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치러진 제67주년 4·3희생자추념식의 식전행사 합창곡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잠들지 않는 남도’와 ‘애기동백꽃의 노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합당한 해명도 없이 제외되었다. 난데없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에 도민과 유족들은 당황해 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행자부에서 갑자기 바꾼 것이라 한다. 본행사도 아닌 식전행사의 노래 곡목까지도 개입하는 국가기관의 작태가 우리로 하여금 분노와 비애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주지하다시피 가수 안치환이 제주4·3을 테마로 만들어 널리 불린 ‘잠들지 않는 남도’와 제주도 토박이 민중 가수 최상돈이 마당극의 테마곡으로 만든 ‘애기동백꽃의 노래’는 제주에서는 4·3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곡들이다. ‘잠들지 않는 남도’는 제주4·3을 직접 표현한 곡이 드물었던 시절인 80년대 민주화운동과 4·3진상규명운동 초기에 4·3을 대표하는 노래로 각종 집회 현장이나 대학가 등에서 널리 불렸으며, 최상돈의 곡 역시 제주4·3진상규명운동의 현장에서나 4·3전야제 등의 무대에서 자주 불려 유족들이나 도민 대부분은 4·3의 상징곡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노래들이다. 그런데 이 곡들이 본 행사는 고사하고 식전행사장에서도 불리지 못하게 배제되었다는 점은 4·3을 둘러싼 정부의 고압적인 태도와 국가권력이 자생적이고 역사적인 문화예술작품까지도 손을 대는 권력만능의 주술에 걸려 있음을 목도하는 일이라서 놀랍기 그지없을 뿐이다. 참 야박한 짓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본행사도 아닌 식전행사에서마저 4·3운동의 역사성을 간직한 노래를 배제했다는 점으로, 이는 4·3운동의 역사성을 담은 노래를 국가의 이름으로 행하는 공식추념식에서 완전히 배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4·3은 이미 국가수반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국가는 제주도민들과 유족들에게 속죄해야하는 당사자다. 추념일 제정 역시 그러한 공식사과의 연장선상에서 국가적 차원의 후속조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치졸한 행위가 뒤따른다는 것은 대승적 차원의 역사적 위업을 퇴색시키는 일이다. 4·3추념식은 제정 첫 해인 작년에는 평화재단이 주관했으나, 올해부터는 행정자치부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가 주관했다. 4·3국가추념식이 완전히 정부와 지방의 행정조직에 넘어가자마자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국가주의의 민낮을 드러낸 셈이다.

둘째, 행자부의 일개 과장이 자신의 취향과 의도대로 곡목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식전행사의 노래가 바뀐 이유를, 제주도의 관계자는 “(행정자치부에서) 노래를 바꾸라고 해서 바꿨다”라고 했으며, 행자부의 정의동 제주4·3처리과장은 “그 두 곡은 널리 알려진 게 아니었고, ‘행사 분위기에 맞게 많은 사람이 아는 가곡이 어떻겠냐’라고 주관처인 제주도에 의견을 전달했다. 그런 차원일 뿐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 4월 3일자 기사) 이 기사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번 곡목 배제사건(?)은 4·3처리과장의 작품인 셈이다.

지난 80년대 이후 제주4·3해결의 장도에서 함께 했던 상징적인 노래들이 행자부 과장 한 사람의 결정 때문에 별 “다른 의미 없이”, 순전히 자의적인 판단으로 배제되었다는 점은 제주도민과 유족들을 능멸하는 일이다. 60만 제주도민과 한 많은 유족의 제삿날인 4월 3일의 상징곡들을 그나마 식전행사에라도 넣었는데, 단지 행자부 과장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함부로 들어낸다는 것은 중앙정부 관료주의의 ‘갑질’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제주도지사와 실무위원회에 이미 공식적으로 보고된 내용을 정부기관이 주최한다는 명목하에, 추념식이 지역민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제삿날이라는 점과 더 나아가 그 여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좌지우지한 것은 또 다른 국가폭력이다. 가뜩이나 대통령의 불참으로 심기가 불편한 도민사회에 행자부는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셋째로 설령 행자부에서 이런 지침이 내려진다 해도, 주관처인 제주도에서는 이 일에 대해 실무위원회에 보고해서 의견을 구하든가, 4·3관련단체 등에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4·3진상규명운동은 행자부나 제주도청이 이루어 온 일이 아니다. 다만 그 운동의 성과를 공공적으로 보전하고 올곧게 지속적으로 유지해주는 임무를 국가 차원에서 넘겨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를 그대로 따른 것은 특별자치도의 지방행정의 자율성이란 측면에서도 올바르지 못한 대처를 한 셈이다. 그러므로 “(행정자치부에서) 노래를 바꾸라고 해서 바꿨다”라는 볼 맨 소리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금기의 역사로 삭제당하고 잊히기를 강요당했던 4·3은 길게는 4.19 직후부터 50여 년간 본격적으로는 80년대부터 30여 년간 도민들과 유족들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얻어낸 성과물이다. 가만히 앉아서 정부가 던져준 선물이 아니다. 제주도가 나서서 얻어낸 기념품도 아니다.

그렇다면 행자부와 제주도는 4·3의 역사적 대의와 엄중함에 경거망동했음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와 무책임한 개입을 하지 않을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사)제주민예총은 지난 30여 년간 문화예술을 통해 4·3진상규명운동에 동참해왔다.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가 이 대열에 함께 하면서 4·3해결의 저변을 넓히는 데 일조해왔다고 생각한다. 최근 4·3의 해결국면에서 과거 진상규명운동의 역사 속에서 발휘되었던 진정성과 열정들이 4·3의 공식화 과정을 거쳐 가면서 눈물과 땀이 밴 4·3운동의 진정성 어린 생동감이 많이 퇴색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점점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4.3의 냄새와 느낌은 사라지고 대신 무미건조한 의례와 의식들로 채워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골적이며 의도적으로, 공식적인 사과당사자인 국가기관이 개입해 4·3의 진정성과 역사성을 희석·탈각시키려 하는 것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4·3의 진정성과 역사성을 희석할 요량으로 향후에도 개입할 것이라면 차라리 거두어가라. ‘추념일’, 도민들과 유족들이 그토록 국가추념일을 바랬던 것은 4·3의 진실, 4.3의 실체 그대로, 국민 모두가 그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 기억하자는 데 있다. 아픈 역사의 진실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손바닥으로 가린다면 해원과 상생은 한낮 헛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경거망동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재차 행자부와 제주특별자치도의 공식사과를 요구한다.

 

(사) 제주민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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