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도정이 출범한 지 1년이다. 지난 6.4 지방 선거를 되돌아보자. 당시 선거의 화두는 ‘세대교체’였다. 새누리당은 당 차원에서 원희룡 전 국회의원을 급하게 차출했다. ‘세대교체’라는 지역의 민심을 읽은 정치적 선택이었다. 선택은 적중했고 원희룡 후보는 60%가 넘는 지지를 얻으며 당선되었다. 역대 도지사 선거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중앙 정치무대 경험을 지닌 젊은 지사에게 거는 지역 사회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주최한 원희룡 도정 1년을 평가한 토론회에서 도정에 대한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제주 환경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선언은 공염불이 되었고 원희룡 도정 출범 초기 핵심 가치였던 협치는 실종상태라는 것이다.
원희룡 도정 출범 당시 도민들의 기대는 상당히 컸다. 무엇보다도 제주판 3김으로 불렸던 세대교체 바람, 전임 도정이 보여줬던 줄 세우기, 편 가르기 정치에 대한 염증 때문이었다. 그런 도민적 기대가 결국 원희룡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할 정도다.

사라진 협치, 계속된 인사 파행

먼저 ‘협치 논란’부터 살펴보자. 원희룡 도정이 최우선 정책 과제로 내세운 것이 협치였다. 원희룡 지사는 취임사에서 “다른 정치로, 도민 협치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취임사에 밝힌 협치의 의미는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정책 결정과정에 도민과 협력하겠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분야별 협치위원회를 구성해 새로운 제주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협치는 그야말로 원희룡 지사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1년이 지난 지금 협치, 어떻게 됐나. 한마디로 협치는 사라지고 불통과 독선의 행정으로 전락했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협치정책실은 특정 선거공신을 위한 자리 만들기라는 위인설과 논란 등에 휘말렸다. 협치 업무를 총괄할 협치정책실장의 직급도 부이사관 급인 3급에서 4급 서기관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또 협치정책실장에 제주와 연고가 없는 인물을 발탁했다. 이렇게 임명된 협치정책실장은 ‘취중난동’이라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기도 했다. 결국 도지사 직속 기관이었던 협치정책실은 정책보좌관실로 명칭을 변경했다.
협치 실종의 전조는 취임 초기 계속된 인사 실패에서 비롯됐다. 시민단체 출신이었던 이지훈 씨를 제주시장에 임명했지만 취임 한 달 만에 낙마했다. 불법 건축물 논란 등 개인 신상에 관한 문제였다. 이후 언론인 출신인 이기승 씨를 임명했지만 과거 음주운전 사망 사고 논란에 휘말리며 또 다시 낙마했다. 계속된 인사실패는 취임 초기 원희룡 도정의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예산 협치를 하자는 도의회의 주장에 대해 재량사업비를 부활하려는 시도라고 맞받아치면서 예산안이 부결되는 등 예산안 파동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원희룡 도정 출범 당시 호기롭게 내세웠던 협치는 사라졌다.

개발, 개발, 개발, 개발주의로 회귀하는 도정

이제 ‘협치’라는 단어는 제주도청 내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협치가 사라진 자리를 메운 것은 개발주의로의 회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민 사회에 공론화되지 않는 각종 개발 이슈들을 쏟아냈다. 원희룡 지사는 취임사에서 “제주 자원의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도의 기반산업인 1차산업의 부가가치를 고도화하고 첨단미래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관광수익이나 개발이익이 도민사회에 골고루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경제체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무차별적인 개발을 막고 제주의 청정환경을 지키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취임사와에서 밝힌 것과는 정반대다.
도민들은 전임 도정이 무분별하게 허가해 준 각종 개발 사업이 원희룡 도정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기대했다. 드림타워 건설과 신화역사공원 등 전임 정권에서 추진했던 개발사업에 일정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당초 218m에 56층 규모의 드림타워 신축에 대해서 도민들은 난개발, 교통 혼잡 문제, 경관파괴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자 사업자는 건물높이를 168m 줄이는 건축설계변경안을 제시했고 도는 이 변경안을 승인했다. 지난 3월의 일이다. 하지만 착공은 세 차례나 연기되었고 도는 착공 연기를 승인했다. 지역 사회의 우려를 받아들이는 대신 사업자의 편의를 봐주고 말았다.

원희룡 도정 1년, 도민에 대한 “배신의 정치”

신화역사공원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제주 신화와 역사는 없고 중국자본에 카지노사업만 허가해준 신화역사공원이 되고 말았다. 도민들이 선거에서 60%가 넘는 지지를 보낸 것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제주의 문화와 자연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만은 막아달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원희룡 도정 1년은 이러한 도민의 기대와 열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원 지사가 지지했던 박 대통령의 어법을 빌려 말하자면 “배신의 정치다.”
전임 도정에서 허가한 사항이기 때문에 행정의 연속성 측면에서 어쩔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신화역사공원과 드림타워가 전임 도정의 일이라면 애월읍 상가리 개발과 송악산 관광단지 개발 허가는 언제의 일인가. 원희룡 도정이 허가를 낸 준 사항이다. 중산간 난개발을 막겠다고 하면서 중산간 난개발이 예상되는 사업을 허가해주고 말았다. 이율배반이다. 원희룡 지사가 취임사에서 밝힌 제주의 자원을 지키겠다고 한 약속과도 맞지 않다. 개발과 환경의 조화, 제주의 자연을 지키겠다는 약속이야말로 도민과의 협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협치는 사라지고 불통과 독선만이 자리잡았다.

MB․박근혜 정권의 불통, 독선, 오만을 답습해선 안 돼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탑동신항만 건설 추진이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제주 방문 일정에 맞춰서 깜짝 발표하듯이 탑동신항만 건설을 발표했다. 대형 크루즈 선박을 유치해서 원도심을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기존 탑동 매립의 10배나 되는 대규모 매립 계획이었지만 도민사회는 전혀 몰랐다. 심지어 언론사 기자들도 짐작하지 못했다. 도민사회와 생업에 타격을 입을 어민들이 반발하자 서둘러 공청회를 열고 매립면적을 다시 축소했다. 환경파괴가 우려된다는 환경단체의 지적에 대해서는 대안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교만이다. 오만이다. 대안이 왜 없겠는가. 대안은 탑동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지금 탑동의 먹돌 해안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 자체로 천혜의 자원이고 관광 명소이다. 탑동 신항만 건설에 드는 2조 4000억원을 들여 탑동을 복원하자고 대안을 제시하면 원희룡 지사는 과연 어떤 발언을 할 것인가. 과거 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환경단체들을 향해 허무맹랑한 말이고 무책임하다고 했던 말을 반복할 것인가.

중앙의 시각 탈피, 제주의 ‘눈’으로 행정 펼쳐야

취임 초기 지역 언론의 평가보다는 중앙 언론의 평가는 다소 후했다. 리얼미터와 JTBC가 실시한 16개 도시사의 직무수행능력 평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정례조사에서는 긍정평가가 65.5%였다. 전국 17개 시도지사 중에서 1위였다. 당시 조사결과 발표 제주도정은 크게 고무됐다. 잇따른 인사 실패에도 직무수행평가 좋은 것으로 나타난 것을 성과라고 보았다. 하지만 지난 5월 정례평가에서는 49.4%였다. 7개월 사이에 15%포인트 하락했다. 평가가 50% 이하로 떨어지자 보좌그룹이 긴장을 했다는 후문이다. 지역방송국과의 기획대담 일정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었다고 한다.
원희룡 지사는 여론의 향배, 특히 중앙언론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상기해보자. 그동안 원희룡 지사가 민감한 발언을 쏟아냈던 매체들은 모두 중앙 언론이었다. 제주 4․3희생자 재심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메르스 사태에 대해서 정부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한 것도 모두 중앙 언론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불거졌다. 취임 초기 원희룡 지사는 제주 인터넷 언론은 보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가 확대 해석된 것이라면서 급하게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을 상기해보면 원희룡 지사가 제주 지역 여론보다는 중앙 여론에 특히 관심을 가지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하다.

벼락치기 공부 하듯 ‘당선’, 도민의 선택에 늘 겸손해야

제주도민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원희룡 지사가 제주 지사 후보로 나서는 것을 꺼려했다는 것을. 지난해 2월 원희룡 지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출마할 생각은 없다"며 "(앞으로) 상황이 바뀌더라도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에는 변함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고 결국 원희룡 지사는 당의 차출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선됐다.
사실상 제주도지사라는 직무를 수행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제주도가 떠안고 있었던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학습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은 원희룡 후보를 제주도지사로 선택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원희룡 지사는 민의에 겸손해야 한다.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도민들이 원희룡 지사를 선택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탐라 천년에 대한 이해 바탕, 제주 비전 제시하는 리더십 필요

본인이 노력한 결과가 아니다. 이럴수록 도정은 겸허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1년 원희룡 지사가 보여준 리더십은 자신을 지역 개혁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이미지 정치에 불과했다. 언론과의 소통은 부족했고 더 나아가 도민들과의 스킨십도 부재했다. 중앙언론의 여론 조사결과에는 신경을 쓰면서 정작 도민들의 여론에는 눈감았다. 마치 식민지 시절 제국의 눈치만 살폈던 총독들이나, 중앙정부에서 임명했던 관선 지사처럼 중앙의 시각에서 제주를 바라보고자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탐라 천년의 역사를 지닌 제주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관계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그것이 1년의 실패를 바탕으로 3년 후 도민의 박수 속에서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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