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것은 진 것입니다. 공무원과 다른 점입니다. 가두 연설에서는 싸움을 걸었습니다. (상대를) 무너트린다고 했는데 (거꾸로 내가) 무너졌으니 말입니다."

오사카시민 주민투표에서 패배하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연설 때마다 선거공약처럼 열변을 토했던 하시모토 도오루(橋下 徹. 46) 오사카시장이 17일 밤 11시 넘어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금년 12월 임기를 마치고 정계에서 떠난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얘기해도 과거에는 번복했었다는 질문에는 정치가는 나의 인생에서 끝났다고 말했다. 그래도 임기가 남으니까 상황이 바뀔런지 모르는데 다시 한번 정치가로서의 재기 물음이 있었다

"나는 "원포인트릴리프"(때를 맞춰 한번 등장)로서 실무가입니다. 정치가는 싫어져버리면 안 됩니다. 호감 가는 사람이 하지 안으면 안 됩니다."

"적을 만드는 정치가는 원포인트릴리프로서 필요 없으면 교대하고, 필요 할 때는 쓰고 나서 필요 없을 때는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건전한 민주주의라고 생각 합니다.

5월 17일 오사카시민 주민투표가 일본열도의 주시 속에 치뤄졌다. 오사카부와 오사카시의 이중 행정의 모순과 비합리화를 일원화 시키고 토교 일극(一極)중심을 해소하기 위한 <오사카도구상:大阪都構想>에 대한 찬.반의 주민투표였다.

"오사카도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현재 있는 24구의 오사카시를 해체하고 새롭게 설치하는 특별구와 오사카부가 담당하는 업무의 역할 분담하는 통치기구 개혁이다.

제도안에 의하면 공선제의 구장(현재는 임명제)과 구의회를 신설하여 인구 34만에서 69만명의 규모의 5개의 특별구에, 복지, 교육 등을 담당케 하여 지금까지 오사카부, 오사카시가 쌍방이 담당했던 성장전략이나 산업정책은 오사카부에 일원화 시킨다고 정했다.

투표율 66.8%라는 높은 비율 속에 총유권자 수 210만 4,076명 중에 찬성 69만 4,844명. 반대 70만 5,585명. 무효 5,640으로 1만 741표차(0.8%)로 반대가 박빙의 승리를 거두웠다.

패인의 요소로서는 오사카시가 해체되고 5구로 분리되는 제도에 대한 설명 부족으로 일반 시민에게 제대로 그 취지가 침투되지 못하고, 현재 24구가 있는 행정업무를 5구가 담당하게 되는 과정에서 복지, 교육 등의 행정 서비스가 현재보다 떨어진다는 불안감이었다.

표의 분석에서 젊은 세대의 개혁에 대한 지지도도 선명했지만 60대 이상의 노년층의 반대는 젊은 세대 이상으로 더욱 선명하고 복지정책에 대한 모호성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126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오사카시가 그 동안 이중적인 행정상의 개선점은 역대 오사카부지사나,오사카시장, 행정전문가는 물론 재계와 일반 시민들로부터 계속 제기 돼왔던 현안 사항들이었다.

문제 제기는 있었지만 구체성이 없었던 이 현안에 약 7년 반전, 오사카부지사로 개성이 강한 하시모토 씨의 취임으로 일변했다.

오사카부지사로서만은 한계가 있다면서 스스로가 <유신당>을 창당하고 오사카부지사를 사임하여 같은 당 출신에게 출마를 권하고, 하시모토 지사는 오사카시장으로 입후보하여 지사, 시장 선거에 압승을 했다.

그래서 <오사카도구상>이 구체화되고 많은 우여곡절 속에 주민투표에 붙였으나 앞에서 설명한 요인 때문에 패배했지만, 하시모토 시장의 독선에 의한 추진력도 패배의 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오사카시장에 당선된 약 2년 전까지의 그에 대한 지지율은 언제나 50% 이상이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지방은 물론 중앙 정치가에게도 없었으며, 그의 명성은 카리스마성을 띄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그의 종말이 시작이기도 했다.

고이즈미 전 수상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행보로 공격의 대상인 적을 만들고 자신은 그 부조리를 파헤치고 싸운다는 일거수 일투족을 의식적으로 미디어에 노출 시키면서 어필해왔다.

때로는 자민당보다도 초강경의 발언도 서슴치 않았으며, 위안부 발언에 있어서는 문제화되었을 때 솔직히 그 발언애 대한 경솔함을 인정하면 끝났을 것인데, 궤변에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국민으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았다.

자신의 인기를 안겨준 매스컴에 의해 자신의 이러한 유치함이 또한 노출되는 아이러니가 일어났으며
여러 정책면에서도 럭비공처럼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우왕좌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주민투표에 있어서는 같은 당이면서도 중앙과 오사카 지방 사이에 꼬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예가 스가 관방장관의 발언이었다.

"오사카부와 오사카시의 이중행정의 모순을 해소 시키기 위한 주민투표는 타당한 정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민당 스가 관방장관의 주민투표 지지의 발언은, 오사카부 자민당본부 관할의 국회의원, 부의원, 시의원들를 격노케 했다.

오사카부와 오사카시의 여당인 "유신당"의 제안한 주민투표의 찬성을 저지하기 위해 오사카부 자민당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는데 중앙 간부의 발언은 예고없는 뒷통수의 일격이나 다름없었다.

참의원에서 압도적 다수를 얻지 못한 여당 자민당과 공명당, 특히 아베 수상은 11명의 참의원이 있는 유신당은 군침이 나올만큼 필요한 존재였다. 그 인원이면 절대 안정 다수는 물론 개헌 발의 가능한 삼분의 이의 숫자에도 가깝기 때문이다.

헌법 개헌에 있어서 전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하시모토 시장의 발언은 자민당내의 신중파보다 더 우호적이었다. 아베 수상 역시 하시모토 시장의 주민투표를 반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아베 수상은 투표 하루 전 날에 오사카 인근의 코베시 방문 후, 오사카 중심지 난바를 경유해서 와카야마를 가면서도 역사에 남을 오사카 주민투표를 완전히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다.

오사카부 자민당의 필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중앙본부의 지원은 전혀 없었고 오사카 자민당은 독자적으로 야당 공투 속에 물과 기름인 공산당과도 하나가 되어 이긴 승리였다.

"오사카도구상"의 5년 심판에 따라 하시모토 시장은 정계 은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임했는데 반대 측에서는 자신의 인기를 이용한 신임투표로 몰아가고 있다는 비난도 거셌다.

이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던 하시모토 시장이지만 찬성표 역시 과반수에 가까웠으니 주위에서 은퇴 만류를 권하고 있지만 그의 정계 은퇴는 확고부동하다.

만면에 미소를 띄우면서 기자회견에 임하는 그의 확고부동한 정계 은퇴는 7년 반 동안의 충실감에서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또 하나는 시민들이 그의 결단력을 높게 평가할 것이며 이것은 그의 정치경력에 커다란 훈장이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다.

그는 서둘지 않아도 된다. 그는 현재 40대 중간이다. 여러 이유를 들어 속투를 선언하는 것보다 이번에는 약속대로 물러서서 다시 때를 기다리면 된다. 몇년간 정계를 떠난 후에는 다시 하시모토 대망론이 나올 것이다. 그는 이러한 정치감각이 뛰어나다.

본인이 사양해도 주위가 자신들의 입신출세를 위해 이용하려 들 것이며 하시모토 시장은 이것까지 전부 계산에 넣고 유유자작하고 있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언젠가의 그의 정계 복귀는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한.일관계에 또 다시 걸끄러운 알레르기 반응을 이르킬 것이다. 다만 좀더 성숙하여 배려 있는 정치가로 복귀하기를 바랄뿐이다.

민단 오사카본부에서는 4월 27일 정 병채 사무국장이 오사카시청을 방문하여 이쿠노에는 약 20%가 재일동포라는 예들 들면서 주민투표권을 요청하는 문서를 전달했다.

시에서는 특별구제도는 대도시에서 실시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선거 수준의 선거제도라는 설명이 있었다면서, 내용을 확인해서 정부에 건의할 것도 검토하겠다는 회답이 있었다고 한다.

하시모토 시장에 대해서 2013년 10월 22일 제주투데이에 쓴 글을 첨부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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