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제주에 갔다 와보니 강방영 시선집 "내 어둠의 바다"가 우편으로 왔었다.

 
제1부 "어머님의 마당" 18편 중 1편이다.
 
입 속에서 가만히
 
입속에서 가만히
어머니 하고 부르면
화악 펼쳐지는
이른 아침 맑은 하늘
햇살을 받아 빛나는
눈부신 바다
 
다시  눈감고
어머니 하고 되뇌면
여름 바람 서적이는
푸른 수수밭
지평을 달리는
잎사귀의 물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 중 가장 숭고한 단어가 어머니일 것이며 어머니 예찬론은 무한대이다. 비유의 대상이 무엇이든지 포용력으로 감싼다. 어머니는 생명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맑은 하늘 햇살만이 아니고 그 햇살을 받은 눈부신 바다와 광활한 푸른 수수밭 지평을 달리는 잎사귀의 물결까지 어머니의 사랑이다. 끝 없는 사랑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지난 7월 백세의 생일을 치르셨고 혼자 고향 삼양에 살고 계시다.
같이 살자는 형님의 제의를 한사코 거부하고 움직일 수 있는 한 독거주의를 주장하시고 있다.
몇년 전 제주투데이에 쓴 "어머니"라는 필자의 글인데  이번에도 그렇게 사랑의 욕을 들었다.
참고로 첨부한다.

다음은 제2부 "나의 바다" 17편 중의 1편이다.
 
       바람
 
밤새 날을 갈아
바람은
풀을 때리고
돌을 파헤치고
나무를 뽑는다
 
천개의 만개의
닫힌 바다
문을 열어
말떼를 불러낸다
 
흰 갈기 나부끼며
질주하는 말들
요란한 발굽소리
어두운 하늘로
풀어 놓는다
 
발을 구르고
하늘을 찢으며
홀로 외치는
아지 못할
고함 소리
 
산을 울리던
성난 목소리
밝은 날 아침
흰 눈으로 내려
 
얼리다 풀리고
풀리다 얼리며
한 겨울을
엎드려 운다
 
바람은 자기 모습을 스스로 드러낸 적이 없다. 그리고 스스로 소리도 안 낸다.
 
비행기를 타고 창 밖을 내다보면 바람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다. 물론 이때의 무소리는 비행기의 방음 작용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다만 바람이 가는 곳에 있는 모든 물체들과의 부딪침과 마찰이 있어서 그 형체의 변화와 마찰음에 의해 우리는 비로서 바람의 존재를 알게 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이 바람의 위력은 엄청나다. 땅과 바다와 하늘까지 지배한다.
 
다음은 3부 "꽃바람" 15편 중 1편이다.
 
  나의 나무
 
당신,
마당에 심은 나무
싹 나고 잎 피어
몰라보게 자랐다고
놀라워하시나,
 
남몰래 물주며
은밀히 키우는
또 하나 나의 나무
보이지 않는 나무는
모르시다니,
 
은하를 바라보며
동트는 새벽하늘
여명을 바라보며,
해 진 길을 걸으며
조용한 시간
닫힌 창을 보며
가꾸워낸 나의 나무들,
 
그 나무에도
무성히 잎이 달려
오직 당신 앞에서
이 처럼 크게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을
 
설레임과 마음 졸임
나무에 다 주고,
빈 고치처럼
가벼워져서 나는
 
바람에 바삭거리며
바삭거리며
부서지고 있는 것을
그렇게 모르시다니.
 
자연의 나무는 스스로 움직일 줄을 모른다. 태어난 곳 한 군데서 숙명처럼 자기 생을 다한다.
위대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는 그와는 정반대이다.
서로 상대적이면서도 그 갈대의 심정을 이해하지 않고 "설레임과 마음 졸임 나무에 다 주고 빈 고치처럼 가벼워서 황량한 마음은 바람에 바삭거리며 부서져 가고 있다." 
 
마지막 4부 "숲을 지나며" 14편 중 1편이다.
 
     숲을 지나며
 
언젠가는 나도
걸어 들어갈 수 있으리라
저 초록빛 속으로
 
나무가 나무속으로 녹아
산이 다시 산으로 들어가
드디어 이루는
드넓은 빛
 
하늘 가득한 웃음소리로
낭랑하게 햇살 울려 퍼지고
 
나무가 나무속으로 녹아, 산이 다시 산으로 들어가 드디어 이루는 드넓은 빛처럼 생을 마치고
언젠가는 나도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저 초록빛의 숲은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일런지 모른다.
 
모두 4부에서 64편인데 이미 펴낸 다섯권의 시집에서 발췌했다고 한다.
 
읽으면서 좀 특이하다고 느낀 것은 한편의 시 속에 1.2.3...이라는 연번으로 이어진 작품이 많아서 시가 길다는 인상을 주는 점도 있었다.
 
그래서 같은 제목에서 1.2.3을 붙여서 연시로 써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필자는 소설을 쓰는데 그것에 비하면 얼마나 길겠냐고 독자들에게 비난 받을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과 시는 모두 그 나름대로 소설의 호흡과 시의 호흡이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전부 좋다고는 못하니까 한 마디 덧붙힌 것뿐이다.<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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