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소연.<뉴시스>
169㎝ 49㎏의 크고 늘씬한 몸매야 한복의 긴 치마에 가려진다고 해도 큰 눈, 오똑한 코, 시원한 입매 등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미인형 얼굴인 그녀가 한복에 이토록 잘 어울릴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탤런트 이소연(30)은 최근 막을 내린 MBC TV 판타지 사극 ‘닥터 진’(극본 한지훈·전현진, 연출 한희)에서 조선 말 최고 기생 ‘춘홍’을 열연하며 뛰어난 한복 자태를 뽐냈다.

한복이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여배우로 꼽힌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제가 서구적으로 생겼다는 것은 저 자신도 잘 알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사극을 잘 할 수 있을까’, ‘나한테 한복이 잘 어울릴까’하고 늘 의문을 갖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시청자 반응이 좋아요. 저로서는 정말 기쁘죠. 그러면서도 신기해 하고 있어요.”

‘닥터진’ 뿐 아니었다. 2010년 MBC TV 사극 ‘동이’에서 이소연은 ‘숙종’(지진희)의 사랑을 받아 나인에서 후궁이 되고, 곧이어 중전에까지 오르지만 결국 추락하고마는 ‘장옥정’을 통해자신의 연기력과 더불어 출중한 한복 스타일을 국내외에 한껏 과시했다.

장희빈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지난해 SBS TV 주말극 ‘내 사랑 내 곁에’의 여주인공을 거쳤지만 장희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춘홍을 제안 받았다. 이런 경우 상당수 배우들이 사극을 피하지만 이소연은 받아들였다.

“사극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어요. 장희빈과 춘홍은 캐릭터가 너무나 다른 데다 춘홍의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미래에 다녀온 것도 모자라 미래를 보는 눈까지 가졌죠. 다른 등장인물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모르는 것들을 저만 아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말할 때도 심각하고, 절실하게 얘기하게 되죠. 그런 것 하나하나가 연기자로서 정말 즐거웠어요.”

비중 면에서 춘홍은 장희빈의 몇 분의 일에 불과했다. 그래도 춘홍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비중이 적었지만 짧고 임팩트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고나 할까요.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다 보니 장희빈을 맡아 오랜 시간 많은 분량을 해내야 하면서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었죠. 예를 들면 신 하나를 놓고도 어떻게 해야 더 잘 연기할 수 있을까, 어떤 모습을 보여야 시청자들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등에 관해 스스로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었던 것들이요.”

2003년 사극 멜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감독 이재용)의 ‘이소옥’으로 데뷔하고, 장희빈으로 미모와 연기를 모두 인정 받았다. 그 동안 사극이 세 편에 불과하지만 이소연은 이상하게도 사극 퀸의 느낌이 강하다. 본인도 사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사극을 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입지 않는 의상을 입고 헤어를 하는 것이나 평소 하지 않는 행동이나 말투를 하는 것, 또 그런 환경에서 연기를 하는 것 등이 정말 신선하고 재밌어요. 연기자로서 진짜 연기를 한다는 느낌도 들구요. 그러다 보니 사극을 제안 받아도 별로 고민하지 않아요. 솔직히 바로 다음 작품으로 사극을 택하지는 않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언제든지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답니다.”

중전까지 한 장희빈과 기생 춘홍은 신분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그런 상반된 위치에 서있는 조선의 두 여인을 연기하다 보니 또 다른 재미도 쏠쏠했다.

“장희빈을 할 때는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늘 거느리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죠. 그런데 기생을 하다 보니 시중을 받기는 커녕 제가 술 시중을 들어야 하더라구요. 그래도 얘기 다 들어주고 받아주는 것을 해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구요.”

그러면서 더욱 절감한 것이 있다. “옛날에는 계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오히려 더 외로웠을 것 같아요. 장희빈은 지금도 생각하면 불쌍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요. 아들을 놓고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 죽음이 어느날 갑자기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준비해가는 것이잖아요. 게다가 사랑하는 전하가 나를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죠.”

그렇다면 장희빈과 춘홍의 한복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두 캐릭터가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던 것 처럼 그 캐릭터들이 입게 되는 한복들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장희빈의 궁중의상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며 위엄이 있다면 춘홍의 기생 옷은 세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로 카리스마와 신비감을 느끼게 했죠.”

사극이라 힘든 것도 많았다. “촬영 때마다 가채를 머리에 얹으면 몹시 무거워 목이 많이 힘들어요. 당연히 두피도 많이 상하구요. 또한 한복은 여러 겹을 입어야 하는 데다 팔도 길고, 치마도 길죠. 통풍도 잘 안돼요. 한여름에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려 온통 젖어요. 중간중간 휴식할 때 옷을 최대한 많이 벗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아예 포기해버렸어요.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좀 더 시원해진다는 것이 제가 터득한 한여름 사극 촬영법이죠.”

가장 아찔했던 순간도 한복 탓에 빚어질 뻔했다. 바로 좌의정 ‘김병희’(김응수)의 장자인 ‘대균’(김명수)을 끌어안고 강에 빠지는 신에서였다.

“안전요원들이 저쪽에서 대기하고 있고, 몸을 세우면 제 키로 충분히 발이 닿는 곳이어서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랐어요. 강 바닥에서 발이 한 번 미끄러지고 나니 몸을 지탱하는 것조차 안 되는 것이었어요. 가뜩이나 가채도 무거운데 한복 속치마, 버선까지 죄다 젖으니 정말 무거운 거죠. 저 멀리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이 보이는데 아무도 구하러 올 생각을 안 하더라구요. 다들 제가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며 연기 정말 잘한다고 감탄을 하셨대요. 그야말로 생명을 걸고 리얼한 연기를 하고 있던 셈이죠. 다행히 힘이 정말 많이 빠졌을 때 이상하다고 느낀 안전요원이 구해주셨어요. 물 밖으로 나와서 얼마나 울었는지요.”

이날 이후 이소연에게는 물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긴 듯하다. “제가 원래 수영을 좋아하는데 가족들과 강원도 홍천강으로 여행을 가서도 물에는 아예 못 들어가겠더라구요. 한 동안 물을 무서워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정말 이상하죠? 한복 때문에 죽을 뻔해놓고도 한복은 또 입고 싶네요. 호호호.”

정말 이소연은 ‘닥터진’ 속 춘홍처럼 미스터리의 여인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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