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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마니아의 낙원, 피지아름다운 자연 자랑하는 남태평양 환상의 섬나라
제주투데이 | 승인 2014.11.11 09:32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자원, 여유 있는 사회가 피지의 축복이라 한다면, 손등에 손바닥이 있듯 심각한 갈등의 저주도 병존한다. 피지는 1970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4차례 쿠데타를 겪었다. 그런데 그 쿠데타가 모두 인도계 피지인의 권력장악과 요직진출을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민주선거에 의해 인도계가 다수인 의회가 구성되고, 인도계가 총리로 취임하자 원주민(Kai-Viti)이 독점하고 있는 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군사정부를 세웠던 것이다.

   
     

2000년에는 민간인 강경파가 총기를 들고 의회를 강제 점거해 의원들을 볼모 삼아 한 달 동안 버틴 일도 있었다. 피지는 지금도 2006년 쿠데타 지도자였던 해군 제독 출신 프랭크 바이니마라마(Frank Bainimarama)가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다. 2014년 선거를 통해 민정 이양하도록 예정돼 있다. 인도계가 다시 집권하는 것은 군이 방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피지주재 외교사절단은 현정권이 옷을 갈아입고 재집권해 정치적 안정을 이루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피지는 332개 섬 가운데 110여 개 유인도가 있고, 모든 섬의 땅을 합치면 제주도의 10배, 경상남북도 면적과 비슷하다. 인구는 모두 90만 명이어서 제주도의 1.4배 가량 된다. 이 가운데 카이비티가 57% 남짓, 인도계가 38% 가량 된다. 인구는 원주민 쪽이 많지만 공부를 게을리 하는 성향이 있어 교육수준이 높은 인도계를 당하기 어렵다. 첫 쿠데타가 일어난 1987년 이전에는 인도계가 60%를 차지했는데 4차례 쿠데타를 겪으며 인도계 5만 명 이상이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등지로 이민을 갔다.

   
     

19세기 말 영국에 의해 계약노동자로 이주한 인도인의 후예는 인도계 피지인(Indo-fijians) 또는 피지출생 인도인(Indians Born in Fiji)이란 두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인도계는 스스로 피지인이라고 하고 원주민들은 인도인이라고 보고 있는 셈이다. 일상생활에서 종족 갈등이 표출되거나 폭발하는 일은 드물다. 인도계 인구의 숫자가 많을 뿐 아니라 피지인들은 전통적으로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지인들이 즐기는 ‘카바’ 음료를 마시는 자리에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들어보면 인도계는 피지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드러나곤 한다. 또 인도계가 부지런해서 거의 모든 경제활동을 장악하고 슈퍼마켓과 버스회사, 판매점 등을 독점 소유하고 있는 데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카이비티 사람은 인도계를 나치 독일 치하의 유대인에 비기기까지 했다. 유대인에게 가해진 신체적 위해와 박해를 감안하면 심각성이 있는 비유였다. 또 다른 사람은 카이비티끼리 인도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며 벼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도계는 주로 상업활동에 종사하다 보니 푼돈에 집착하고 탐욕스런 인상을 주는 경향도 없지 않은 듯했다.

피지의 본 섬을 일주하는 버스회사는 모두 인도계 소유고 운전사와 차장, 검표원도 인도계가 대부분이었다. 피지는 경제수준에 비해 기업의 내부 감시확인체제가 철두철미해서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운전사는 교대가 없어도 4명의 각각 다른 검표원이 잇따라 승차해서 승객들의 차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탄 버스는 차장이 중간 승차자에게 요금을 받고는 차표를 주지 않는 수법으로 돈을 빼돌리고 있었다. 가만히 관찰하니 차장 한 사람이 아니라 검표원, 운전사 등 관련자 전원이 공모해 ‘삥땅’을 하는 것이었다. 감시가 아무리 철저해도 속이는 방법은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과 한편으로 버스회사 종업원 처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많은 피지 사람들은 장차 카이비티와 인도계가 심각하게 충돌할 일은 없을 것이고 더불어 공생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피지인들의 느긋한 성품을 감안할 때 일리 있는 전망이다. 그러나 종족갈등이 내연하다 어떤 계기에 촉발돼 폭력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느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한 피바람이 몰아닥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피지경제는 사탕수수와 코코넛 등 농업생산과 관광, 설탕 가공, 야자유 생산 등 산업에 주로 의존하는데 EU의 설탕 보조금 폐지와 쿠데타와 관련한 국제 제재에 따른 관광객 감소, 외국원조 중단의 여파를 아직도 겪고 있다. 피지경제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정부와 사회 지도층이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지인들에게 들어본 결과 국민적 컨센서스는커녕 미래비전과 발전제안 자체가 부재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렇게 볼 때 피지가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피지는 어느 곳으로도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피지는 외양상 변화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적 근대화 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21세기에 모든 나라가 산업화와 근대화의 똑같은 길을 밟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전통사회로부터 산업사회를 건너뛰어 정보사회로 도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피지가 남태평양의 교통통신 허브로 기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면 싱가포르 등 강소국의 개발전략을 참고할 여지가 있다.

실제 피지는 최근 북방정책(Look North Policies)을 표방하면서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 국가와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글로벌 통상국가인 한국으로서도 피지와 남태평양에 대한 투자와 협력을 크게 늘릴 필요가 있다. 한국은 공공보다 민간, 특히 기업보다 개인이 해외진출에 과감하고 적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경험상 세계 어떤 나라의 어떤 오지에 가도 한국인이 이미 진출해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축복과 갈등, 그리고 공허감

이번 피지 여행에서 본섬 옆 조그만 섬 오발라우에 가서 19세기 말 한때 수도였던 레부카라는 인구 2000명 가량의 타운에 들렀다. 그곳에 인도계와 중국인 말고 한국인이 있었다. 세월이 충분히 지나지 않아서 사업이 완전히 착근하지는 못한 듯했지만 한국 성명을 가진 사람이 조그만 빵집 겸 가게를 차리고 있었다. 한국인의 적극성과 의지는 과소평가할 수 없음을 다시 느꼈다. 아쉬운 것은 생계형 이민보다 정보·첨단기술을 등에 업은 고부가가치 전문직 또는 사업이민으로 이뤄졌다면 더 좋았겠다는 점이다.

피지에 2주일 동안 머물면서 열흘쯤 지나자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비치의 라운지체어에 한가히 누워 트로피컬 드링크를 즐기는 꿈을 꿔왔다거나 서핑이나 바다낚시, 요트 등 수상스포츠와 스쿠버 다이빙 등 수중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지루한 줄 모르고 갈 곳과 머물 장소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데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피지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피지는 스포츠 마니아에게는 천국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한국의 추운 겨울을 벗어나 ‘피한여행’ 왔다고만 가정해도 따뜻하고 근심 없는 낙원이라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아프리카 외진 곳 파라다이스로 흘러 들어갔다가 천국의 지루함과 변화 없는 삶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곳을 탈출한다는 줄거리의 단편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 피지는 아름답다. 그러나 날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낄 만큼은 아니다. 설사 이곳에서 삶의 여유와 내적 행복감을 누린다 해도 한쪽의 빈 구석은 어쩔 수 없다. 세상 끝에 도달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해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은 달래기 어렵다. 어쩌겠는가, 모든 것이 마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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