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40, 50대 관록파 감독들의 흥행성적 부진과 대조적으로 ‘끼’와 개성으로 무장한 천재급 젊은 감독들이 2012 가을·겨울 시즌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송중기(27) 박보영(22)의 판타지 멜로 ‘늑대소년’의 조성희(33), 정재영(42) 박시후(34)의 액션 스릴러 ‘내가 살인범이다’의 정병길(32), 6일 개봉하는 지성(34) 김아중(30)의 로맨틱 코미디 ‘나의 PS 파트너’의 변성현(32) 감독이 그들이다.

젊은 나이, 첫 장편 상업영화, 전력이 다양하다는 점, 생소한 장르 시도 등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조 감독은 서울대 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와 2008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로 영화계에 투신했다. 2009년 졸업작품인 단편 ‘남매의 집’으로 그때까지 7년간 대상작이 없던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서 3등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독립영화 ‘짐승의 끝’으로 제30회 밴쿠버 국제영화제 용호 부문, 제41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이처럼 실력을 인정 받은 조 감독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선보인 작품이 ‘늑대소년’이다.

조 감독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직장에서 컴퓨터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취미나 소일거리로 시나리오를 쓰고, 대학 연극동아리 친구들과 6㎜로 영화를 찍어보곤 했는데 할수록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어디서 한 장면을 찍으려고 하면 못 찍게 하니 숨어 있다가 다시 나와서 찍고 다시 도망치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었고, CG는 움직임 하나 만들려면 너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영화는 그럴 필요 없어 좋았다”며 “그래서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소개했다.

‘늑대소년’은 제37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 제31회 밴쿠버영화제 용호 부문,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시네마 부분에 연달아 초청되며 작품성을 먼저 인정 받았다. 개봉일인 지난달 31일 관객 12만8803명을 모아 흥행성적 1위를 달리던 대니얼 크레이그(44)의 액션 블록버스터 ‘007 스카이폴’과 1100만 관객 고지를 넘어선 이병헌(42)의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꺾고 1위로 스타트했다. 이후 여성과 청소년 관객의 호응과 지지 속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5일까지 657만여 관객을 모았다.

정 감독은 안양예전 미술과를 나와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하다 액션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어서 액션스쿨에 입교해 액션 연기를 배운 뒤 감독이 된 이색 경력이다. “액션스쿨을 다니던 6개월간 나 자신을 체크했다. ‘네가 과연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까’를 나 자신에게 계속 물어봤다. 그때 쓴 시나리오가 단편 ‘칼날 위에 서다’인데 그때 나는 ‘나한테 이런 재능이 있구나’가 아니라 ‘뭔가 부족하다. 다음 영화를 만들면 이것을 채워야겠다’ 싶었다. 부족한 것이 보이면 나아질 것 같은 생각이 다음 영화를 더 잘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정규 영화 교육을 받은 것이 없으니 지적이 나오면 바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정 감독은 2008년 액션스쿨 동기생들의 열정과 도전을 다뤄 음악과 감동을 전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액션배우다’로 평단과 대중의 관심과 호평을 받으며 2008년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 JIFF 최고인기상, 제11회 디렉터스 컷 어워드 올해의 독립영화감독상, 2009년 제6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독립영화상을 챙겼다.

2009년 완성한 ‘내가 살인범이다’의 초고가 지인들 사이에 돌다가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손에 들어가게 됐고, 쇼박스가 적극적으로 나서 영화화됐다. 11월8일 개봉한 ‘내가 살인범이다’는 스릴 넘치는 스토리, 리얼 액션의 강점을 앞세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 등 갖가지 한계를 딛고 5일까지 약 252만 관객을 끌어 장기 흥행 토대를 굳혔다. 특히 스릴러 ‘유주얼 서스펙트’의 할리우드 제작자 케니스 코킨, 멜로 ‘러브레터’, 수사물 ‘춤추는 대수사선’ 등의 제작사인 일본 로봇 프로덕션 등이 리메이크 의사를 밝혀오는 등 해외 진출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늦게 타석에 서는 변 감독은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했다는 점이 얼핏 앞의 두 감독과 달리 정통 영화학도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영화가 아닌 연기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연출로 전공을 바꿨다.

“대학을 가야 하는데 중고등학교 때 너무 놀아 내 성적으로는 절대 갈 수 없었다. 마침 서울예대 영화과가 수능을 안 본다기에 무턱대고 시험을 봤는데 운좋게 붙었다. 그런데 대학 생활은 내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온 것과 전혀 달랐다. 선배들이 마루바닥에서 앞구르기, 뒤구르기를 시키고 어깨동무를 한 채 앉았다, 일어났다만 시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냥 말없이 나가버리고 학교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그러다 제적 위기에 몰렸는데 영화평론가 강한섭 교수님이 F학점을 주겠다고 해서 빌려는 마음으로 시키시는대로 시나리오를 한 편 열심히 써갔는데 냉정한 분인줄 알았던 강 교수님이 ‘천재’라고 극찬하기에 귀가 얇은 나는 바로 영화 연출로 전공을 바꾸게 됐다.”

2005년 16㎜필름으로 찍은 첫 단편영화 ‘리얼’로 제4회 미쟝센 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등에서 주목 받았다. 2006년 ‘무비스타 한재호씨의 메소드 연기’로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 제10회 레스페스트 영화제 등에서 성가를 높였다. 2010년 시나리오, 연출은 물론 래퍼로 출연까지 한 첫 장편영화 ‘청춘 그루브’로 대중적인 관심도 모았다. ‘나의 PS 파트너’가 CJ문화재단의 신인 스토리텔러 지원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S’ 1기에 선정되고 지성(34), 김아중 등 시나리오에 매료된 스타들까지 참여하면서 변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10억원짜리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바랐던 제작비 규모가 30억원대로 폭증하고 말았다.

변 감독은 “‘늑대소년’과 ‘내가 살인범이다’ 모두 좋은 영화라고 하던데 후반 작업 때문에 아쉽게도 아직 못 봤다”면서 “요즘 30대 초반 신인감독들이 각광 받고 있는데 내가 그 중 한 사람이라니 영광스럽다. 응원하고 있다. 다른 분들 덕분에 내가 묻어서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반겼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성희, 정병길, 변성현 감독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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