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멧설이우꽈?" "나 마씀?" "예. 혼 아흔설이나 되어스꽈?" "아흔설 마씀? 아흔설이면 나 말도 안 허쿠다. 난 백혼설이우다." "예! 백혼설마씀!? 아니 게난 누게 때문에 맥주 사러 와수꽈?" "외방에서 온 사름 때문에 사러 와수다."
"아이고머니! 이런 일도 이시카마씀. 백설 넘은 할머니가 손님 왔젠 맥주 사러 다오시게... ..."

"느랑 목욕 갔다 오라. 게멘 난 그 사이 밥 초령 놔두크메." "예, 알아스다."
정확히 10월 29일 아침 여섯시 쯤이었다. 목욕 간다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사두었던 마지막 한장의목욕표를 주면서 말했다.

제주 삼양에 있는 <해수 사우나>는 고향 우리집에서 걸어서 약 7,8분이면 갈수 있는 곳에 있다. 언제나 고향에 갔을 때는 아침 식사 전에 갔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느랑 목욕 갔다 오라. 게멘 그 사이 난 밥 초령 놔두크메." 어머니의 이 말도 예전과 변함이 없으셨다.
목욕 갔다 와서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앉았을 때, "마, 이것도 먹으라."면서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 캔맥주 네개였다.

"아니, 이거 어떵허연 이스꽈? "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냉장고에서 꺼내는 캔맥주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느 목욕허레 간 때 나가 사왔져." 그러면서 들려준 말이 캔맥주 사러 갔을 때, 가게 주인 아주머니와 나눈 앞의 대화였다.

빙그레 웃으시면서 들려주는 어머니 말에 가슴 찡했다. "예, 고맙스다. 잘 마시겠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백살 넘은 어머니한테 맥주 사오게 한 것은 지나치다."
"나도 몰랐습니다. 목욕 갔다 와보니 있어서 제가 놀랐습니다." "오래간만에 온 아들 보니 어머니가 기뻐서 사 왔으니까 잘 사와스다게."

이러한 사실을 안 형제들이나 아는 분들의 의견은 분분했으나 어머니는 들으면서 아무 말도 않고 싱글벙글이었다.

"남들은 일부러라도 어머니 뵈러 가는데 그냥 오겠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나는 한국 어디 가드라도 어머니께 인사하려고 제주에 안 들른 적이 없었다."

"백살 넘으셔서 오늘 내일 일도 모르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으면 펄펄 후회막급일거야. 경험자 말을 듣고 건강한 때 뵙는 것이 좋아. 가서 어머니 좋아하는 음식도 사드리고 해야지."

민단 오사카본부 주최 연수가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있었다. 이러한 연수 후에 오사카로 돌아올 때는 각자가 자유로서 개인적인 일을 보거나 고향을 찾아가는 예가 많았다.

필자도 이 연수에 참가하여 서울에서 바로 오사카로 돌아온다니까 연수에 같이 가는 사람들이 백살 넘은 어머니가 제주에 계시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필자를 불효자식이라고 몰아붙일 기색이었다.

회사에 근무하는 처지에 너무 쉬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면 궁색한 변명 그만하라면서 그러면 연수 가지 말고 어머니 만나러 가라고 하는데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 연수 마치고 28일 저녁 비행기로 제주에 갔었다. 필자가 어머니께 인사차 간다면 연세도 많으시니까 관광 나들이는 어렵겠지만 모두가 어머님께 좋아하는 음식도 사드리면서 효도하고 오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제주 가지만 지금까지 필자는 어머님께 좋은 음식 한번 사드린 기억이 거의 없다. 어머니가 한사코 거부하면서 이 음식 저 음식 열거하면서 어느 것을 먹겠느냐면서 손수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러한 기회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기회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 뵈러 간다면서 제주에 가면 어머니와 마주하는 시간보다 밖에 나가서 보내는 시간과 술자리가 압도적이어서 귀가 시간은 언제나 새벽녘이었다.

한적한 삼양에서 밤 늦게 자동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들인가 싶어서 대문 열고 뛰어나가면 그때마다 헛탕치고 가슴 한 구석에 생기는 허전함은 더할뿐이었다

정작 아들이 귀가했을 때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 마루방을 손으로 내려치면서 지금 당장 일본으로 떠나라는 어머니의 불호령도 아들이 배 고프다는 말에는 상차리기에 바쁜 어머니이시다.

주위에 자식들도 있고 동거를 권유하는 형님의 말에도 혼자가 편하시다는 어머니의 말씀에는 노인의 완고한 고집이라기 보다는 어떤 위엄도 서려있었다.

형님 집에 갔다가도 아픈 때를 제외하고는 며칠도 안 살고 혼자 사시는 자기 집이 좋다면서 와버리는 어머니 앞에서 동거 운운은 지나 간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번 겨울은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다.

"방에 강 텔레비 보암시라. 나 이 그릇 씻어더그네 가크메." 부엌에서 맥주와 커피까지 마시고 아침을끝냈을 때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는 말에도 두손으로 가로 저으는 어머니 말에 나는 방으로 왔다.

이번에는 어머니 곁에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이웃에 사는 친구, 초등학교 동창 이봉성 씨와 그의 딸 대은 양과 가까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왔는데 이들 부녀의 이야기가 또 가슴 뭉클했다.

곶자왈 숲속의 기차여행을 즐기는 테마파크 <에코렌드>에 부녀가 같이 근무하는데 3개월 먼저 입사한
딸 대은 양이 직원 모집하는데 아버지를 추천해서 같이 다닌다고 한다.

자영업이면 몰라도 같은 회사에 형제는 물론 부모와 같이 근무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일반적 사회현상이라고 필자는 인식해 왔는데 딸이 추천하다니 여간 대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녀가 회사에서 가끔 같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동료들도 부러워한다는 친구의 말에 참으로 즐거운 식사 자리였다.

일본에서 가끔 부모에 대한 효자론이 거론될 때마다 필자의 모자 관계가 화제로 등장한다. 길호 씨는 다시 백살 난 어머니가 해주는 밥 먹으러 간다고 부러움 섞인 농을 걸어온다.

필자의 어머니는 지금 일어서실 때마다 무언가 의지를 하거나 그렇지 못할 때에는 양손으로 바닥에 중심을 두고 일어서신다. 옆에서 보면 불안스럽기 짝이 없지만 괜찮다고 하신다.

그러하신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음식을 먹고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채 필자는 30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나는 가장 좋은 효도를 했다고 자부한다면 비난 받을 말일까?

2008년 5월 31일 제주투데이에 쓴 <어머니>라는 글을 참고로 첨부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5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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