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는 윗집, 아랫집 사이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신경전이 한창이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얘기다.

옛날 제주는 집에 제사가 끝나면 제사떡을 이웃집에 돌려 서로 나눠 먹었던 미풍양속(?)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떡 반 나눠 먹었던 아름다운 얘기는 요즘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를 보면서 오랜 전설처럼 느껴진다.

제주도의 내년 예산은 3조 8194억 원이다.

지난 24일부터 제주도가 편성한 예산을 제주도의회가 꼼꼼하게 심의하는 중이다.

좀 복잡하지만 예산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일반행정분야 4980억원, 공공질서 및 안전분야 1531억원, 문화.관광.스포츠 분야 2083억원, 환경분야 4556억원, 사회복지분야 7279억원, 농림해양수산분야 4716억원, 산업.중소기업 분야 1623억원, 소송 및 교통분야 3632억원, 국토.지역개발분야 1189억원 등이다.

이런 예산의 편성과 심의를 두고 갈등은 시작됐다.

원래 집행부인 제주도가 내년도 살림살이에 맞게 예산을 편성하고 제주도의회는 편성한 예산이 제대로 잘 됐는가, 불필요한 부분은 없는가, 심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모두가 예산을 ‘편성’하고 ‘심의’ 하면서 서로 내세우는 명분은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편성했다, 도민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하니 빼라, 추가해라 그런 얘기다.

이에 대해 제주도의회 구 의장은 “무엇이 제주의 미래를 위한 예산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선심성·낭비성·중복·불투명 예산의 철저한 삭감을 통한 도민부담의 최소화, 성장잠재력 확충 예산으로의 조정이라는 대원을 세우고 철저하게 심의하겠다”고 말했다.

동료의원들에게는 “이와 칼을 대고 수술을 할 것이라면 당장의 통증을 유발하는 담석 하나를 제거하는데 그치지 말고, 몸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관행의 적폐를 근본적으로 들어내 예산심의의 개력 원년이 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이번엔 젊고 혁신적인 원희룡 도정의 아이콘인 ‘협치’가 혼란을 더 부추겼다.

‘예산 협치’란 이름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서로 불협화음을 보이더니 예산 심의 내내 불편하다.

지난 17일 제주도의회 구성지 의장은 자신이 제안했던 ‘예산 협치’가 거절당한 것과 관련해서도 “예산의 기능별 분배에 있어 의회와 사전 협의를 해서 배분하자고 ‘예산 협치’를 제안했던 것이었는데, 우려했던 바와 같이 공직자 몇몇 사람 손에서 좌우되는 무책임하고 무정책적인 예산 배분이 이뤄졌다”고 혹평했다.

이를 도지사를 포함한 관계공무원의 예산에 대한 이해부족을 꼬집기도 했다.

구 의장은 “예산편성 관행을 깨고 예산의 협치 시대를 열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예산심의에 새로운 착한 관행을 남길 수도 있었다”면서 “정치적 합의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었음에 도지사를 포함한 관계 공무원들이 예산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저의 정치적 제안은 이렇게 해서 끝이 났다”고 말했다.

제주도의회는 ‘협치’를 끌어들여 서로 의논해서 예산을 편성하자는 의도였고 제주도는 예산편성은 제주도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심의기관인 의회와의 예산 편성 협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서로 ‘아전인수’격으로 ‘협치’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희룡 지사가 생각하는 ‘협치’는 지금까지 행정이 일방적으로 끌어왔던 도정을 민간인과 서로 잘 의논하면서 펼치겠다는 것이다.

즉 ‘무소불위’의 막강한 도지사의 권력을 나누겠다는 뜻도 포함된다.

여기서 제주도의회가 생각하는 ‘협치’는 어떤 일이든 도민의 대변자인 의회와 의논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민을 위하는 일이면 의회와 의논하고 같이 가야한다는 주장이다.

구 의장은 “‘협치’의 의미를 이상적으로 찾지 말고 현실 속에서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원 지사를 향해 “나무가 아무리 크더라도 혼자서는 숲을 이룰 수 없다”며 “소통과 공감으로 견고하고 함께 다듬어 가는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것이 제주의 진정한 힘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훈수했다.

제주도의회 각 상임위원회별로 예산 심의를 하면서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기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스포츠국 예산안 심사에서 "협치준비위가 구성된 문화예술 분야는 예산이 무려 93% 증가한 반면 관광 쪽은 전부 예산이 삭감됐다”면서 “협치 준비위가 권력을 휘두른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원 지사는 "의회에서 (의혹을)제기했다고 기정사실화 하면 안된다"며 "증액자체가 의회에서 심사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문화예술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예산을 편성할 때 자문을 구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원 지사는 "(도의회에서)예산을 증액하고 심의했다고 하는데 (문화예술 협치위 준비위원회는)예산에 대해 의결권을 가졌거나 권한이 있는 게 아니었다"며 "문화관광부서와 예산부서, 기획정책실 등을 거치고, 도지사가 직접 예산항목 하나하나 내부 논의를 거쳐 편성했다"고 말했다.

측근 예산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원 지사는 "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은 제 측근이 아니다. 얼굴 본 적도 없는데 무슨 측근이냐"며 "임의적으로 비판하는 건 좋지만 측근 예산이라는 어마어마한 표현을 사용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원 지사는 이어서 “내년도 예산심의 과정에서 의회가 일부 예산을 증액할 수 있다”며 “다만 증액되는 예산은 객관적으로 타당하고 충분한 협의와 토론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동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도정시책 공유 간부회의에서 “실·국장들이 내년 예산안 심의에 철저히 임해달라”며 “꼭 필요한 지역구 사업 등 일부는 증액될 수 있지만 묻지마 증액은 있을 수 없고 이는 의회나 이해집단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와 시급성, 효과에 대한 공감이 이뤄질 경우 증액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며 “다만 선심성 증액이나 형평성에 어긋나게 증액하는 비정상적인 관행은 이번에 확실히 단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일 언론에 중계된 예산 심의 과정에서 생긴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와의 갈등가운데 일부다.

건전한 갈등 구조는 어쩌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갈등은 힘만 소모되고 제주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도민들은 요즘 계속되고 있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공허한 신경전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제주도의 핵심역량을 모을 행정가와 도의회 의원들은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진정 제주의 미래를 위하고 제주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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