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을 상대로 ‘신사’가 일으킨 ‘반정(反正)’은 성공할 수 있을까.

11일 개봉한 장동건(40)의 한중합작 멜로 ‘위험한 관계’가 극장가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이병헌(42)의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의 유력한 대항마로 손꼽히고 있다.

‘위험한 관계’는 1930년대 번성한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삼각관계를 그린다. 장동건이 부호 바람둥이 ‘셰이펀’을 맡아 이야기를 끌어가고 중국어권 톱스타 장쯔이(33·章子怡)와 장바이즈(30·張柏芝)가 정숙한 자선사업가 ‘뚜펀위’와 재력가이자 사교계의 여왕 ‘모지에위’로 뒤를 받친다.

개봉일 하루동안 관객 2만6818명(누적 3만2535명, 12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모아 4위로 출발한 이 영화를 1000만 관객을 노리고 있는 흥행 1위 ‘광해’의 경쟁상대로 꼽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관객을 사로잡는 장동건의 빛나는 열연이다. 극 중반까지 모지에위를 품에 안기 위해 뚜펀위의 사랑을 놓고 위험한 내기를 벌이는 ‘옴파탈’, ‘나쁜 남자’의 모습은 선하고 반듯한 장동건의 기존 이미지를 잊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게임의 목표물이었던 뚜펀위에게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모습 속에서 다시 투영되기 시작하는 장동건 본연의 이미지는 무릎을 칠 정도로 절묘하다.

그 동안 ‘친구’(2001), ‘태극기 휘날리며’(2003), ‘태풍’(2005), ‘마이웨이’(2011) 등 남성적인 작품을 주로 해온 장동건의 변신 노력이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호우시절’(2009) 등 전작들에서 보여줬듯 감성과 심리 표현에 탁월한 허진호(49) 감독의 연출력과 어우러지며 빛을 발한 덕이다.

‘광해’에서 임금 ‘광해’와 왕의 대역을 하는 광대 ‘하선’을 1인2역한 이병헌(42)의 호연에 필적할 만하다.

여기에 8월12일 인기리에 종방한 SBS TV 주말극 ‘신사의 품격’에서 외모, 능력, 매너를 모두 갖춘 ‘도진’으로 20~40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린 장동건의 2개월만의 신작이라는 점은 ‘광해’에는 없는 강점이다.

여성 관객들이 장동건 때문에 이 영화를 찾게 된다면 남성 관객들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있다. 바로 중국의 대표 미녀배우인 장쯔이와 장바이즈를 한 작품에서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두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는 점도 행복하다.

도발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역할에 어울릴 것 같은 장쯔이가 뚜펀위, 한국 영화 ‘파이란’(2001)의 청순함으로 기억되는 장바이즈가 팜파탈인 모지에위를 연기한다는 의외성이 놀랍지만, 그녀들은 신기하게도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게다가 가슴 절절한 멜로가 그리워지는 계절에 상영되는 멜로물이라는 점도 구미를 돋게 한다.

덧붙여 당시 유럽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상하이의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등장인물들의 고급 의상, 호화로운 대저택, 파티로 대표되는 품격있는 생활상 등이 스크린 가득 펼쳐져 시선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가장 큰 약점은 상영 규모다. 이 영화는 개봉일에 330개관에서 1707회 상영되는데 그쳤다. 이날 함께 개봉한 영화들 중 가장 적다. 배급사가 ‘광해’를 투자배급한 CJ엔터테인먼트라 집중을 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내부적으로 ‘광해’의 관객을 1100만명까지 기대하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로서 단순 배급대행인 이 영화보다는 ‘광해’에 좀 더 힘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실제로 이날 ‘광해’는 574개관에서 2621회 상영되며 전날 768개관에서 3657회 상영됐던 것 보다는 25% 이상 줄어들기는 했지만 9월12일 개봉해 한 달이 다 된 영화로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상영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날 소지섭(36)의 액션물 ‘회사원’(감독 임상윤)이 1주 앞당겨 막을 올린 것도 악재다. 1300만 관객 영화 ‘도둑들’(감독 최동훈)을 사실상 끝낸 배급사 쇼박스로서는 유일한 투자배급 영화인만큼 전력을 다해 ‘회사원’을 밀 것이어서 상영관 쟁탈전에서 불리하기만 하다. ‘회사원’은 이날 485개관에서 2761회 상영되며 ‘광해’와 상영 규모 1, 2위를 다퉜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것도 아쉽다. 심한 신체노출도 없는데 ‘10대 소녀’로 설정된 상하이 부잣집 아가씨 ‘베이 베이’를 셰이판이 유혹해 하룻밤을 보낸다는 내용 탓에 당연히 기대했던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 아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나오고 말았다. 베이 베이를 연기한 여배우는사실 20대다. 허 감독이 “이럴 줄 알았으면 노출신을 세게 넣을 걸 그랬다”며 땅을 치고 있지만, 이미 영화는 상영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위험한 관계’가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 인종반정이 일어난 1623년(광해군 15년) 3월13일 반정군 규모는 1500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꿔 놓았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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