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탑동, 1988년

1989년 탑동 매립 반대 투쟁 때의 일이다. 해녀였던 강달인 씨(당시 57세․삼도동 전 잠수회장)는 탑동 매립 반대 싸움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이사 뭘 알아서게. 물질만 허멍 사는 사름덜신디 저 바당 메워불켄허난 살길이 막막행 우리대로 무턱대고 주먹구구식으로 시작헌거주. 법이 어떵된건지 무엇이 불법인지 알아질게 뭐라. <중략>
시장이나 도지사나 국회의원이 허는 사름덜이 나와 (간담회에) 나와 줄거 닮지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직자덜이렌 우리 해녀들을 깔봐그네 홀시 대허는 거 닮은디 언제 그 사름덜이 우리신디 잘햄덴 헌적이서?(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제주본부, 《제주의 소리》, 1989년 5월 5일, 15면, 사단법인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 『제주민주화운동사료집』 Ι, 273쪽.)

삼도동 전 잠수회 회장 강달인 씨 인터뷰, 《제주의 소리》

1988년 시작된 탑동 매립 반대 투쟁의 출발은 생존권 싸움이었다. 탑동매립 시공사였던 범양건영은 시공과정에서 해녀들과의 합의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바다를 생업으로 삼는 어민들과 해녀들은 당장 반발했다. 강달인 씨가 “저 바당 메워불켄허난 살 길이 막막행” “주먹구구식으로 시작헌거주”라고 말했던 것도 그들의 싸움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후 공동어장 황폐화에 따른 피해보상 요구가 이어졌다. 잠수회 해녀들과 학생,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 진영은 탑동 매립의 불법성과 이익금의 지역 환원 필요성을 외쳤다. 이 과정에서 ‘탑동 불법 개발 이익금’을 환수하기 위한 국회 청원 운동이 이뤄지기도 했다. 당시 결성된 ‘탑동불법개발이익환수투쟁 도민 대책위원회’는 탑동 불법 매립 등 지역 개발정책의 문제점을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체제의 모순, 관주도형 하향식 개발, 권력당국과 독점재벌이 결합한 모순의 총체라고 규정하였다.(『제주민주화운동사료집』 Ι, 351쪽)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제주 지역에서는 그동안 이뤄져던 지역 개발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제주도내 보유세 토지과다 소유자의 87%가 외지인이라는 통계 결과 등은 외지인에 의한 제주 토지가 잠식되는 있다는 우려를 낳게 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제주본부가 펴낸 《제주의소리》 제8호의 표제는 “개발이냐 개나발이냐 우리는 이대로 짓밟힐 수 없다.”는 것이었다. 탑동 매립은 1964년 이후 시작된 관주도의 개발 방식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43명의 해녀들이 시작한 싸움은 전 도민적인 투쟁으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탑동 바다에는 제주개발의 모순과 그에 대한 도민적 저항이 함께 흐르고 있다.

2. 탑동, 2015년

탑동 매립 투쟁이 제주 사회를 뜨겁게 달군 지 27년이 지났다. 원희룡 지사가 탑동 신항만 건설계획을 들고 나왔다. ‘신의 한 수’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환경단체 등의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10일 제주 KBS 생방송 대담 자리에서다.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탑동 신항만 계획이 해양수산부의 항만기본계획에 고시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회에 제주항만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 크루즈 선석 확보 등 대형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할 수 있는 적기라는 입장이다.
환경파괴에 대해서도 원희룡 지사는 “도민들의 의견은 공영개발을 요구하는 것이다. 민간기업에 특혜를 주지 않겠다. 공영개발을 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탑동 신항만 건설 계획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원희룡 지사의 논리는 지난 2010년 4대강 사업 때와 흡사하다. 기억을 되새겨보자. 지난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던 원희룡 현 지사는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4대강 사업이 “만약 실패고 엉터리였다고 하면 한나라당은 정권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환경단체의 공사 중단 요구에 대해서도 "얼마나 무책임한 얘긴지 가보면 바로 알 것"이라며 "지금 강에 대한 수술이 진행 중인데 수술하다가 수술 중단해놓고 환자의 증상에 대해서 얘기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원론적으로 중단하라는 얘기는 받아들일 수도 없다"라고 했다.
지금 탑동 신항만 건설 계획 추진에 대해 반대하는 환경단체에 대해서 원희룡 지사는 대안을 내놓으라고 한다. 환경단체를 대안 없이 반대하는 무책임한 집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2010년 당시와 지금이 흡사하다.

3. 비판이야말로 대안 모색의 시작

탑동신항만 계획은 60만평 규모 이상의 바다를 매립해야 하는 문제다. 환경단체가 환경 파괴 우려를 내놓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대안을 요구하려면 탑동신항만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환경단체 및 해양 환경 전문가를 참여 시켜 의견을 수렴했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정보는 도가 쥐고 있으면서 대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태도다. 마치 메르스 확산에 대한 정보를 정부가 쥐고 있으면서 감염 확산을 우려하는 시민들을 겁쟁이나, 유언비어 유포 세력으로 모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논쟁의 시작을 제주도가 먼저 제기했다. 대안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다. 현상에 대한 비판, 문제제기야말로 대안적 사고의 시작임은 논리학 기본 영역에 속한다.
원희룡 지사는 탑동신항만이 건설되어서 8000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이 쏟아지면 원도심에 낙수효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원희룡 도정 출범 직후부터 원도심 활성화는 정책 과제다. 정책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중국 관광객이라는 외부 요인에 기대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 원도심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다. 그것을 낙수효과라는 경제 용어로 이야기한다.
낙수효과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을 펼치면서 재계와 정부가 늘 하던 이야기다. 대기업이 잘되면 전체 파이가 늘어나고 그 효과로 중산층 서민 가계도 활성화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이미 낙수효과는 경제정책으로 실패한 것이라는 것이 각종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정부도 결국 내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하였다.
원도심 활성화를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는다면 우선 원도심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중국 관광객에 의존해 원도심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안이한 발상이다. 당장 메르스 여파로 중국 관광객이 줄어들었다. 외부 요인에 의한 원도심 활성화는 변수가 많다.

4. 반성 없는 행보, 말의 성찬에 갇힌 원도정

원 지사가 그동안 걸어온 행보를 보면 과거 토건 위주의 경제 부흥 정책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역에 대규모 개발과 투자를 유치하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될 것이라고 말하자면 그건 환상이다.
원희룡 지사는 대안을 제시하라고 한다. 60만평 규모의 해양을 매립하는 것이 탑동 신항만 계획이다. 해수부의 항만기본계획이 수립될 때를 놓치면 5년 후를 기다려야 된다고 말한다.
묻고 싶다. 60만평의 바다를 매립하고, 그 이후 숱한 환경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은 되돌릴 수 있는가. 없다. 그러니 신중하자는 것이다. 탑동 바다는 우리 세대의 것만이 아니다. 탑동 매립 현장을 봐라. 탑동이 매립되고 탑동 바다를 터전으로 삼았던 수많은 해녀와 어부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 여파로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는 등 개인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당사자들이 지금도 있다. 한번 바다를 매립하면 되돌리기 힘들다. 지금부터 공론화해서 치열하게 논의하자는 것이다.
탑동 바다는 천 년의 바다다. 탐라국 시대부터 천년의 세월을 도도하게 흘렀던 바다다. 우리 세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당시 57세였던 삼도동 전 삼수회장 강달인 씨의 말을 상기해보자
“우리 농성하는 걸 시청에서도 잘못햄져, 경찰이영, 수협에서도, 어촌계까지도 잘못햄져, 이웃사람덜도 돈받아 먹고 너무한다는 식으로 곧는거라. 배운거 없고 무식헌 잠수들이랜”
원희룡 지사에게 말한다. 제주도민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실험의 대상도 아니다. 권력은 4년이지만 제주도민의 삶은 앞으로 천년을 살아야 한다. 이 점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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