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삶의 문제를 새롭게 사고하는 작가들을 지원하는 문화공간 양(관장 김범진)에서 2015년 4월 19일(일)까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후원으로 유영주 개인전 ‘내 말이 들리나요?’가 열린다. 유영주는 세네갈 공원에서 버려진 쓰레기를 줍거나, 작업한 드로잉북들을 전시 후 불사르는 등 우리 주변의 문제를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보게 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새로운 실험을 이어간다. “여성으로서”로 시작하는 사운드 아트가 가득 울려 퍼지는 텅 빈 전시장 구석에는 목소리 주인공들의 속옷이 쌓여있고, 마당의 대추나무에는 속옷이 걸려있다. 또 윈도우 갤러리에는 이미 사용한 커피필터로 만든 ‘가짜 꽃’이 설치되었다.

유영주는 제주를 비롯해 서울, 경기, 충청 등지에서 105명의 여성과 개별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가는 “당신은 어떤 여자입니까?”라고 질문했고, 여성들은 “나는 여자로서…”라며 대답을 시작했다. 105명의 인터뷰 시간을 합하면 무려 300여 시간이 넘지만, 그 긴 시간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을 기록한 텍스트 작업에서다. 작가는 사연들을 하나씩 들을 수 있도록 편집하지 않고, 중첩시켰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이야기는 목소리가 되었고, 목소리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중첩되고 편집되면서 다시 청각 이미지가 되었다. 이로써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는 사라지고, 감정이 담긴 숨소리, 각 사람의 특징을 드러내는 목소리의 높고 낮음 등 감각으로 전달되는 것들이 남았다. 세상의 그 어떤 말도 누군가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처럼, 호흡과 목소리에는 여성들의 가슴 깊이 묻혀 있던 삶의 아픔, 고단함, 희망, 기쁨 등이 묻어난다.

유영주의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로부터 받은 낡은 브래지어도 여성들의 속마음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유영주 작가는 이번 작업의 주요 오브제인 속옷을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본향당의 ‘소지’와 연결시켰다. 소지는 제주 여인들이 가슴에 얹고 신에게 기도를 올린 뒤 팽나무에 묶어두던, 아무 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흰 종이다. 어떠한 문자로도 애절한 심정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소지는 여인들의 애절한 심정을 신에게 수천가지 단어가 적힌 편지보다 더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작가가 칠한 하얀 페인트로 덮여 누구의 것인지, 누구의 아픔과 환희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브래지어도 와흘 본향당의 소지처럼 여성들의 마음을 보는 이들에게 전달한다. 작가는 여인들의 사연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도록 함으로써 여성들의 절절함을 듣는 이의 가슴 깊이 남도록 하였다.

2014년 12월부터 작가가 커피를 내려 마신 후 남은 커피필터로 만든 꽃이 윈도우 갤러리에 걸려있다. 커피필터는 여인들의 하소연처럼 그 누구도 주의 깊게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필터를 가공하여 아름다운 꽃을 만들었다. 이 꽃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준 105명의 여인에게 작가가 바치는 선물이다. 또한 세상의 고통과 두려움 앞에 선 모든 이에게 바치는 선물일 것이다.

‘내 말이 들리나요?’는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작가가 그것을 수천 시간 반복해서 들은 후 작품으로 만들어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관람객이 작품을 듣는 과정으로 이루어진 전시다. 다시 말해 이번 전시는 작품의 소재이자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여성들,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 이를 감상하는 관람자가 공감을 형성해 나가는 전시다. 그리고 말로 풀어내고 듣고 공감하는 과정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일종의 치유과정이 된다. ‘내 말이 들리나요?’는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는 현대인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 그것이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할 것이다.

전시개요

전시장소: 문화공간 양
전시기간: 2015년 3월 29일(일)-4월 19일(일)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휴관:월요일)
문 의: 064-755-2018, curator.yang@gmail.com
홈페이지: www.culturespaceyang.com
주 소: 제주시 거로남6길 13(화북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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