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당시 4·3특별위원회 출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1993년 3월 30일 제4대 제주도의회는 제주4·3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4·3특별위원회를 출범 시켰다. 당시 장정언 의장이 4·3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키는데 산파역을 했다. 4·3특별위원회는 발족 후 제주도 전역을 순회하며 피해조사를 실시,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4·3을 전국화 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4·3특별위원회 출범 20주년을 맞아 당시 4·3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김영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4·3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데 열성을 바쳤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 없다.

김영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이야기다.

김 이사장은 지난 1993년 30년 만에 부활된 제4대 제주도의회 의원 당시 4·3특별위원회 출범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어 '제50주년 4·3학술문화사업추진위원회', '4·3특별법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상임대표를 맡아 4·3특별법 제정에 기여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고문과 제주4·3연구소 이사를 지내며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 김영훈 이사장
# "제주4·3 해결 없이 진정한 제주도 개발 있을 수 없는 일"

김 이사장은 "4·3특별위원회 출범 무렵 제주도에선 제주도개발특별법을 두고 행정과 시민단체의 마찰이 심하게 일어났다"며 "이를 일부 언론에선 제2의 4·3 사태가 번지고 있다는 것처럼 4·3 문제가 거론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제주도 개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주도민의 한이 서린 4·3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제주도 개발과 발전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4·3특별위원회 출범 취지를 설명했다.

1991년 7월, 30년 만에 지방의회가 부활하면서 제주도의회는 4·3문제를 해결하자는 분위기였다고 소개했다.

김 이사장은 "대통령·국회의원 후보들이 당선되면 4·3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공약(空約)에 그쳤다“면서 ”지방의회지만 제주도의회가 나서서 4·3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1993년 3월 20일 4·3특별위원회가 출범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4·3 문제를 금기시했던 당시 상황과 암울했던 사회분위기 등이 4·3특별위원회 구성에 가장 큰 암초였다고 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고 4·3문제를 공론화하는 게 금기시 했다. 40년 동안 도민들이 한이 서렸지만 말을 못하고 또 후손들에게 전하는 데도 쉬쉬할 정도였다. 1987년 6월 항쟁이 있고 나서 도민사회 분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도의원으로서 4·3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니까 신상에 해가 입지 않겠느냐며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걱정과 염려를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일부는 4·3 문제 접근을 막는 사람들도 있었다”면서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보기관에서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일부 도의원들이 4·3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4·3특별위원회는 위원 7명으로 구성돼야 했는데 3명을 채우지 못해 무려 4개월 동안 출범을 못할 만큼 그 당시 사회분위기는 암울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1993년 3월 20일 4·3특별위원회가 본격 출범했다.

4·3특별위원회는 김영훈 이사장을 비롯해 이영길, 양금석, 강완철, 고석현, 이재현, 김동규 의원으로 구성됐다.

# 대만 정부 2·28사건 해결 앞장…국회에 4·3특별법 제정 청원

4·3특별위원회 출범 후 이듬해 인 1994년 제주 전역을 대상으로 피해자를 신고 등을 접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 했다.

김 이사장은 "4·3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그 당시 상황을 알아야 했다. 먼저 4·3문제를 풀기 위해 언론과 당시 막 출범한 4·3유족회 등을 찾아서 자문을 구했다"고 피해자 신고 활동 배경을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4·3특별위원회는 4.3 해법을 찾기 위해 제주4·3과 비슷한 대만 ‘2·28 사건’이 일어났던 현지를 방문했다. 당시 변정일 전 국회의원(현 JDC 이사장)도 함께 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4·3특별위원회는 대만 정부가 2·28사건을 풀어가는 현장을 목격했다”면서 “이를 계기로 국회에 4·3 해결을 위한 4·3특별법 제정을 청원하게 됐다”고 4·3특별법 제정 배경을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대만 현지 방문 이후 4·3특별위원회 활동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첫 단계로 1995년 1년을 4·3희생자 기초조사의해로 설정, 도의회 내에 조사실을 만들었다“면서 ”각 읍면동에 14명의 조사위원를 투입해 조사를 한 결과 1만4504명의 4·3희생자를 파악했고, 명단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4·3특별위원회는 두 번째 단계로 기조초사를 근거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위한 역사 정립 작업에 돌입했다.

세 번째 단계는 4·3 교과서와 역사 정립이었다.

또한 4·3특별위원회는 도민 공감대를 얻기 위해 도의회 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김 이사장은 "자문위원회는 진보적 인사와 보수적 인사 등 17명으로 구성됐다“면서 ”이는 4·3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였다“고 설명했다.

▲ 김영훈 이사장.
# "'4·3 진상규명과 완전하 해결 단초는 4·3추념일 지정"

김 이사장은 4·3 유족이다. 김 이사장은 4·3 당시 4살이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아버지는 법원 공무원이셨는데 4·3에 연루돼 육지 형무소에서 복역을 하던 중 6·25가 일어나면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잠시 인터뷰가 중단됐다.

김 이사장은 "6·25전쟁으로 인해 육지 형무소에 제주사람 4500여명 수감됐는데 대부분 현지에서 학살됐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당시 희생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다“며서 ” 당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제주4·3평화공원내 1만4924㎡ 부지에 행불의 묘역이 조성됐다. 저의 아버지도 그 곳에 묻혔다"고 소개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4·3희생자는 1만4032명, 유족은 3만1253명이다.

최근 4·3희생자 추가 신고를 실시한 결과 희생자는 350명, 유족은 2만7000여명 추가 신고됐다.

김 이사장은 "정부는 4·3 문제를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로 받아들여 하루 속히 해결에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4·3특별위원회는 2003년 4·3진상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정부에 7가지를 요구했다고 했다.

7개 사항은 △정부의 공식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 △진상보고서 교육자료 활용 △4.3평화공원 조성사업 5단계 △유족 생계비 지원 △유해발굴 사업 △추가 신상규명 및 기념사업이다.

김 이사장은 "4·3평화공원 조성사업은 5단계까지 추진되는 사업인데 올해 3단계 사업이 시작되고 있다“면서 ”유해 발굴 사업도 예산 부족으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이사장은 “유족 보건 등 복지사업도 지지부진하다"며 "절대적으로 국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올해 65주년 4·3희생자 위령제 주제로 '4·3 완전한 해결은 4·3추념일부터'를 내걸었다"며 "4·3희생자 위령제는 제주도만의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 김영훈 이사장.
# "갈등과 분열 넘어 화해·용서로 4·3 아픔 마무리해야"

김 이사장은 "미국의 학자가 말했듯이 4·3은 전쟁이 아닌 지역에서 민간인이 가장 많이 희생된 사건"이라며 "4·3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이전인 미군정 때 일어난 사건으로 미국이 절대적으로 책임이 있는 만큼 미국 정부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이사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이지만 국가적으로 불행했던 사건“이라면서 ”정부는 이 같은 불행이 다시는 우리 땅은 물론 지구상에 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미국인·일본인 또는 중국인이 제주4·3에 관심을 갖고 4·3평화공원을 찾아오지만 외국어로 번역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면서 "지난해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를 미국어로 번역을 했다"며 4·3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도 소개했다.

김 이사장은 "제주4·3이 세계 평화운동의 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올해 4·3진상조사보고서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내년에는 중국어 번역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를 외국어로 번역해 4·3의 진실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이사장은 “외국 학자들이 공론화을 거쳐서 4·3을 세계적인 불행한 사건 중 하나로 공동의식을 갖고 4·3을 세계 평화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4·3의 아픔은 우리 세대에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면서 ”‘청산하지 못한 역사 유산’을 후대에 물려줘선 안 된다“고 4·3 완전 해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이사장은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완전한 해결은 어려운 과제지만 4·3유족 등이 살아 계실 때 좋은 결과가 나와서 마무리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후세들에게 4·3의 역사는 물려줘야 하지만 갈등과 반목 등의 유산을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4·3이 발발된 지 벌써 65년이 지났다. 이제는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차원에서 4·3 아픔을 마무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제주도민은 모두 희생자“라며 ”가해자. 피해자를 굳이 구분할 게 아니다. 도민끼리 서로 아픔을 나누면서 상처를 어루만져야 할 때 진정한 4·3은 치유될 것"이라고 말했다.<제주투데이>

<문춘자 기자 / 저작권자ⓒ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