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모국은 지역이 아니라 언어입니다. 시인은 슬픔의 나라, 고통 나라의 백성입니다.
 
시인은 가장 슬프고 가장 아픈 사람의 상처를 가장 슬프고 가장 아프게 대신 울어주는 존재입니다."
 
9월 8일 한일 시 낭송 문학교류 및 문학기행으로 한국 측 단장으로 문정희 시인이 나고야에 왔을 때 한국측을 대표해서 한 인사말이다.
 
그리고  9월 10일 오사카에서 있었던 재일동포 및 일본 시인과의 낭송회 때도 같은 인사를 했다.
 
참고로 그 기사를 아래 첨부하고 있으니 내용은 생략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70278
    
이때 오사카에서 문정희 시인으로부터 시집 <한계령을 위한 연가:2013.7월 펴낸곳. 시인생각>을 받았다.
 
필자는 문정희 시인을 처음 뵈웠으며 만나기 며칠 전에야 문 시인에 대해서 알았다.
 
필자가 한국문단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해외에 산다고, 특히 한글 세대가 거의 없는<최근에는 뉴컴머가 많이 불어났지만> 일본에 산다고 저명한 문 시인을 몰랐던 사실에는 한국문인 자격 상실일런지 모르겠다.
 
그러한 필자가 <한계령을 위한 시집>을 읽고 짤막한 감상 속에 5편을 소개한다.
 
5부 편성에 50편의 시가 게재되었었다.      
              
                    물을 만드는 여자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마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러고는 쉬이쉬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훍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자연에 군림하는 인간이 아니고 순수한 자연의 한 생물체로서 위화감 없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 나누는 생명의 대화는 겸허하기 보다는 숭고하다.
 
왜냐하면 겸허는 힘 있는 자의 아량이기 때문이다. 
이 시와 맥락을 같이하는 "머리 감는 여자"가 있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이별 이후
 
너 떠나간 지
세상의 달력으론 열흘 되었고
내 피의 달력으론 십년 되었다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 안 가득 밥알 떠 넣는 일이다
 
얫날 옛날적
그 사람 되어 가며
그냥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
 
이 아픔 그대로 있으면
그래서 숨 막혀 나 죽으면
원도 없으리라
 
그러나
나 진실로 슬픈 것은
언젠가 너와 내가
이뜨거움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다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이 있지만 실존 속에 기억은 이렇게 해서 잊어 가는 것을 실감케 한다. 
 
                        남편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일생에 한 여자, 한 남자만을 사랑하라는 보편적 진리의 어려움은 남녀가 따로 없다.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도 그것은 터부 제일 1순위이다.
 
남녀, 부부간의 사랑의 부조리를 아이러니하게 꼬집고 있다.  이것은 "남편"만이 아니고 역설적으로 "아내"의 시이기도 하다.  
 
                     풍선노래
 
나를 가지고 놀아줘
허공에 붕붕 띄워줘
좀 더 좀 더 입으로 불어줘
뜨거운 바람 넣어줘
부드럽고 탱탱한 살결
주물러 터뜨려줘
아니, 살살 만져줘
그만 터져버릴 것만 같아
내 전신은 미끄러운 빙판
삶 전체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날카로운 시간의 활촉이 나를 노리고 있어
열쇠는 필요 없어
바람의 순간을 즐겨줘
아니, 신나게 죽여줘
 
"풍선노래"는 충격의 시였다. 사실 본대로 느낀대로지만 누가 고무풍선을 "풍선노래"로서 이렇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응"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있고
둥그런 달로 나 네 아래 떠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응"은 "풍선노래"보다 더욱 충격적이다.
 
일반적으로 "풍선"이나 대답의 "응"은 동시나 동화의 대상으로서 어린이들의 작품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들이라고 누구나가 인식해 왔었다.
 
이러한 논리와 인식을 문정희 시인은 동시와 동화의 상대적 개념인 에로티즘으로 그 단어를 바꾸어 놓았다.
 
특히 한글의 "응"은 글자의 의미만으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것을 문정희 시인은 의미와 기호로서 짤막한 시로 통쾌하게 증명하고 있다.
 
"응"은 일본어 표기는 "ウン"이고 영어 표기는 "UN" 아니면 "UM"이다.
일본어와 영어 표기 "응"은 기호로서도 한글처럼 균형의 세련미가 없다. 
 
문정희 시인의 다른 시도 이번 처음 읽었지만 "응"의 시를 읽고 필자는 재일동포는 물론 한글을 아는 일본인들에게 바로 복사를 하고 읽으라고 권했다.
 
필자의 주변에서는 솔직히 때아닌 "응" 붐이 일고 있다.
 
그리고 한국어를 모르는 일본인들에게도 "응"의 시를 읽을 수 있도록 필자가 일본어 번역을 했다.
 
번역을 하면서 한글 "응"자를 옆에 쓴 것은 기호로서도 알기 쉬운 글이기 때문에 일부러 썼다.
 
그랬더니 기업가이며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출신 재일동포 모임 <우리동창회> 신준우 회장은 시가 아주 좋아서 부인에게도 읽게 하고 자기도 일본어로 번역할 테니 읽어 보라고 한다.
 
또 효고현 타카라쓰카에서 기업을 하시는 김예곤 회장께 이 시를 펙스로 보냈더니 남자도 아닌 여자가 대단한 시인이라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님이라고 했더니 그럼 학생들에게도 이 시를 가르치느냐고 한다.
 
"언어 사냥꾼"이라는 수식어는 시의 감수성에서 볼 때 위화감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냥을 할 때, 사냥꾼은  노리는 포획물을 단 한방에 승부를 겨누지 않으면 안된다. 즉 단 한방에 명중 시켜야 한다.
 
문정희 시인의 시는 언어라는 대상을 향해 사냥꾼처럼 날카로운 화촉이 되어 날아가고 있다.            
 
           "응"  ”ウン”
 
日差しあふれる真昼
今 私としたい?
あなたがたずねた時
花のように咲いた
私の文字
"응"  ”ウン”
 
丸い太陽であなた 私の上に浮かれて
丸い月で私 あなたの下に浮かれて
この眩しい言葉の体位
 
ただ心臓で
並んで到達した
神の部屋
 
あなたと私が創った
美しい完成
 
太陽と月
地平線に共に浮かばれて
地の上に
最も安らかな
熱い返事
"응"  ”ウン”

 

<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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