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 오사카지검 특수부는 니시무라 신고(西村 眞悟.57) 국회의원을 구속했다. 변호사법 위반 <변호사와의 제휴 금지>이었다.

극우적인 과격한 돌출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지만 그것이 또 인기를 끌었던 민주당 소속 의원이었다.민족주의자임을 자임하고 1997년도에 일본과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센카구제도의 섬에 상륙하여 당시 수상이었던 하시모토씨로부터 비난 받았다.

1999년 10월 연립여당 자유당에 있던 그는 방위청 정무차관에 취임 후 주간지 인터뷰에서 일본의 핵무장 검토를 주장해서 16일만에 경질됐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건에 대해서는 만약 자기가 수상이라면 매일 참배하겠다는 발언을 되풀이하고 한중 양국의 비난은 내정간섭이라고 역비난을 계속했었다.또 그는 초당파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납치의원 연맹> 간사장직을 맡으면서 진전없는 일본인 납치 문제에 북한과 고이즈미 수상을 맹비난했다.

 그는 1997년도에 처음으로 국회에서 납치문제를 제기하여 피해자 가족회에서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으며,선거때마다 그들의 응원 연설은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민주당 의원 총회에서 그는 고이즈미 정책을 비난하면서 저격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었다.

이러한 그의 극우적이고 국수적인 발언과 행동을 완전히 무시하는 국민들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지명도를 높이게 되어 TV출연이 많아졌다.구속된 28일날 TV 시사(時事)방송에 출연한 일부 평론가들은 그와의 교우관계를 피로하면서 단죄에 비중을 두기 보다, <참 안됐다>는 동정론이 앞서기도 했다.

그는 교토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다섯차례나 변호사 자격 시험에 떨어져,코오베(神戶)시에 근무하다가 서른네살 때인 1983년도에 합격했다. 그후 참의원 선거에 떨어진후 1993년도에 중의원선거에 당선된 5선 의원이었다.

의원 활동으로 개점휴업 상태였던 변호사업을 정책 비서의 소개로 우익정치단체 <대일본 황성회(皇城會)><지금은 해산> 소속이었던 스즈키를 알게되어 그에게 변호사 업무를 일임했다.

1998년 5월부터 2004년 2월까지 약 190건의 변호업무를 처리하지만 니시무라 의원이 직접 관여한 것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교통사고시담건이었지만 스즈키 용의자(구속됨)는 수임료로 보상의 3~40%를 요구했지만 니시무라 의원에게는 10%밖에 안 받았다면서 그 반을 현금으로 명의 대여료로 지불했었다.

오늘 뉴스 속보에서 스즈키 용의자는 자택에 현금 삼십억원을 감추고 있었으며 니시무라 의원에게는 3억원을 지불했다고 한다.오사카후 사카이시(大阪府 堺市)가 지역구인 그는 오사카후 변호사회에 회원 이탈 신청을 했지만 거부 당하고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그는 또 구속됨과 동시에 민주당에 이당 신청을 했지만 당에서도 거부 당해서 제명 처분과 함께 의원 사직 권고를 받았다.그러나 그는 변호사직 박탈은 납득하고 있으나 의원 사직은 주위의 권유에도 불가하고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의 동료 의원들과의 교류도 별로 없으면서 독불장군처럼 극우적인 발언을 신념속에 되풀이해왔던 그였지만, <일본 신고(眞悟)의 회>라는 그의 후원 단체 조직이 일본 전국에 약 사십지부가 있다. 이번에 그의 구속으로 인해 일본 정계에서의 동정론은 거의 들을 수없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 TV에서 잘 팔리는 일부 평론가들의 동정론과 니시무라 신고의 이름을 따서 조직된지지 단체들은 일본 우경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필자는 그의 정치생명은 이제 끝났다고 보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는지 주시하고 싶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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