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의 총학생회장 선거가 저조한 투표참여와 선거 잡음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3일 대학가에 따르면 1970~19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던 서울대학교는 2003년 이후 10년 연속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산됐다.

서울대 총학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제55대 총학 선거 무산을 선언했다. 선거 성사 기준인 투표율 50%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권자 1만6098명 중 27.28%인 4474명만 투표했다. 10명 중 7명은 투표장에 가지도 않은 셈이다. 올해는 연장 투표가 가능한 기준 투표율인 32%에도 못 미쳐 개표함을 열지도 못했다.

서울대 총학은 내년 3월 재선거가 이뤄질 때까지 '단과대 연석회의'가 총학을 대신하는 임시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지난달 27~29일 제45대 총학 선거를 치룬 성균관대에서는 구비서류 미비를 이유로 선관위로부터 등록거부 당한 후보측이 '나쁜 투표 거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유권자 1만7000명 중 50%인 8500명 미만이 투표하면 선거가 무산된다.

이들은 "매우 경미한 문제이고 지난해 총학 선거 당시 유사한 상황에서 징계 수위가 시정조치에 그쳤다"며 "모 후보측과 밀접한 선관위가 의도적으로 특정 후보의 등록거부를 기획했다는 의혹을 사기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관위측은 "양 캠퍼스 대표들로 이뤄진 연석중앙위원회에서 조정을 시도했지만 후보측이 먼저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 사안"이라면서 "사실과 다른 의혹을 펼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중앙대 안성캠퍼스에서는 학교측이 지난달 22일 당선된 총학생회에 대해 허위 사실 유포를 이유로 당선 무효를 선언한 후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을 퇴학 처분하고 고소하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총학은 선거 당시 학교 측이 예산 470억원을 뻥튀기했고 해당 예산은 법인에 흘러갔다. 이 예산 등을 절감해 등록금 21%를 인하할 수 있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했다.

총학측은 "감사원 감사결과와 각종 언론 보도자료 등을 토대로 합리적으로 측정했고 선관위는 허위사실 유포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잘못 해석된 부분은 세칙에 따라 시정조치하고 사과문을 게시했다.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학교측은 선거지도위원회 결정사항 공고에서 "허위사실 유포 등은 명백한 위법이고 충분히 설명하고 자정을 요청했지만 반복했다"면서 "학생 본분에 벗어날 뿐 아니라 학교 명예를 실추하고 공정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또 지난달 21일 이뤄진 부산외대 총학 선거에서는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함께 활동한 집행부 출신 학생을 당선시키기 위해 개표소로 향한 투표함을 바꿔치기한 사실이 대학 진상조사위원회 조사결과 드러나 충격을 줬다.

대학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총학 선거 잡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매년 되풀이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그 갈등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2009년 12월 서울대는 선거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들이 봉인된 투표함을 사전에 몰래 열어봤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더구나 의혹 근거로 제시된 녹음 파일이 불법감청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선거가 큰 논란을 불러왔다.

서강대에서는 같은해 치뤄진 총학 선거의 절차적 비민주성 등을 이유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교 측에 학생회를 인정하지 말아달라고 청원했고 학교 당국이 총학을 퇴출시키도 했다. 명지대도 선관위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세칙을 위반, 재학생간 법정소송이 벌어졌다.

지난해도 국민대와 건국대 일부 후보가 경고 누적으로 후보 자격을 박탈, 투표 거부운동과 삭발식을 벌였다. 성신여대는 학생회 임원에 대해 총장 승인을 받도록 한 학칙을 두고 선관위와 학교측이 대립, 선거가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기성 정치판을 닮아가는 대학가 선거 풍경은 학생들의 무관심과 학생회를 '스펙'으로 삼는 일부 학생들의 합작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모 대학 관계자는 "취업난 때문인지 총학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많이 줄었다"면서 "참여가 저조해지면서 일부 학생들이 총학을 독점하고 자기들끼리 이를 대물림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는 "무관심 속에서 선거가 형식화 또는 사유화되다 보니 소통과 통제가 사라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공립대 전 총학 간부인 이모(34)씨는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총학이 정치권 진출이나 취업용 스펙화 되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학생운동의 순수함이 퇴색된데다 무관심으로 외부 시선이 줄어들면서 인맥 등을 토대로 한 총학 대물림이 공공연해지면서 생긴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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