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비정한 도시'에서 꽃중년의 매력을 보인 배우 조성하가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화동의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제 ‘스타’다. 레드카펫에 그가 서면 팬들은 열광한다. 개중에는 KBS 2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꽃중년의 매력에 빠진 일본 여성팬도 꽤 많다.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도 해볼 계획이다. 연기력을 인정 받고, 인기까지 높아지자 개런티도 많이 올랐다.

그런데 누가 봐도 돈을 많이 받지 못했을 것 같은 영화에 여전히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그 영화가 대단한 흥행성적을 거둬서 인지도를 더 높이는데 기여할 것 같지도 않은데도 비중을 떠나 스크린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영화배우 조성하(46)다. 25일 개봉하는 범죄물 ‘비정한 도시’(감독 김문흠)에서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되고, 다시 가해자로 치닫는 택시운전자 ‘돈일호’로 주연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 초대돼 ‘제2의 파수꾼’으로 호평 받은 학원물 ‘명왕성’(감독 신수원)에서는 사건을 풀어가는 ‘형사반장’으로 특별 출연했다.

이들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 시나리오와 제작진의 열정이다. 두 작품 모두 노개런티 출연이다.

“‘비정한 도시’의 시나리오를 받아 읽어보니 이야기 구성이 정말 독특하고 굉장히 재밌더군요. 도시를 배경으로 10개의 옴니버스를 통해 사건과 범죄가 체인처럼 연속해서 이어지는 것이에요.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지만 출연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KBS 2TV 드라마 ‘로맨스 타운’을 하고 있었고, 끝나면 바로 영화 ‘화차’에 들어가야 했거든요. 사정상 못하겠다고 얘기했지만 다시 부탁이 오고…. 그런 것을 반복할 때였는데 감독이 삼고초려하듯이 저를 찾았어요. 특히 감독이 ‘로맨스 타운’ 쫑파티까지 찾아와서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한 쪽 구석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안쓰럽더군요. 젊은 감독이 성의와 열의를 갖고 작품을 해보려고 하는데, 게다가 조성하라는 배우가 좋다고 그처럼 같이 하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안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돈이 되든지 안 되는지 최대한 시간을 맞춰서 해보기로 결심하고 출연하게 됐죠.”

그래도 ‘비정한 도시’는 김석훈(40) 서영희(33) 이기영(49) 등 유명배우들이 공연한 상업영화다. ‘명왕성’은 상황이 더 열악했다. 이름있는 배우는 조성하 뿐이었다. 그의 재능기부식 출연은 전쟁 블록버스터 ‘고지전’(2011)의 이다윗(18), 모델 출신 성준(22), 독립영화 스타 김꽃비(27), KBS 2TV ‘대왕의 꿈’의 ‘어린 만덕’ 선주아(20) 등 이름보다는 가능성 있는 신인들로 가득한 이 어두운 별을 빛냈다.

“‘화차’를 끝낸 뒤에 작품은 많이 들어오는데 흡족한 것이 없었어요. 그때 만난 시나리오가 ‘명왕성’이었어요. 매니저들이 독립영화, 저예산영화라 저랑 안 맞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별로 관심을 안 갖고 있다가 집에서 어디 한 번 읽어볼까 시나리오를 보는데…. 왠걸요, 그때 받은 시나리오 중에 제일 재미있었어요. 학원물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풀어갔는지 감독이 대단하다 싶었죠. 마침 프로듀서가 제 친구였어요. ‘너 안 하면 절교다’, ‘사이즈가 내가 할 사이즈가 아니다’, ‘내 얼굴 봐서 해줘라’, ‘지금 시기상으로 안 맞는다’고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감독과 만나서 단 하나, 엔딩을 제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해주는 조건으로 출연하기로 했어요. 다행히 감독도 제가 원했던 엔딩의 방향을 받아들여줬고, 결과적으로 잘 나와서 모두가 만족하고 있지요.”

조성하는 배우인만큼 “그런 좋은 작품들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만으로 기쁘다”는 마음이지만 부인과 자녀들로서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돈도 안 되는 작품에 시간 쓰고, 자기 돈 들여가면서 하는 일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조성하도 농반진반 부인하지는 않는다.

“집에서 상당히 안 좋아하죠. ‘저 사람의 정체가 뭘까’, ‘저 사람이 우리집 가장이 맞나’, ‘저 사람은 가장으로서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죠. 하하하.”

그토록 잘 알면서 왜 하는 것일까. 돈 안 되는 일을 하느니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어차피 기회비용도 적잖은 비용일텐데.

“돈 되는 작품도 당연히 하지만 돈이 안 되도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라면 해야죠. 무료로 출연하는 것이지만 보람은 있으니까요. 게다가 ‘파수꾼’처럼 작품이 잘되면 내가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없을까. 이미지가 소진된다는.

“보통 배우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많이 소진시키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 돈만 쫓아다니고, 그래서 어쭙잖은 작품들을 하는 것이라면 대중으로부터 질책을 듣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러나 정말 좋은 작품을 위해서 오히려 내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내게 어떤 결과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저는 만족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재충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는 그것을 소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자양분을 얻고, 새로운 것들을 생성시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안 하고 쉰다고 실력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작품 세계가 넓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배우가 좋은 환경에서만 작품을 하다 보면 너무 그런 편한 것, 쉬운 것에만 익숙해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연기를 하다 보면 또 다른 나의 양식을 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 감독, 젊은 배우들의 순수함과 열정을 받아들일 수 있어 행복하다.

“작은 작품에 출연하는, 많은 후배들의 살아 숨쉬는 순수성을 전이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배우, 아니 모든 기성세대가 스스로 농익었다, 능숙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신선함을 터부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프로라면 약간 날것 같은 냄새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앞으로 10년이 가도, 20년이 지나도 제가 여전히 싱싱하다고 느껴지신다면 바로 그런 순수함, 신선함을 계속 수혈받고 있는 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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