤칠한 키에 당당한 체구, 긴 턱수염과 부릅 뜬 눈이 그랬고 악수를 하며 내민 손의 큼직함에서 녹로(도자기를 만들때 사용하는 회전원반)에서의 창작과정을 연상할 수 있었다.

수관도원 앞에는 2기의 돌하르방이 있다.

들어오는 쪽의 돌하르방은 환영의 뜻으로, 나가는 쪽은 환송의 뜻으로 세웠다고 한다.

옹은 장난삼아 동네 꼬마들에게 돌하르방의 머리를 만지면 총명해진다는 말을 슬쩍했다. 그랬더니 꼬마들이 매일 만지는 바람에 머리쪽은 새까맣게 돼버렸다고 했다.

제주도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비록 일본 국적을 갖고 있지만 마을에 단군사당을 지어 예를 올리고 있는 심옹일가는 뿌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을 빚는 그에게 명품을 만드는 비법을 물었더니 무심무욕(無心無慾)의 자세로 임하면 '명품'을 빚게 된다고 한다.

옹이 프랑스 루블 박물관을 찾았을 때이다.

그 곳에는 일본의 도자기는 없고 우리나라 것만 진열돼 있었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도자기에 심취해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3일간 관찰했다고 한다.

결과 이들 작품들의 공통점은 화려하거나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여기에서 옹은 이들 작품이 명품인 것은 무심무욕으로 빚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점토에서 성형 가공 건조 등등으로 이어지는 창작과정에서 욕심은 금물이라는 것을 터득했다는 말이다.

옹은 정치나 사회도 과욕을 버리면 완만히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업계승 정신이 곧 창작혼이라고 말하는 옹은 귀화한 동포들에게도 귀감이 될만큼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헤어질때 써준 휘호가 생각난다.

원래 같은 뿌리인데 어찌 고향산천을 잊겠느냐는 뜻의 '본시동근 불망산고(本是同根 不忘山故)'.

그가 돌하르방의 고향을 찾아 와 특강을 한다.

무심무욕의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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