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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왜, '제주4·3평화상’ 수상자를 두고 논란인가?
김태윤 기자 | 승인 2015.04.13 11:04

처음으로 마련된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제주 출신의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金石範·89·일본 도쿄) 씨가 선정되어 지난 1일 시상식이 열렸다.

이 상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이문교)에서 지난해 6월 4・3사건의 진상 규명과 평화·인권의 신장, 민주발전, 사회통합에 공헌한 국내외 인사(단체)를 선정하여 시상하는 상으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제주4·3평화상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천주교제주교구 주교)가 구성돼 지난해 7월부터 4·3해결에 공헌하거나 세계평화 인권운동에 헌신한 유공자 25명 가운데 6개월 동안 검증을 거치고 지난달 수상자를 결정했다.

‘제주4・3평화상’ 수상자인 김석범 씨는 4·3 대하소설 ‘화산도’의 작가로 일본에서 4・3진상규명과 평화 인권 운동에 젊음을 바쳤다. 1957년 최초의 4・3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해 일본 사회에 제주4・3의 진상을 알렸고, 1976년 소설 ‘화산도’를 일본 문예 춘추사 ‘문학계’에 연재하기 시작해 1997년 원고지 3만매 분량의 원고를 탈고, 새로운 문학사조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창작 활동으로 일본 아사히신문의 오사라기지로상(1984년)과 마이니치 예술상(1998년)을 수상했다. 또한, 1987년 ‘제주4・3을 생각하는 모임(도쿄·오사카)’ 결성을 주도해 4·3진상규명 운동과 제주국제공항 유해 발굴 필요성 제기, 일본 과거사 청산 등에 대한 소신을 일본의 주요 일간지 등에 칼럼으로 발표해 재일동포사회의 평화, 인권, 생명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논란은 김석범 씨의 '제주4·3평화상’ 수상 소감이 알려지면서 커지고 있다.

 [수상소감 전문]

4·3의 해방

한걸음 밖으로 나가면 짙은 바다 냄새 풍기는 제주 바다, 저 멀리 한라산이 우러러 보이는 이 자리에 모신 여러분 앞에서 학살터에 꽃핀 평화의 상징인 제1회 제주4·3평화상을 제가 직접 받게 되었습니다.

4·3의 해방과 자유, 이것은 인간 존재의 존엄과 자유를 위한 해방. 4·3투쟁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 4·3항쟁의 희생자, 4·3의 해방을 위해 싸워 온 섬 내외의 여러분, 제주4·3평화상 관계자 및 역사에 기록될 이 자리를 마련하는데 많은 힘을 쓰신 여러분, 이 자리에 참가하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한국 국적도, 북한 국적도 가지지 않은, 한마디로 무국적자입니다. 90평생 서울과 제주를 합쳐 3, 4년 밖에 조국에서 살아보지 못한 디아스포라입니다. 이 사람이 오늘 여기 고향땅 위에 발을 디디고 서있습니다. 남과 북으로 두동강난 반쪽이 아닌 통일 조국의 국적을 원하는 나에게는 ‘국적’으로 뒷받침된 조국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조국은 하나였으며 식민지 시절에도 남 · 북은 하나였습니다.

일본 강점시대를 겪은 우리나라는 해방 후 자기 의지가 아닌 다른 나라에 의해 분단되었습니다. 해방 직후 중국에서 돌아온 대한민국 중경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말했듯이 “일본의 패배는 기쁜 소식이기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중략). 걱정스러운 일은 우리가 이 전쟁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했기 때문에 이후 국제관계 속에서 발언권이 약하리라는 점이다.”
이런 우려 속에서 45년 12월 말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조선을 5년 동안 신탁통치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제 4·3의 땅 밑에서 얼어붙은 침묵의 시대와 더불어 반세기가 지나 분단 70년이 되었습니다. 8.15해방 70년, 분단 70년, 해방이 아니었고 광복이 아니었습니다. 남 · 북으로 갈라진 나라, 조국, 그 독립조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애국 인사들이 일제의 총칼 아래 쓰러졌습니까. 우리는 하나이며 한겨레입니다. 나는 그 한겨레의 한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깊은 슬픔과 그것을 넘어설 굳은 의지와 기쁨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서 있습니다. 이제 4·3 67주년, 3년 후에 70주년, 4·3의 완전 해방이 남 · 북이 하나될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미증유의 대학살로 마무리 지어진〈4·3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맹점인 동시에 그 맹점 자체가 바로 현대사의 핵심적 부분이며 분단조국의 집중적인 모순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40년 동안 역사의 암흑 속에 파뭍혀 철저히 은폐되어 온 이 대사건을 현대사에 복원하지 않고서는, 즉 〈4·3사건〉의 ‘해방’없이는, 한국에서의 친일파 문제와 더불어 한국사회 전체에 참다운 해방을 가져 올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1988년에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 「까마귀의 죽음」의 저자 말의 한 구절입니다. 왜 4·3이 한국 현대사의 맹점이고, 현대사의 핵심적 부분, 즉 분단조국의 집중적인 모순인가.

그것은 바로 해방 직후 남한을 점령하고, 여운형 등이 중심이 되어 건립한 조선인민공화국을 해체시킨 미군정 하에서 1948년의 단독선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에 맞선 북의 인민공화국 수립으로서 남 · 북 분단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모두가 아는 사실을 되풀이 하느냐. 사실이 왜곡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남 · 북 통일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5년 간 신탁통치를 한다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 내용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못한 점도 있었으나, 해방된 민족이 바로 자주독립이 아닌 새로운 외국 통치 밑으로 들어 가는 것에 대한 거족적인 반탁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1945년 10월에 미국에서 귀국했으나, 조국에 정치적 기반이 없었던 이승만은 친일파 세력을 발판으로 삼아 전국적인 유세를 하면서 반탁운동을 전개, 6월의 전라북도 정읍연설에서 단선 · 단정수립을 선언하고 대대적으로 이 운동의 봉화를 올리게 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미군정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대다수 국민과 김구, 김규식 등 임정 요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단독정부 수립으로 치달리게 됐습니다.

1947년 5월 제2차 미 · 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어 신탁통치안이 폐기되자, 미국은 조선 문제를 ‘47년 9월 제3차 UN총회에 상정하여, 남한만의 선거를 실시하도록 했고, 새로 결성된 UN 한국임시위원회 (9개국)가’ 48년 1월 남한의 선거 감시를 위해 서울로 들어옵니다. 불과 30명의 감시위원이 미군 통치하에서 실시되는 인구 2천여 만명이 넘는 남한의 선거를 감시할 수 있었겠습니까? 말이 감시지 5.10단독 선거는 온갖 폭력이 동원되었고, 전국적으로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4·3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반공이 국시인 대한민국, 그 정부의 정통성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제주도를 소련의 앞잡이 빨갱이섬으로 몰았습니다. 해방 전에는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파, 해방 후에는 반공세력으로, 친미세력으로 변신한 그 민족 반역자들이 틀어잡은 정권이 제주도를 젖먹이 갓난아기까지 빨갱이로 몰아붙인 것입니다.

이승만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표방했지만 과연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승만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기서부터 역사의 왜곡, 거짓이 정면에 드러났으며 이에 맞선 것이 단선 · 단정수립에 대한 전국적인 치열한 반대투쟁이 일어났고 그 동일선상에서 일어난 것이 4·3사건이었습니다.

4·3학살은 파시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군정시대에 미군 지휘 아래에서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초의 대참극입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의 고도(孤島), 세계로부터 차단된 밀도(密島), 섬 감옥에서 권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슬람국의 잔인한 살해 행위도 4·3에 비하면 털끝 정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제주도민의 저항은 내외 침공자에 대한 방어항쟁이며 조선시대의 제주민란과 일제통치 하의 민족독립 해방 투쟁의 정신에 이어지는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 투쟁이라 생각합니다.

해방 70년, 우리는 역사를 재검토할 시기에 도달했습니다. 해방 공간의 역사 바로세우기와 4·3진상규명을 병행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에 그 자리 매김을 해야 할 때입니다.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도 맹목(盲目)이 된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기려고 하지 않은 자는 또 다시 그러한 위험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독일 패전 40주년이 되는 1985년 5월 8일, 전 통일 독일 대통령 바이체크(2015.1.사망)의 연설문 중,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구절입니다.

역사에서 사라진 제주도 4·3.

사람이 여기 이 제주 땅에 존재하면서도 산 사람 구실을 못해 죽은 목숨으로의 존재의 계속, 사람 아닌 사람의 껍데기를 한 목숨의 지탱,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어 살아 온 오랜 세월, 그 반세기입니다.

“기억이 말살당한 곳에는 역사가 없다. 역사 없는 곳에 인간의 존재는 없다. 다시 말해서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이 아닌 주검과도 같은 존재다. 오랫동안 기억을 말살당한 4·3은 한국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입밖에 내지 못하는 일, 알고서도 몰라야 하는 일이었다.

하나는 막강한 권력에 의한 기억의 타살, 다른 하나는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 속에 집어던져 죽이는 기억의 자살이었다. 4·3문제의 올곧은 해결은 공권력에 의한 재평가와 아울러 진상규명, 명예회복 등의 사업은 더욱 큰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없이 죽음에 접어드는 깊은 망각 속에 얼어붙었던 기억이 지상으로 솟아나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영원히 말살할 수 없었던 기억의 부활이자 기억의 승리다. 어처구니 없는 학살을 영원한 터부로 은폐하고 놀라운 허위로 역사를 꾸며오면서‘기억의 암살자’노릇을 해 온 지난날 위정자들의 책임은 막중하다.”

이 글은 10년 전 한 한국 신문에 내가 쓴 ‘기억의 부활’이라는 칼럼의 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햇살 아래에서 버젓이 4·3을 노래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거듭 말하면 우리는 아직 4·3의 완전 해방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떳떳한 4·3의 자리매김을 하는 일입니다. 한라산 기슭 가까운 마을 봉개동에 4·3평화공원이 있습니다. 내일 모래 4월 3일에는 국가추념일의 추도식을 올리게 되는 성스런 자리입니다.

공원 내 4·3기념관에는 백비(白碑, Unnamed Monument)가 누워 있습니다. 그 옆에 한글과 영어로 그 사연을 새긴 자그만한 돌이 놓여있는데 거기에는 비문이 없는 까닭이 적혀 있습니다. 큰 글자로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그 밑에 작은 글씨로 “‘백비(白碑)’,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 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분단의 시대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리라.”

절절하게 통일되는 날을 갈망하는 글귀입니다. 이 말없는 백비가 바라는, 우리 모두가 바라는 남 · 북이 하나되는 날은 언제인가? 그날을 우리 힘으로 어떻게 앞당길 것인가. 3년 후는 4·3 70주년, 우리는 내일 모래가 아닌 아직 확실히 보이지 않는 그날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힘으로 ‘올바른 역사적 이름’, 정명(正名)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正名한 이름을 똑똑히 백비에 새겨서 이름 있는 기념비를 일궈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한국 현대사를 바로잡고 4·3의 자리매김을 하는 일입니다.

“1948년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국제협약에서 제노사이트(집단학살)는 유엔의 정신과 목적에 위배되고 문명세계에 의해서 단죄되어야 하는 국제법상 범죄임을 명시했다. (중략) 결론적으로 제주도는 냉전의 최대 희생지였다고 판단된다. 바로 이 점이 4·3사건의 진상규명을 50년 동안 억제 해온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2003년에 발표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결론에 나오는 말입니다. 4·3학살을 국가 범죄로 규정한 보고서는 4·3 당시 양민의 학살을 이승만대통령과 미점령군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84.4%가 토벌대, 12.3%가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이고, 기타 원인으로 희생된 사람이 3.3%로 되어 있습니다.

2만 5,000 내지 3만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는 아직 시신 발굴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 숫자는 아닙니다.

무고한 희생자들, 빨갱이의 씨를 말린다고 마을사람들 수십명을 생매장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을 나는 직접 들은 바 있습니다. 하나 둘이 아니라 오만가지 만행이 동방예의지국이라 칭하던 이 나라 강토에서 반세기 전에 벌어진 것입니다.

4·3이 끝난 후에도 소위 폭도 가족들은 연좌제, 공포에 질린 4·3(정신)병으로 신음하는가 하면 죄없이 재판받고 육지의 형무소에서 징역 생활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죽기도 했습니다.

진상보고서에 국가 범죄로 규정된 4·3학살의 최종 책임자에 대한 조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나치스 독일이 범한 홀로코스트, 인도상의 범죄에는 시효가 없으며 지금도 독일의 수사 당국은 세계 각처에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는 나치 범죄자 추궁에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4·3 가해자에 대한 재판은 보복, 원한을 갚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의 구현, 희생자의 마음의 치료 구제입니다.

생존하는 희생자들에 대한 후유증 치료 등을 포함한 모든 보상은 물론, 정신적인 치유는 가해자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일이며 그 하나의 표현이 재판이기도 합니다.

범죄자가 없는 자리에서 국가적인 양심과 노력을 동원해 진상보고서를 작성했는데 <피고자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피고자를 대상으로 한 재판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때는 물론 피고석에 미국도 앉아있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이 자리에서 제가 이러한 농담 섞인 말을 더불어서 할 수 있음은 이제 많이 진전되고 있는 4·3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반세기, 인간의 기억을 말살당한 제주 4·3의 세계에 유례없는 기나긴 세월의 반세기.

울퉁불퉁하더라도 올곧은 길을 가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나이 먹은 나도 뒤처지지 않도록 함께 따라가겠습니다.

이 내용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먼저 조선일보 4월 13일자 사설이다.

 [조선일보 사설]
제주4·3평화재단이 선정한 '제주4·3평화상' 첫 수상자 김석범씨가 지난 1일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통해 대한민국 초대 정부를 '친일파 민족 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정부'로 매도하면서, 4·3 사건에 대해서는 '내외 침공자(우리 정부와 미국)에 대한 방어 항쟁' '조국 통일을 위한 애국 투쟁'이라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다. 북한이 그동안 해온 주장 그대로다.

4·3 사건은 남로당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막으려고 1948년 일으킨 무장 반란으로 촉발된 사건이다. 이 사태로 목숨을 잃은 제주도민 1만5000여명 중엔 무고한 양민이 다수 포함돼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4·3을 국가 추념일로까지 지정한 것은 이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령하고 해원(解寃)하자는 뜻이다.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무장 반란을 정당화하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 첫 수상자가 대한민국 건국을 매도하고 무장 반란을 정당시하는 사람이라면 국민과 정부가 4·3 사건을 추념하려는 근본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다. 4·3평화상은 제주 4·3 사건의 진상 규명과 평화·인권 신장, 국민 통합에 기여한 공로자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제주 출신인 김씨는 1950년대부터 일본에서 4·3 관련 소설 집필을 해왔다고 하지만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 기자 출신이다.

4·3평화상이 북의 주장을 옮기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면 단 1원의 국민 세금도 들어갈 수 없다. 4·3재단도 김씨의 대한민국 매도와 무장 반란 정당화에 동의하는지 밝혀야 한다.

이어서 동아일보도 4월 13일 사설로 이 문제를 다뤘다.

 [동아일보 사설]
올해 제정된 제주4·3평화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된 재일교포 작가 김석범 씨에 대한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건국이념보급회 등 12개 보수우파 단체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상 취소와 상금 반환, 제주4·3평화재단 해산을 촉구했다. 김 씨가 상금으로 받은 5만 달러(약 5450만 원)는 국민 세금이고, 김 씨를 수상자로 선정한 제주4·3평화재단은 중앙정부 지원금 30억 원, 지방정부 지원금 13억 원 등 연간 50억 원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단 측은 “평화상위원회가 적절한 절차를 거쳐 수상자를 정했다”고 밝혔으나 김 씨의 발언이나 행적을 살펴보면 이번 수상자 선정이 매우 부적절했다는 판단이다.

김 씨는 1일 열린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대한민국 초대 정부인 이승만 정부를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정부’라고 매도하면서 “제주도를 젖먹이 갓난아기까지 빨갱이로 몰아붙였다”고 주장했다. “4·3학살은 미군정시대에 미군 지휘 아래에서 일어난 대참극”이라며 “제주도민의 저항은 내외 침공자에 대한 방어항쟁이고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투쟁”이라고도 했다. 대한민국 건국과 한국 현대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는 발언이다.

4·3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까지 피해를 본 것은 비극적인 일이지만 그 발단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를 방해하려는 남로당의 무장폭동이다. 한반도의 남쪽에나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대한민국이 세워진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는 광복과 분단 70년 동안 나타난 남북한의 극명한 차이에서도 드러난다.

김 씨는 일본에서 북한 정권의 방침을 대변하는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기자를 지냈다. 그가 대한민국 건국과 4·3사건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떤 평가를 하는 것은 그의 자유에 속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민족반역자들이 세운 정권”이라고 폄훼한 사람에게 제주4·3평화재단이 국민 세금으로 거액의 상금을 주는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김 씨를 제1회 4·3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한 4·3평화재단, 이 재단에 대한 감독권을 가진 행정자치부와 제주도의 책임이 무겁다.

이처럼 제1회 제주4.3평화상이 또 다른 논란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다.

제주의 4.3은 풀 수 없는 영원한 숙제인가?

올해가 4.3 제67주기를 맞는 해이다.

더 이상의 이념논쟁으로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제주4.3평화상’은 4.3으로 인한 갈등을 없애고 진정한 화해와 상생을 바라는 제주도민들의 염원으로 제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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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기자  kty09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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