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한라윈드가 8번 연주 갔습니다. 갈 때마다 부러운게 입장할 때 줄을 섭니다. 연주회 시간이 다가오면 오픈을 하는데 30분 동안 입장합니다."

"3년 전 쿄토에 갔는데 비가 오는데도 30분 기다려서 들어오는 그러한 문화풍토는 역시 한국보다 일본이 앞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단원들은 저에게 친일파라고 하는데 나는 친일파가 아니라 극일파입니다."

"그런 부분은 우리니라가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죠. 할머니가 손자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모습 참 부럽습니다."

시민밴드 한라윈드앙상블 창단 20주년 기념지 "트드멍 달래멍 20년: 헐뜯으며 달래면서"를 지난 5월 발행하면서 갖은 좌담회에서<2013.11.15> 지휘자 김승택<79> 선생의 발언이었다.

이 연주회에는 오사카 사는 선배가 알려주어서 선배들과 같이 필자도 관람했다. 2009년 4월 25일 날이었는데 비만 온 것이 아니고 홋카이도는 일미터 가까운 눈이 내려서 꽃샘추위가 아니라 겨울이 다시 온 날씨였다.

그 전까지 필자는 한라윈드앙상블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며 시민밴드가 그 많은 악기를 갖고 일본 쿄토까지 갖고와서 연주했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그런데 이번 한라윈드앙상블이 창단 20주년을 맞이해서 기념지를 발간한 내용을 읽고 그 놀라움은 더욱 컸다.

"연주회에 오면 즐겁고 단원들이 희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관객이 너무 적을 때는 참 좋은 걸 같이 못 보니 아쉽구요. 세상에 5천원짜리 연주회가 어디 있나요? 선생님이 티켓을 보내주십니다."

"그러면 아파트 주민들에게 그 티켓을 10팀에게 주면 두 팀밖에 성공 못했어요. 왜 그럴까. 그런데서 섭섭한 게 아니라 잘 되었으면 더 사회가 좋지 않겠나 생각하죠."

"실제 영국은 런던에서 청소년 사고가 많으니 런던시청에서 동네마다 꽃집을 만들었답니다. 제주를 자연과 음악이 있는 섬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가운데 한라윈드가 우뚝 서있습니다."

김승택 선생 자택에서 열린 좌담회에 제주문화예술재단 기획팀 김오순 씨의 사회로 열린 5명의 참석자중, <헤아릴수 없을 만큼 한라윈드앙상블연주를 본 관객>으로 소개된 오용순 씨의 말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의 한라윈드앙상블은 1993년 5월 1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우축전 초청연주>를 시작으로 2013년 12월까지 255회의 연주를 갖었었다. 이 외에도 1993년부터 2013년까지 구좌읍, 한경면, 남원읍충혼묘지 현충일 날 연주 기록도 있었다.

255회의 연주 속에는 1994년 일부 단원이 참가한 토쿄연주회까지 포함하여 일본 각지에서 갖은 연주회가 12회가 있었으며, 일본시민밴드가 제주에 와서 연주한 것이 4회였다.<김승택 선생은 일본 연주회가 8번이라고 했지만 자료상에는 12회였음>

한.일간의 교류에는 자매도시결연 형식 등의 공적기관과 한라윈드앙상블처럼 민간 교류가 있다.

공적기관인 경우에는 지속성은 있지만 담당자의 임기와 맞물려서 지속적 인적 교류에는 한계가 있다.
담당부서 임기가 끝나서 전근 등의 이동으로 자리바꿈이 있으면 다시 새로운 인맥을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교류는 본인이 그 단체의 일원으로 있는한 계속 유지할 수가 있다. 이러한 지속적인 교류야말로 끈끈한 우정 속에 더욱 친밀한 관계를 도모할 수 있다.

앞에서도 썼지만 한라윈드앙상블은 일본 연주회가 12회, 일본 시민밴드의 제주 연주가 4회로서 모두 16회가 된다. 물론 일본 시민밴드의 제주연주회가 한 단체만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공유할 수 있는 교류의 충실함은 일반 관광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어려운 재정상태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일본 시민밴드와 교류를 갖고 있는 한라윈드앙상블의 업적은 높게 평가되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라윈드앙상블이 내적 요소가 충실해아 하는데 여기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한라윈드의 브랜드는 김승택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선생님 성격이 완벽주의자입니다. 그것은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앞으로 포스터를 누구로 할까 고민할 때가 됐습니다. 선생님 이후 상황도 고민거리입니다. 선생님이 언제까지 단체를 끌고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한라일보 진선희 기자의 지적은 20년간 한라윈드를 이끌어 온 김승택 선생의 연륜을 일깨워주었다.

"한라윈드앙상블 창단하는 해에 저는 미국으로 유학 떠났습니다. 2011년 귀국하여 보니 선생님께서 한라윈드 음악감독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더군요. 귀국 후 스케줄이 겹치지 않느한 한라윈드 연주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더 세월이 흘러 거동이 불편하셔도 단원들이 부축하여 무대에 나오는 한이 있어도 무대를 지켜주시고 지휘하는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선생님이 무대에서 지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우리나라 현역 지휘자 중 제일 연장자이십니다. 단원들에게 선생님이 나이가 드셨으니 그 다음 사람이 왔다는 생각보다 지휘하기 힘들어도 선생님이 끝까지 지휘하실 수 있도록 해주자. 그것이 보답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오현고등학교 당시 김승택 선생의 제자인 김우신 <미국 글로벌심포니 윈드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한라윈드56회 정기연주회 객원지휘자>는 은사에 대한 심정을 술직히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회비라도 명분없는 돈 받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연습실 임차료 연 6백만원 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연습실 집세를 만들어야 할 상황이 되어서 회비를 걷었습니다. 창단 19년만에 차음으로 회비를 받았어요. 선생님은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사람이 못 쫓아갑니다. 이미 내 후년까지 스케줄 짜놓았어요. 처음 뵙고 계속 놀라는 것이 우리는 당장 다음 날 예측도 못하는데 선생님은 내후년 일정까지 계획하고 계셔요. 저희기 따라갈 수 없으니까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아주 멀리 가 계십니다."

정호규 <한라윈드앙상블 단무장>의 말은 즐거운 비명 같았다.

188쪽의 기념지 내용에는 창단 당시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단원들의 연습회 출석부까지 게재되어서 놀랐고 <일본 지방별 시민관악단과의 운영비교>까지 게재되어서 진선희 기자의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제주에 한라윈드앙상블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한라윈드앙상블의 발전 속에 실타래처럼 꼬인 일본과의 교류도 계속 추진되기를 기원한다.

2009년 4월 25일 한라윈드의 쿄토연주회에 대해서 제주투데이에 쓴 필자의 글을 첨부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75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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