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수상<59> 개인이 갖고 있는 역사인식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해 12월 27일 야스쿠니신사 참배이며, 그후 아베 수상이 발언들은 그것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다음 날인 12월 28일 일본 중앙지들은 일제히 이 사실을 사설에 게재하여 논평을 했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토쿄신문은 이구동성으로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를 비난했는데 산케이신문만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사히, 토쿄신문은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히토리요가리"<独りよがり:독선적인 행동>라는 표현으로 그를 비난했다.
 
"히토리요가리"는 비아냥의 의미가 섞인 조소적이고 냉소적인 속어와 같은 인 비난이어서 눈에 띄었다.
          
 "한국과 중국에 상처를 주지 않았다. 두번 다시 전쟁의 참화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한 불전<不戰>의 맹세를 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마친 아베 수상의 발언이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난 번 수상 재직 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은 통한의 극치였다."다고 마치 어느 노래의 후렴들처럼 되풀이했다.
 
야스쿠니 참배 바로 전까지도 스가 관방장관은 반대하면서 재고를 요청했지만 듣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에는 앞으로 이러한 전쟁을 이르켜서는 안 된다는 결심 속에 참배했으며 겸허한 마음으로 솔직한 자기 심정을 말하면 이해할 것이라는 논리였고 이것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1월 9일 중동과 아프리카 방문을 위한 하네다공항에서의 기자회견을 갖은 아베 수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스쿠니 참배 문제에 대해서 "<야스쿠니신사 참배가>안 됐지만 참배 자체가 외교 , 정치문제화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참배할런지 안할런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없다"고 명언을 회피했다.
 
그리고 야스쿠니신사에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추도 시설의 건설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유족의 마음이 중요하다. 검토를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면서 부정적 의미를 강조했다.
 
우리는 여기서 아베 수상이 야스쿠니신사 참배 후에 <한국과 중국에 상처를 주지 않았다.>라는 그의 발언을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아베 수상의 발언은 사실 그대로 자신에게 있어서는 거짖이 하나도 없는 발언인지 모른다.
 
오직 영령 앞에서 그들의 생과 사를 추도하면서 앞으로 절대 불행한 전쟁은 이르키지 않겠다고 최고 책임자로서 맹세했다고 한다.
 
A급 전범의 14명의 합사도 아베 수상은 마음 속으로 의식 안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한국과 중국에는 상처를 주지 않았다는 아베 수상의 발언은 틀리지 않는다.
 
이 발언이야말로 아베 수상 자신의 갖고 있는 역사인식의 가벼움과 한계를 스스로 들어내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의 그러한 일들은 다 알고 있으니 앞으로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 때문에 자기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했다는 것이다.
 
아베 수상의 역사인식의 가벼움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아베 수상의 가계도<家系図>를 거슬러올라 갔을 때 그의 역사인식의 태생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아베 수상의 외조부가 키시 노부스케 전 수상이고 그의 동생, 작은 외할아버지인 사토 에사쿠 전 수상이다. 그들은 같은 형제이지만 키시 전 수상이 양자를 갔기 때문에 서로 성이 다른 것뿐이다.
 
그리고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외무대신 등 주요 각료와 자민당의 간사장 등 요직을 두루 맡았었다.
 
동생 키시 노부오<54> 중의원 의원은 현재 외무부부대신이고 태어나서 얼마 안돼서 키시 노부스케 전 수상이고 외할아비지의 장남인 키시 노부가즈의 양자로 갔다.
 
그는 13일 날, 워싱톤에서 샤버트 미국 하원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 이해를 구했다고 한다. 그 자신도 작년 가을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었다.
 
샤버트 위원장은 기자단에게 "미국에 있어서 일본과 한국은 똑 같은 강력한 동맹국이니 일.한 양국은 서로 잘 고려하라"는 주문과 함께 자신의 설명을 분명히 이해했다고 한다.
 
A급 전범으로서 수감됐던 키시 전 수상은 미국의 반공정책으로 풀려나와서 수상까지 역임했고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성사 시키고 체결했다.
 
작은 외할아버지 사토 전 수상은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 반환을 매듭 짓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무대신은 최유력 수상후보자였으나 취장암으로 타계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 정치가 명문가의 후손인 아베 수상의 역사인식은 일본 보수와 직결된 환경 속에서 자라난 탓으로 객관적 역사인식의 시각을 갖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아니, 그의 보수 우경화 역사관은 이러한 가정 속에서 지극히 본능적이었을 것이다.
 
아베 수상이 일본 독자적인 우경화 일색의 보수화에서 탈피하는 것은 그의 가계<家系>에 대한 반이데올르기 행위이며 항거일 것이다.
 
이것을 끊을 수 있는 용기와 이념이 아베 수상에게는 결핍되어 있고, 오히려 그 이념에 더욱 부채질을 하는 "아전 인수 격"이 현실이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서 사임했다고는 하지만 전 수상 임기 때의 굴욕적 평가는 아베 수상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오점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상징적인 한 마디로 그 시대를 그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못한 것이 <통한의 극치>라고 자평하면서 보수 세력의 기수임을 국민에게 호소하면서 민주당의 분열로 선거에 압승했다. 
 
강력한 견제 세력이 없는 것은 야당만이 아니고 여당인 자민당 내부에도 아베 수상을 견제할 정치가의 부재는 그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 시키고 있다.
 
국민의 강한 반대 속에도 불구하고 "특정 비밀보호법"을 제정했으며 헌법 개헌까지도 넘보면서 자민당을 이끌어가고 있다.
 
외할아버지들처럼 역사에 남을 수상의 모습을 은근히 그려보고 있을런지 모르겠다.    
 
"아베노믹스"라는 신조어는 당당한 시민권을 얻었으며, "지구의 외교:地球儀"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새로운 외교 정책도 내놓고 있다.
 
"지구의 외교"는 인근 국가들과의 빈번한 교류만이 아니고 "지구의 조감도"라고 해서 마치 지구의를 바라보는 것처럼 광의적인 차원에서 외교 정책을 펼친다는 것이다.
 
이 정책을 실현 시키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외교 활동이 필요하다면서 수상 취임 일년인 지난해에 약 25개국을 방문했으며 올해도 중동과 아프리카 5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러한 아베 수상의 적극적 외교 공세에서도 발목을 잡힌게 그의 아킬레스건인 역사인식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였다.
 
한.일 양국의 비판은 각오한다고 했지만 미국만이 아니고 동남아를 비롯한 유럽에서까지 정치가만이 아니고 언론들까지 비난과 우려의 소리를 높혔다. 
 
지난 해 10월 3일 미국의 존 케리 국무,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키시다 일본 외무, 오노데라 방위청대신과 2+2 회담<미.일안전보장위원회회의>을 위해 일본에 왔을 때  "치도리가후치:千鳥ヶ淵 전몰자 묘지"에 헌화를 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가족들이 찾아가지 않는 유골들을 안치한 곳인데 미국 각료가 찾아가서 헌화한 것은 처음이었다.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미국의 이러한 암묵적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아베 수상의 전격적인 참배에 대한 미국의 실망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였다.
 
지난 해 11월 주일대사로 부임하여 공전의 대환영을 받았던 케네디 대사는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실망의 담화 발표 이후 그녀의 신문기사는 단 1행도 볼 수 없다.
 
물론 대사의 업무가 미디어 노출의 업무는 아닐지라도 1개월 사이의 극적인 변화에 놀랄 따름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통의 비난은 열리지 않는 한.일정상회담의 원인까지 이어지고 있었지만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그 비난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냥 의례적으로 만나는 정상회담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성과 없이 끝난 회담 후가 더욱 곤란합니다."
 
"정상회담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있은 후에 추진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저는 변함이 없습니다."
 
무조건 만나 보자는 제안도 좋지만 박 대통령의 흔들리지 않는 정상회담에 대한 인식에 필자는 일본에 살면서도 찬성한다.
 
아베 수상은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고 해도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강행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상태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아베 수상이 중국의 해양진출에 대해서 제외국 수뇌회담에서 중국울 견제하는 발언에 대해서 노다 전
수상은 한국의 수뇌가 여학생 같은 "고자질 외교." 속에 일본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고 1월 10일 마이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발언했다.
 
수상까지 역임했던 국회의원의 인터뷰 기사로서는 품격 없는 비유의 대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리고 당사자끼리 해결이 안될 때에는 바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제삼자에게 호소하는 것도 당연하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외교가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이제까지 별로 없었던 세계적인 비난이 일어났으며, 일본이 심각하게 이 문제를 재인식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너무 공개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일 정부간의 벌어진 골은 좀처럼 메꾸어지지 않고 일본 주간지의 <한국 때리기>도 여전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주간지의 한국 때리기도 일본 독자들의 사이에 식상 기미를 갖고 올 것이다.
 
다른 한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해 한국 국회 내에 "기림비"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필자는 반대한다.
 
그 취지는 이해하지만 국회는 당당한 논리 속에 언어로서 의사 소통을 꾀하고 알려야 한다.
 
그것을 물리적 상징물로 대체하고 가시화 시킨다면 스스로 지켜야 할 국회 권위인 논리와 이론을 희석 시키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다.
 
또 위안부 당사자 모두가 원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잊고 싶은 과거의 고통과 아픔을 자신들을 위한 항의 운동이라는 주위의 권유에 압도 당해 진심을 토로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다. 
 
냉정하고 확고한 객관적 입장에서 신중을 기하여 다시 토론을 하면서 기림비 설치안은 당연히 철폐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한.일 양국민의 왕래는 다름없으며 서로 피해를 입는 불상사가 한건도 발생하고 있지 않고 있다. 양국민의 민도의 성숙도이다.
 
한달 안으로 다가선 소치동계올림픽은 김연아, 아사다 마오 선수의 한.일대결의 화제성도 무시 못하지만 4년 후에 개최되는 창평올림픽이 있다.
 
그 후에는 2020년 토쿄올림픽이 있다. 동북 아시아에서 연이어 개최되는 것은 처음이다. 민간 최대의 축제라고 하지만 국가간의 이벤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 성공처럼 4년 후, 2년 사이에 양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을 서로 협조하여 다시 한번 이웃 나라로서의 새로운 우호 증진을 쌓아야 한다.
 
이렇게 필수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들을 모자이크처럼 부분별로 처리하면서 깊어진 골을 메꾸어 나가야 한다.<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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