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호 씨 몸 조심하세요."
필자가 조총련의 문학 모임에 갈 때마다 아는 사람들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미소를 띄우면서 몸 조심하라고 한다. 그때마다 필자 역시 쓴 웃음을 띄우면서 걱정 말라면서 고맙다고 한다.
 
조총련 문예동의 정식 명칭은 "재일본 조선문학 예술가동맹"이며 이 조직에 문학부, 연극부, 음악부 등으로 나눠져 있고 필자가 참가하는 곳은 오사카지부 문학부이다.
 
한국문단에 소설가로 데뷰하고 민단지부의 의장까지 하고 있으니 민단에 문학 모임을 만들면 되지 왜
조총련 조직에 가느냐고 한다.
 
그러면서 의아스러운 시선을 나에게 보내면서 몸 조심하라고 한다. 맞은 말이다. 민단이 아니드라도 문학에 관심있는 동포들을 모아서 활동을 하면 될 것이다.
 
필자가 이 모임을 알게된 것은 약 15년 전에 마이니치신문에 소개된 기사를 보고 알았는데 한글 창작을 중심으로 활동한다는 기사였다.
 
우리말로 일상적인 대화도 어려운 재일동포사회에서 우리글로 문학작품을 쓴다는 것은 1세를 떠난 2.3세들에게는 외국어나 다름이 없다.
 
그 신선함에 이끌려서 지금까지 이 모임에 참가하는데 한달에 한두번 모여서 서로의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 비평을 한다. 시가 중심인데 가끔 일본어 작품도 발표한다.
 
조선학교를 나온 회원들의 우리말 실력은 필자가 들어도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다. 그들과 우리글로 문학작품을 논하는 것은 문학작품 그 자체도 좋지만 필자에게 있어서는 우리말 지킴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한국문단에 소설가로 등단한 사람은 지금 현재 필자 혼자뿐이다. 새로운 세대들이 지금 한국에서 일본으로 많이 오고 있지만 문인은 없다.
 
이러한 태생의 한계 속에 독자적으로 새로운 문학모임을 만든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일본어로 쓰는 동포문인들도 많지만 한국어를 아는 사람은 1세가 아니면 대화는 그런대로 가능하나 작품은 솔직히 어려운 실정이다. 
 
약 20년 전에는 "한국 소설을 한국어로 읽기"를 아사히신문 등에 명함 정도의 알림 광고를 내면서 활동한 적도 있으며, 통일일보 오사카지사에서는 "한국문학을 영화로 보기" 활동도 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피동적 자세에서 남이 쓴 작품을 읽고 보는 것이 목적이고 스스로의 창작은 없었다.
그래서 이 모임을 택했지만 가끔 남북한 관계로 필자와 문예동회원들 사이에 껄끄러울 때도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군대생활까지 해서 일본에 거주하여 40년이 지났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필자는 듣고,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려줄 의무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조총련 조직 문학부회원들이 우리글과 우리말로 창작합평회를하는데 한국적, 특히 민단 간부가 참가하니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과 함께 걱정스럽게 필자를 보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문예동회원들 작품 몇 편을 소개한다. 1세는 한 사람도 없고 모두 2.3세들이다. 문예동 오사카지부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필자도 몇편 제출했고 작년에는 "비손"을 내놓았다.
 
필자가 읽은 감상은 생략하겠다. 그러나 작품 합평회에서 언제나 어른이 읽는 동요시에서 탈피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생일날
                    리 방세
 
생일날은
태어난 날만이 아니다
사랑과 분노를 배낭에 집어넣어
헐레벌떡 가쁜 숨을 쉬면서
고개를 넘는 날이다
진실하고 곧바른 길이기에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괴로움과 슬픔과 아픔을
맞받아 물리쳤을 때
다시 태어난다
그래
생일 날은
성장한 자신을
와락 부둥켜안고
함께 한발짝 내딛는
힘찬 날이다
 
다음은 허옥녀 시이다.
 
    한가위날에
                    허 옥녀
 
휘영청 밝은 달이
하늘 중천에 뜬 한가위날
 
보름달이 가장 아름답다는
그 순간을 찍고 싶어
찰칵 샷터를 눌렀더니
 
그리운 큰 오빠 얼굴이 떠올라
쟁반 같은 보름달이 이그러졌네
 
추석에 반드시 다시 찾겠다고
약속한 날은 그 언제고
못난 동생은 올해도 이역에서
그 약속 어기며 하늘만 쳐다보네
 
서귀포 앞 바다가 바라보이는 묘지
부모님 산소 찾아 함께 향 피운 날
남매가 모이니 너무 좋다고
싱글벙글 웃기만 하던 우리 큰 오빠
 
벌초는 끝났을까
과일이랑 송편도 장만했을가
올해도 혼자 술 한잔하면서
한 하늘 아래 보름달 보고 있을가
 
두시간이면 가닿을 고향땅
아직은 달나라만큼 멀기도 하지만
휘영청 달 밝은 한가위날은
달빛 속에 우리 오빠 만나는 날이라네
 
다음은 진승원 시이다.
 
    꼬옥 안아주다
                    진 승원
 
엄마는 말없이
꼬옥 안아준다
 
떼쓰며 우는 아이를
나무라지도 않고
달래지도 않고
한참이나 안아준다
꼬옥
 
똑 똑 보드라운 고동 소리일가
포근한 픔의 아늑함일가
크게 숨을 들이 내쉬며
아이는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얼굴에 웃음 띄우며
아이의 눈물 닦아주는 정겨운 눈길
영락없는 어미니 사랑이여라
 
후끈하게 안겨지는 그 모습
알른거리는 옛 추억 속에 날 이끈다
아, 나도 그리 자랐으려니 하고
 
어미니 품에 안긴 그날 그리며
귀한 보물인듯 가슴에 안는다
꼬옥
 
다음은 박태진 시이다.
 
    편지
                    박 태진
 
여덟살된 동생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언니는 남 모르게
편지를 썼습니다
 
<시화에게
생일 축하해
공부도 운동도
계속 잘해
언니부터>
 
생일날 아침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언니는 편지를 주었습니다
 
동생은 웃으면서
고마워하고
대답했습니다
 
아침상을 차리면서
조용히 귀 귀울이던 엄마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어리였습니다
오가는 우리 말이 너무도 이뻐
 
다음은 김애미 시이다.
 
    도시락
                    김 애미
 
자식을 키워
학교에 보내면서
비로소 알게된
우리 할머니의 고마움
 
내 어릴 적에
할머니 만들어 주신 도시락
비 오는 날에도
눈 내리는 날에도
뜨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먹밥 두개에 달걀부침
 
동무들의 도시락엔
가지가지 반찬들이
푸짐하게 들어있어
냄새만 맡아도 침이 굴꺽 났건만
 
나의 도시락엔
할머니의 손맛과 함께
조선사람 되라고
조선학교 보내주신
고마운 마음들이 꽉 차있었네
 
할머님 돌아가신지 30년이 지난 오늘
나 역시 자식 위해 만드는 도시락은
할머니의 응원 소리 들려오고
할머니의 고마움 이어갈 도시락이라네
 
끝으로 한영순 시이다.
 
    하얀 축구양말
                    한 영순
  
바구니 속에 햐얀 축구양말
오늘도 시합에 못 나간 하얀 축구양말
목청껏 응원했던 그 모습
꾹 참아 밴취에 앉아있던 그 마음
용쿠나 아들아
언제나 지켜주는 하얀 축구양말
 
바구니 속엔 흙투성이 축구양말
축구 연습 끝마친 흙투성이 된 축구양말
빨래비누 칠할 때면 떠오르네
힘 있게 축구공 차고 달려
쓰러져도 더 달리는 모습
엄마 마음 흐뭇해지기만 하네
 
바람에 살랑살랑
햇살 가득 받아안은
하얀 축구양말
내일도 함께 달려주렴아
엄마는 오늘도 씻는다네
바구니 속의 축구양말을
흙투성이 될 시합날 그려보며
<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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