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소설 '레 미제라블'이 영화와 뮤지컬 등 문화계 전반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레미제라블' 열풍을 이끌고 있는 영화는 개봉 8일 만인 26일 관객 200만명을 넘겼다. 지난해 제8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영화 '킹스 스피치'(2010)의 톰 후퍼(40)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후퍼 감독의 연출력과 뮤지컬배우 출신 휴 잭맨(44)을 비롯해 앤 해서웨이(30) 러셀 크로(48) 아만다 사이프리드(27) 등 배우들의 호연이 맞물리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인기 요인을 작품 안에서만 찾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영화가 원전으로 삼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처럼 거의 모든 대사를 노래로 표현하는 '송 스루'인 데다 러닝타임 2시간38분 동안 코믹한 부분도 드문 탓에 버거워하는 관객도 꽤 있다.

'대박' 영화가 대개 그렇듯, 사회 변화와 흐름을 적당히 탄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제18대 대통령 선거와 연결한 해석이다.

한국에서 5권 분량으로 출간된 것에서 보듯 방대한 양의 '레미제라블' 이야기를 크게 나누면 그 줄기는 세 가지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옥살이를 한 '장 발장'이 자신을 평생 추적하는 경감 '자베르'를 피해다니는 궂은 운명의 개인사, 장발장이 자신도 모르게 외면해 위험에 빠뜨린 '판틴'의 딸이자 그의 수양딸인 '코제트'와 혁명군 '마리우스'의 러브스토리 위주의 가족사, 마리우스를 비롯한 '앙졸라' 등 젊은 학생들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벌이는 혁명사 등이다. 이 모두들 아우르면, 소설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곧 인류애다.

'레미제라블'을 대선과 엮는 이들은 이 가운데 혁명사를 끌어다 쓴다. 좌파의 주축을 이루는 청년들이 우파인 박근혜(60)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대통령 당선인이 된 데 품은 불만을 마리우스·앙졸라 등 젊은 혁명군에 투영했다는 것이다.

앞서 개막한 뮤지컬이 호평 받은 점도 빼놓을 수 없다. 27년 만에 한국어 라이선스로 선보이고 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장발장 정성화(37)와 '에포닌' 박지연(24) 등 배우들의 호연에 힘 입어 주목 받았다. 혁명을 위해 학생들이 쌓은 거대한 바리케이드와 위고가 그린 삽화에 근거한 영상 등 제작비 200억원을 쏟아 부은 흔적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지난달 20여일간 경기 용인 포은아트홀에서 공연하며 관객 점유율 90%를 훌쩍 넘어섰다.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내년 1월19일까지 공연한 뒤 부산 센텀시티 소향아트센터(2013년 2월14일~3월10일)를 거쳐 2013년 4월9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오픈 런한다.

작품성은 있으나 티켓값이 비싼 뮤지컬 대신 비교적 저렴한 영화를 택한 관객들이 많았다는 판단도 있다. 연말은 대작 뮤지컬이 경합하는 시기다. 관객들도 세밑이면 웅장하고 품격 있는 작품을 관람하고 싶은 고급 문화 향유 욕구가 솟구친다. 그러나 10만원 안팎의 관람료는 부담스럽다. 이를 절충한 것이 영화 '레미제라블'이라는 지적이다.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레미제라블' 역시 영화와 뮤지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장발장'의 인류애와 코제트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두 장르와 달리, 연극은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부조리한 사회로 내몰린 불쌍한 사람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유명 고전문학을 향유하려는 가족단위 관객도 많다. 자연스레 원작 소설 판매로도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민음사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한 '레미제라블'은 약 한달간 6만부 이상 팔렸다. 펭귄클래식코리아의 5권짜리 '레미제라블' 역시 독자들의 수요가 부쩍 늘었다.

영국 ITV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수전 보일(51)이 불러 유명해진 '아이 드림드 어 드림',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온 마이 오운',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 혁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굳은 의지, 자베르의 다짐, 에포닌의 가슴앓이 등이 망라된 '원 데이 모어' 등 뮤지컬 넘버 중 최고로 손꼽히는 곡들이 수록된 영화 '레미제라블' OST(유니버설 뮤직) 또한 인기다.

음원사이트 멜론에서는 25일 앨범 발매 전부터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으며 앨범 발매 직후 온라인매장인 예스24와 교보문고에서 전체 장르 종합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앨범 수록곡 중에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원작곡가인 클로드 미셸 쉔버그가 영화만을 위해 만든 곡 '서든리'가 특히 눈길을 끈다. 잭맨이 부른 이 노래는 내년 1월 제7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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