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대 검찰총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발표를 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 용퇴압력을 받은 한상대 검찰총장이 30일 전격 사퇴하면서 국민앞에 내놓키로 한 개혁안을 스스로 접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 총장은 이날 오전 10시 대검찰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적으로 사퇴의사를 표명했지만 전날 사퇴와 함께 발표를 예고한 개혁안은 꺼내지 않았다.

한 총장은 사퇴 기자회견을 2시간여 앞두고 개혁안 발표를 취소하고 사퇴만 발표한다는 입장을 굳혔다.

◇한 총장에 개혁안은 어떤 의미?

검찰 주변에 따르면 한 총장은 전날 오후까지도 측근들에게 자신의 거취를 정리하는 대신 조건부(條件附)로 자신이 직접 다듬은 개혁안을 발표하려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이는 평검사부터 고위간부들까지 검찰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단 항명을 초래한 한 총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마지막 작품'은 남기겠다는 심산으로 읽혀졌다.

검찰 안팎에서 일고 있는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을 자신이 직접 총괄 지휘한 개혁안을 통해 위기를 정면돌파하려는 승부수로도 해석됐다.

검찰 일각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도높은 개혁안으로 일단 재신임을 받은 뒤 현 사태를 수습하려는 수순으로 받아들여졌다. "개혁안을 발표한 뒤 재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제출하겠다"는 전제를 내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결국 한 총장은 지금의 검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상징적인 타개책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일선 검사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혁안을 가급적 빨리 만들어 내놓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력 잃은' 개혁안 한계 인정한 듯

한 총장이 개혁안을 '포기'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은 검찰 내부의 부정적인 기류를 염두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해 검찰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며 무리수를 두더라로 개혁안의 명분과 실리를 보장받기 힘들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한상대 검찰총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사퇴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이날 한 총장은 오후에 검찰개혁안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 후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었지만 취소 후 오전으로 앞당겨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 총장이 검찰 조직에서 신망을 잃고 수장의 자리를 지키지 못해 중도 퇴진하는 상황에서 개혁안을 내놓을 경우 '명분'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검찰총수가 물러나면서 개혁안을 내놓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혁안의 진정성이나 취지가 무색해질 수 밖에 없는 비관적인 상황이었던 셈이다.

이와 함께 개혁안을 일관되게 밀어붙일 만한 '추진동력'을 상실한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 총장은 뇌물비리, 성추문 등 일련의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 검찰 안팎의 불신과 질타를 받았다. 특히 개혁안을 놓고 갈등을 빚은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해 공개감찰을 지시하면서 오히려 후배들로부터 역풍을 맞고 지휘체계마저 흔들리는 위기를 자초했다.

아울러 개혁안이 조직 내부의 갈등이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총장은 개혁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고위 간부들과 대검 중수부 폐지, 기소대배심제 도입, 상설특검제 도입 등 민감한 내용을 다뤘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이번 개혁안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한 총장의 개혁안 발표 소식에 일선 검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일선 지청의 특수부 검사들은 중수부 폐지안에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전날 서울서부지검 검사들도 "개혁안 없이 사퇴의사만 밝히는 것이 맞다"며 한 총장을 끝까지 압박했다.

결국 한 총장은 후임자에게 개혁안을 맡기고 외롭게 퇴장했다. 개혁안으로 검찰조직 내부의 내홍을 매듭짓고 검란(檢亂)을 잠재우려던 총장의 의지가 꺾인 것이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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