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스페인 산티아고길을 가는 도중, 영국에서 5일간(2011.4.13-4.17) 배낭여행을 한 기록입니다.

Rich Mond 공원

세 공주님이 사진을 찍는 엄마를 향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마을들이 울창한 숲 속에 쌓여 있어서 마을은 안 보이고 숲만 보입니다.
옛 것과 전통을 좋아하는 영국인 답게 오랜 년륜이 묻어나는 승용차들을 많이 볼수 있었습니다
눈길을 끄는 특이한 모양의 교회
Bush Park 이모저모
사슴들 표정이 제 각각~날씨가 추워서 세바스찬님의 잠바를 빌려 입었습니다.
5일간 묵은 세바스찬님의 집 정원에서
버킹엄 궁전
국회의사당 빅벤
트라팔카 광장
피카딜리 서커스
템즈강 유람선

타워 브릿지

런던 브릿지라고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런던 브릿지는 딴 곳에 있습니다.

 1894년에 완성되었으며 양안에서 각각 80m의 현수교를 받쳐주는 스코틀랜드 풍의 대소 4개의 탑과 더불어 특이한 디자인은 영국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옥스퍼드 시내 대학도시 답게 길가에 자전거가 즐비합니다

담장이들이 집집마다~너무도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과 주민 들~
Trout 공원에서
골동품 시장의 이모저모
벽에는 예외없이 멋진 그림들이~

착해 보이시는 아저씨와 작별을

2009년 프랑스 배낭여행

제1차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프랑스 길' 920km를 2009년 5월 7일 부터

6 월 14일까지 37 일간 걷고 나서, 3 일간 스페인의 마드리드, 톨레도 및 세고비아를 배낭여행 하였고 그 후 5일 간 프랑스 파리를 배낭여행을 한 기록입니다.

 42일 차)2009.6.19(금)

(루브르-개선문-에펠탑-노틀담-퐁네프-예술의 다리-에펠탑 야간 조명)

'루브르'박물관은 일찍 가지 않으면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한다고 해서 9시 30분에 도착하니 별로 지체하지 않고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 역시 듣던 대로 대단 하였습니다.

 몸도 피곤하고 미술에 조예도 없고 관심도 별로인지라 한 세시간 정도만 구경하고 올려고 했지만 결국 4시간 반 만인 두시경에 나왔습니다.

콩코드 광장쪽으로 발을 절뚝 거리며 걸어 가고 있으니, 초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같이 찍자니 서로 앞에 서겠다고 난리였습니다.

 콩고드 광장까지 가는 길 양 옆은 군데군데 조각들과 분수대가 있는 대 단위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잔디

​밭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는가 하면, 축제 비슷한 것도 열리고 음악 연주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콩고드 광장에 오니 왁자지껄하게 소리가 나서 그곳을 쳐다보니, 분수대 쪽으로 오렌지 색 상의를 입은 네델란드 청년 5명이 고함을 지르고, 그중 한 명은 수영복에 오리발을 착용하여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사진 찍기에 나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가 분수 밖으로 나오자 지나가는 아가씨들에게 싸인펜을 주며 몸에 글을 써달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싸인펜을 달라고 하여 '한국인들은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썼더니 그의 친구들이 나 보고 입술에 키스 하라고 합니다. 나는'키스는 NO' 하고 사진만 같이 찍었는데도 친구들 모두 너무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인데 참으로 재미있고 기발한 행동들이라 생각 되었습니다.

​나역시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게 되어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후 샹젤리제 거리가 2.3km 정도 이어지는데 ,중간중간에 벤치에 앉아 쉬엄쉬엄 하면서 백화점 일층에가 보니 파리가 유행의 일번지 답게 척 보기에도 모든게 세련 되 보였습니다.

​배가 고파 뭐 좀 먹으려고 가격표를 보니, 빵 한조각이 3-5유로, 커피 한 잔도 3유로라 너무 비싸서 그냥 나오고 말았습니다. 밖의 포장마차 비슷한 곳도 가격은 거의 대동소이 하였습니다.

 결국은 40여일 째 매일 먹은 딱딱한 바게뜨 빵에 밀크커피를 11유로나 주고 사 먹었지만 별로 먹은것 없이 돈만 들은 기분이었습니다.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개선문에 도착하니 미국 흑인 대 여섯명이 음악을 틀어놓고 힙합에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고 그 주위엔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30 여분 이상을 구경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에펠탑까지 걸어갈 까 생각을 했었지만, 너무 피곤하여 전철을 타고 도착하니 표를 사기위해 줄을 선 사람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1시간 20분간 줄을 선 다음에 13유로를 주고 정상까지 가는 표를 끊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8유로,13유로,21유로짜리 세가지의 표가 있는데 나는 중간 까지만 가는 엘리베이터 표를 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13유로씩이나 지불하고 막상 타고 보니 별로였습니다.

 거기다가 에펠탑에 도착 하자마자 카메라 밧데리가 방전이 되어 정작 전망이 좋은 에펠탑 위에서는 사진 한장 못 찍고 내려 왔습니다.

8시에 숙소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는 '자전거 나라'라는 여행사가 무료로 도보야간 투어를 해 준다기에 룸메이트인 청년 두 명과 노틀담 성당에 가보니, 우리를 포함해 한국인 여행자들이 14명이 있었습니다.

혼자 다닐때는 모든게 불어로 쓰여있어 그냥 사진만 찍는게 전부였는데 가이드가 걸어가면서 계속 설명을 하니 너무 좋았습니다.

거기다가 말을 얼마나 재미있게 하는지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노틀담을 거쳐 루브르 박물관,퐁네프 다리,예술의 다리,에펠탑에 가서 에펠탑 조명쇼를 보고나서 우리를 안내해준 가이드가 섹스폰을 꺼내더니 연주까지 해 주었습니다.

​가이드 일정이 모두 끝나자 내가 주도하여 2유로씩을 거둬 수고비로 전달 하였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12세기 말에 시작한 왕궁은 루이 13세,14세, 15세때 까지 증축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르사이유 궁이 건설되고 왕궁을 옮겨가자 루브르 궁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습니다. 나폴레옹이 집권하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전쟁에서 약탈해온 명화와 조각품으로 소장품을 늘리게 됩니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은 나폴레옹 3세때 마무리 되는데 무려 400년이 걸린 것입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 최대규모의 박물관으로 10개 구역에 3만 5.000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고대 에서 19세기 근대까지 고대 오리엔트,이집트의 회화,조각,예술품과 이슬람 미술,그래픽 미술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모나리자 상 앞에서)

루브르 박물관 광장
공원에 놀러 나온 초등학교 학생들과)
콩코드 광장에서~
네델란드 청년의 배에 보디 페인팅을...)

멀리 개선문이 보입니다

개선문 앞에서~

나폴레옹 1세가 오스테를리츠 전쟁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높이 50m,폭 45m의 건축물로 정작 개선문을 만들도록 한 나폴레옹은 생전엔 이곳을 통과 하지 못하고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1821년 사망 했습니다.

(노트르담 대 성당)

중세시대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당시 주교였던 모리스 쉴리가 1163년에 공사를 시작해 200년이 지난 1345년에 완성 됬습니다. 1991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습니다.

​노트르담 대 성당의 하이라이트는 성당 내부 양쪽에 있는 화려한 스테인글라스로 꾸며진 장미의 창과 외부에 조각된 기괴한 모양의 가고일 괴물상입니다.

노트르담은 'OUR LADY' 라는 의미로 성모 마리아를 뜻 합니다.

퐁 뇌프 다리)
-'NEUF=NEW'라는 뜻과 달리 1604년에 만든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서 영화 '퐁 네프의 연인'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영화 촬영시에는 파리시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근처에 똑 같은 세트를 만들었다 고 합니다. 센 강에서 유일하게 목조로 만든 보행자 전용 다리입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인증 샷!

에펠탑에서 레이저 조명을 쏘고 있습니다. 80km까지 빛이 나갑니다.

43일 차)2009.6.20(토)

8시30분 쯤 룸메이트 대학생 친구들과 셋이서 '벨사이유 '궁전을 향해 출발 했습니다.

아일랜드에 1년동안 영어연수생으로 있었던 학생이 있어서 어련히 잘 하겠지 하고 아무 준비도 안하고 떠났습니다. 가면서 보니 방향을 잘 못 잡은것 같아 '가는 길이 틀린 것 같다'며 내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몇 번 물어 보면서 확인하다 보니 20 분 이상 지체 하였습니다.

'메트로'(metro) 노선도를 읽는 방법을 완전히 숙지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비록 '메트로' 노선도의 이해도는 뒤 떨어질지 몰라도,영어나 스페인어를 너무도 잘 하지 못 하면서도 만나는 누구에게나 용감히, 거리낌없이 물어보기 때문에 노선을 찾는데는 남보다 더 잘할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다만 내가 물어볼 때마다 스페인 인 과 프랑스 인들이 확실한 정보도 모르면서 너무도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느라 더 혼란 스러웠습니다.

 워낙 땅 덩어리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우리나라는 자신이 잘 모르면 '잘 모르겠습니다'하고 그냥지나치지만 이네들은 관광대국의 국민답게 모든 사람이 외국인들에게 너무도 친절한 나머지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직접 가리켜 주려 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출발 후 2시간 째인 10시 30분경에 '벨사이유 궁전'에 도착해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고 표를 끊고 입장한 시간은 11시 30분이었습니다.

​같이 간 룸메이트 학생들은 두 코스의 표만 끊고, 나는 전 코스인 세코스의 표를 구입하여 입장 하였기에 그들과는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12시 쯤 갑자기 오른 쪽 발목이 삐꺽 거리더니 순간적으로 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아차 ! 이제 큰일입니다. 과연 이 발로 앞으로 남은 3일간의 여정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보니 아프긴 해도 다행히도 천천히만 걷는다면 걸을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천만 다행입니다. 신발끈을 모두 풀고 90세난 노인처럼 어슬렁 어슬렁 걷기 시작 했습니다. 왕궁은 '루브르'의 나폴레옹 3세 방 보다 훨씬 못 한것 같았습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벨사이유' 궁전을 지은 이후에 '루브르' 박물관을 지었기 때문이리라...다만 건물의 외양이나 내부를 금박을 입힌게 특징이었습니다.

​세계 제1이라는 정원은 왕궁에서 바라 볼 때부터 너무 멋 있었고 아주 커 보였는데 막상 정원을 걸어보니 실제는 훨씬 더 거대 하였습니다. 2시 쯤 되자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 하였습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간이 매점이 안 보였습니다.

 '이렇게 넓은데 왜 매점을 안 만들었을까 ?' 하고 생각하며 두리번 거리다 보니 서너명이 아이스 크림을 먹으며 걷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아! 이 근처에 매점이 있구나 '하고 둘러보니 화장실 앞에 매점이 있었습니다. 외부에 메뉴와 가격표가 있었으나 프랑스 글에 까막눈이라 눈 뜬 봉사입니다.

 주방을 보니 전(煎=부침개) 같은 것을 열심히 만들고 있기에, 내가 유일하게 아는 프랑스 메뉴인 '밀크 커피'(까페 꼰 레체)에 주방장의 손을 가리키며 전을 주문 했습니다.

전은 속에 아무것도 넣지않고 전 위에 초콜렛을 뿌린 것이였는데, 막상 음식을 받아들고 보니 황당 하였습니다. 가격은 5.3유로....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먹고 나니 점심은 커녕 요기조차 안 되어서, 또다시 스페인에서 매일 먹었던 지긋지긋한 '보까디요'를 5유로에 시켜 먹으니 그때서야 배가 든든 하였습니다.

​허나 점심을 10.3유로(한국 돈 18.000원)에 먹은게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구경을 다 끝내고 기차역까지 걸어 오는데만 두시간 가량 소요 되는 바람에, 역에 도착하니 거의 탈진 상태입니다. 발이 계속 시큰거려 역 안에서 한참 앉아 있다가 콩나물 시루같은 열차에는 빈 좌석이 없어서

​선채로 있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7시 30분, 벌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벨사이유 궁전'을 본 다음 '노트르담 대 성당' 근처를 보고 저녁 후에는 룸 메이트 들과 파리의 야경을 보기위해 유람선을 타기로 약속 했으나, 발목도 많이 아프고 피곤하기도 하여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식사를 마치자 마자 바로 취침 하였습니다.

​주인 아줌마에게 앞으로 남은 숙박비 3일치를 지불하고 나니 남은 돈은 150유로 뿐...이 돈으로 3일간을 보내야 하는데 관람료가 많이 들어가서 한층 아껴 써야겠습니다. 아낀다고 해도 식비 외에는 아낄 게 없지만...

그나저나 내일은 아픈 발이 나을까?....아무렴, 이제 3일간 만 버티면 된다.

화이팅!

​벨사이유 궁전 앞에서~

과거 '벨사이유'는 인구 100명이 모여서 사는 작은 마을로 루이 13세의 사냥터로 개발 되면서 알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아들인 루이 14세가 1661년에 짓기 시작해 50년이 지난 1710년에 완공 되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후 왕족들이 떠난 후에 1837년 부터 박물관으로 전환하여 개방했다고 합니다.​ 루이 14세의 영광을 위하여 만든 베르사이유 최고의 걸작입니다.

길이 73m,폭 10.5m,높이 12.3m의 이 홀은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 사이에 있습니다

17개의 커다란 창문으로 정원을 내다볼수 있고 창과 대칭되는 반대편 벽에는 총 578장의 작은 거울을 짜맞춘 17개의 대형 거울이 있어 '거울의 방'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천장에는 로마황제,왕족의 위대한 업적,전쟁에서의 승리등을 묘사한 금박장식이 화려한 30점의 그림이 있으며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도 이 곳에서 체결 되었습니다.

벨사이유 궁전의 정원과 대 운하) 1661년-1700년 르노트르가 설계한 정원으로 프랑스식 정원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400개가 넘는 대리석상과 청동상,태양의 신 아폴로 분수등으로 꾸며진 정원의 총 면적은 8.000ha, 둘레의 길이가 43km나 됩니다. 산책 장소겸 왕족의 사냥터로 이용되었습니다.

 '벨사이유' 궁전 정원의 분수대)

 '벨사이유 '궁전 숲 길)
루이 15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살던 '왕비의 촌락'
 마리앙투아네트'가 1783-1785년에 조성한 촌락입니다.

당시의 유행이 '루소'가 주장하는 '자연으로 돌아가라'였는데 유행을 좋아하는 '마리앙투아네트'가 이곳에 전원 풍의 집 12채를 지었습니다.

(벨사이유 '궁전으로 가는 길)

 왼 쪽부터 차도,인도,차도 겸 인도로 되어있어걷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눈에 띄입니다 노랫말에 나오는 '몽마르뜨' 언덕을 갈까 말까 한 참 망설였습니다.

룸 메이트들이 갔다온 후, 전부가 너무 좋다고 하였습니다.

'젊으니까 좋았겠지?'하고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딱히 딴데 갈데도 마땅한 곳이 없기에 가 봤는데 결과는 대만족입니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계단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 음악회, 각종 퍼포먼스,브레이크 댄스등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앞,뒤,좌,우 어느 곳을 둘러봐도 너무도 행복한 표정들을 짓고 있습니다.

 나 역시 마치 천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편안한 마음으로 즐거움을 만끽 하였습니다.

아하 ! 이래서 이 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높은 언덕에 우뚝 솟은 '사크레 쾨르'성당은 참으로 예쁘고 멋 있었지만 성당과 어우러져 계단에 꽉차게 앉은 사람들을 보노라니 글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즐거움과 여유는 배낭 여행가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이리라...

 여기저기 앉아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즐기다가 성당 뒷 쪽으로 갔더니, 노천 까페에 사람들이 즐비하게 앉아있고 또한 한 곳에는 4각으로 돌아가면서 화가들이 직접 초상화를 그리거나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고 있었습니다. 화가들은 거의가 서양 사람들인데 중국 사람인 것 처럼 보이는 사람도 4-5명 있었습니다.

 보통 초상화 그림값은 20-30유로이고 그 외 그림은 50-100 유로였습니다.

 한 중국인은 사람을 가위로 종이를 오려 본인의 초상을 만드는데 1분만에 완성 하고는 무려 20유로나 받는데도 사람들이 신기해 하며 줄을 서고 있는 반면, 어떤 화가들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원칙이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80세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다정히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앞에 놓인 모자에 얼마나 돈이 모일까? 하는 괜한 걱정도 해 보았습니다.

 여유가 없어 돈을 주지 못하는 내 마음도 짠 합니다.

 아마 이들 화가나 연주자들은 돈을 벌기 보다는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다들 얼굴에 화사한 빛이 감도는 것 같아보여 퍽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 처럼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각종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 만도 대충 100여명이 넘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유원지 현지까지 가는데 모두 승용차를 이용하기에, 갔다 왔다 하느라 힘을 모두 소진하고 마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또한 바가지 쓸 일도 없이 준비해간 간단한 음식(빵이나 음료수)으로 즐기기 때문에 보기에도 좋아 보였습니다.

나 역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들처럼 할 수 없는 이유는 교통시스템이 완전치 못하고 음식문화가 길에서 쉽게 먹을수 없는 밥과 국 문화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본인이 직접 싸 가는것은 간식(김밥,음료수,과일)정도이고, 점심이나 저녁은 식당에서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저녁 11시 부터 12시까지 파리 야경을 보기위해 10유로를 주고 유람선을 탔는데, 남들은 다들 좋다고 하는데 나는 무척 실망 하였습니다. 공연히 10유로만 날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강변을 따라 수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거나 춤을 추며 즐기는 모습을 본 것과 프랑스에서 야경을 보기위해 유람선을 한 번 타 봤다는 의미외에는...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1시 30분이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 봐서 오늘처럼 피곤하면 하루를 푹 쉬어야겠습니다....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하루종일 피곤하였습니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등 기독교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13세기에 제작된 것 중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합니다.

파리의 건물은 모두 이 처럼 하나의 조각 작품 처럼 예쁩니다

평화의 벽)
-평화라는 단어로 세계 각국어로 쓰여 있습니다. 물론 한글도 있습니다

사크레 쾨르' 성당과 '몽마르뜨' 언덕)

시크레 쾨르' 성당은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58.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배하자 침체된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모금한 돈으로 지은 성당입니다.

 파리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어서 전망이 좋습니다.​

​('몽마르뜨' 언덕)

어제 저녁 까지만 해도 그동안 파리시내 주요 관광지를 거의 다 구경하였기에 오늘은 '고흐'가 마지막을 보냈다는 교외에 있는 auvers sur oise'에 갈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아침을 먹고나서 생각해보니 거기는 너무 멀어 무리일것 같았습니다.

 까미노'를 끝내고 나서는, 아침에 출발할 때는 괜찮은데 숙소를 떠나 30분 쯤 지나면 온 몸이 노곤하고 졸립기만 하였습니다. 아마 몸이 많이 피곤한 상태인것 같습니다.

 3일 전 부터는 조금만 걸어도 발목과 발바닥이 아팠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오늘 일정을 오페라 극장 '가르니에','엘리제궁','콩코드 광장'을 거쳐 '뤽상부르'공원까지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오페라 극장은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닌데(공연을 한다면 당연히 비싸서 들어갈 엄두조차 안 났겠지만) 텅 빈 극장만 구경하는데 8유로였습니다.

그게 화가나서 오페라 극장을 보고 나서는 '판테온' 입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문의하여 겨우 '엘리제 궁'을 찾아 갔는데 이상 하였습니다.

 경찰관 비슷한 사람이 한 두명 서 있고 몇 사람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있길래, '요즘은 대통령이 살고 있지않고 딴 용도로 쓰는가 보다'하고 한 바퀴 둘러보다 보니 어딘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웬걸 이 곳은 국립 미술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물어물어 어렵게 찾은 '엘리제 궁' 앞엔 관광객이라곤 오직 나 혼자 뿐, 길 건너에 한 남자 경비병은 차 안에서 빵을 먹고 있고 여자 경비원은 차 밖에서 선 채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게 엘리제 궁이냐'고 물으니 '맞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어이 없었습니다. 파리는 거의 모든 건물은 하나 하나가 마치 조각 예술품처럼 너무나도 멋있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은 상대적으로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것을 보려고 거의 한 시간 이상을 소비했다고 생각하니 좀 분하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민박집에서 본 프랑스 여행책자는 2006년도 판인데 이 곳을 꼭 방문해야할 장소로 쓰여 있기에 온 것인데.... 유명인사들이 묻혔다는 '판테온'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서 입장표를 구입하기 직전 그냥 밖으로 나와버렸습니다. 조금 전에 본 오페라 극장처럼 거의 매일 보는 성당과 별반 다를게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8유로가 갑자기 아까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철을 타고 '뤽상부르'공원 행...

 공원에 도착하자 마자 의자 2개를 확보하고 발을 올려놓고 비스듬히 누운채 졸다가,자다가 하면서 근 한 시간을 휴식했습니다. 여행 하면서도 계속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여기선 신발 벗고 쉬는 사람도 꽤 있기에 나도 모처럼 신발을 벗고 누우니 잠이 스르르 옵니다.

 파리는 공원 천국,박물관 천국,예술천국인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넓다란 공원이 시내 곳곳에 있고, 공원마다 분수와 잔디와 꽃과 조각품이 어우러진 종합 박물관이라고나 할까...일본인 같아 보이는 젊은 여자 한테 (서양인들에게 몇 번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 했는데 사진 찍으면서 움직이는 바람에 사진마다 초점이 안 맞았습니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니 한장,두장, 방향을 바꿔가면서 까지 찍더니만, 내게 영어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코리아'라고 말하자 '어머, 한국분이세요' 하며 자기도 한국인이라며 반가워 하였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한국,일본,중국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젊은 여자는 전혀 구분이 안 되었습니다. 아무튼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처음 대하기가 무척 어렵고 딱딱한데, 이 학생은 퍽 상냥해서 짧은 만남이었지만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6월 10일 '산티아고'에서 만난 한국인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이 납니다.

 50대 중반의 한 한국인은 원래 그 보다 나이어린 친목회원 5-6명과 같이 올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동료들이 못 오게 될 형편이라서 부득이 혼자 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준비과정에서 후배들이 '선배님은 저희들이 모실테니 그냥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하는 바람에 아무런 준비없이 왔다고 합니다.

 영어회화 실력도 별로인데다 까미노에 대한 상식도 없어서 외국인들에게 물어 볼 엄두도 못내고 젊은 한국인들에게만 몇 번 물었더니 너무 쌀쌀하게 대해 전혀 도움을 못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아무런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대한 정보도 없이 걷다보니 40KM이상을 걸은 적이 많아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곤한 나날이었다고...

​그렇게 어찌어찌 하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나니 귀국 여정이 6일이나 남아, 앞으로 남은 일정을 부득이 '산티아고'에서 보내야 한다며 푸념 하는것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만난 한국인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 왔기에 그들에게서 얻을 정보가 전혀 없었으나, 반가운 마음으로 말을 건네면 퉁명스럽게 대답하여 적잖이 실망한 적이 여러번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 만난 이 아가씨는 예외였습니다.

 오늘은 이만 구경하고 파리 여행의 마침표를 찍자 마음먹고 전철역으로 가는데, '맥도날드' 비슷한 '패스트 푸드점'이 있어서 가게 안에 있는 메뉴판을 읽어보니 4유로에 햄버거에 커피에 감자까지라,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돈도 좀 남았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사치를 한번 부려보자고 생각하고 들어가서 주문하는데, 내 앞의 두사람은 이미 주문한 상태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점원은 그냥 할 일 없이 서 있기에 손 짓으로 주문 받으라고 했더니 '기다리라'란다. 아 차! 또 한 번 이 곳 식당의 예절을 까먹은 것이었습니다.

​종업원이 물어 볼 때 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했습니다. 음식을 갖고 테이블에 앉고보니 빨대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차 판을 봐도 없도 어디 딴데 있나 하고 살펴봐도 없길래 다시 창구에 가서 종업원에게 손짓으로 얘기하니, 손 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창구앞에 보턴을 누르니 빨대가 스르르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옆의 손님이 뭐라고 말 하니 소스 같은 것 2개를 주었습니다.

 나도 손가락으로 달라고 하여 소스를 얻어 맛있게.배불리, 싸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호주머니를 뒤져 남은 차 표를 세어보니 5장이었습니다.

 내일 여유있게 2장을 쓰더라도 석장은 여유가 있길래, 그동안 한 번도 안 타본 버스타기를 경험해 보자고 마음먹고 행인들에게 노선 묻기를 수차례 하였습니다.

 그들 역시 옳지않은 정보를 열심히 설명해주는 바람에 계속 혼선을 빚으며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7시경이 되었습니다. 저녁을 마친 후 내일아침 일찍 떠난다며 룸메이트 이 군이 '술이나 한 잔 하는게 어떠냐?' 고 하여 와인 한 병을 사 와서 같이 먹으며 이별을 아쉬어 하였습니다.

 나이는 29세로서 비록 한 때 방황하여 부모마음을 상하게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발랄하고 생동감넘치는 쾌활한 청년이었습니다.

 귀고리를 하고 어느 사람들과도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이끌어 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나와 대화한 후에는 '오늘 너무도 많은 인생공부를 하였고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메일 주소 좀 알려 주시고 제가 혹 제주에 가더라도 모른 척 하지 마십시오'라고 너스레 까지 하는 여유를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오페라 가르니에')

'나폴레옹 3세'의 명에 따라 35세의 무명 건축가인 '샤를 가르니에'가 공모전에서 합격 하여 설계한 극장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매혹적인 '샤갈'의 천장화 '꿈의 꽃 다발'을 볼수 있고 8톤이나 되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습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이곳 '오페라 가르니에'입니다.

팡테옹')

-'에펠탑'이 들어서기 전에는 파리를 방문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791년 부터는 혁명에 공헌한 위인들의 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로 이곳에 매장된 사람은 '미라보'이며 이 후 '볼테르','장자크

 루소', '빅토르 위고','에밀 졸라'등 프랑스를 빛낸 작가,과학자,장군,종교,정치가등 80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

뤽상부르' 공원에서)

파리 시내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파리 시민들이 쉼터로 사랑받는 공원입니다.

 1630년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데 메데치'가 고국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세운 궁전은 작은 '피렌체'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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