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철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 더위를 식혔던 무덥던 여름날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서서히 가을빛을 한껏 품어 찾아온 날씨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선선하기만 하다. 산들바람을 맞으며 무뚱(제주어, 문어귀)에 나가 저만치 가을색이 영그는 한라산을 바라본다. 제주의 영산, 한라산 어느 중턱에 홀로 서 있는 벤치에서 무거운 발을 내려놓은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그저께 방문했던 동주민센터 쉼터가 스쳐지나갔다.

큰 바위를 쪼아 아로새긴 ‘토평마을’ 입석을 지나면 영천동의 행정 서비스를 책임지는 주민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센터 초입에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는 직원들의 미소만큼이나 포근한 무뚱쉼터가 다소곳이 서 있다. 정겨운 대화 속에 서로간의 사랑이 묻어날 것 같은 둥근 탁자 옆으로는 센터건물과 어깨를 마주한 듯 무뚱 양쪽을 지키는 벤치가 몸을 웅그리고 있다. 아기자기한 정경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따스하게 감싸주는 담요 같아서 나도 은근슬쩍 자리를 잡아 앉았다.

늘 다니던 길이라 무심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나였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에 하루의 피곤함을 잊은 채 따뜻하고 평온해짐을 느꼈다. 전에는 이런 느낌이 없었다. 무뚱쉼터는 오랜만에 만나는 동네어르신들과 도로변 풀베기 봉사를 하러 오시는 동네청년들의 웃음과 정다움이 함께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마을주민 모두에게 사랑방 구실을 다하는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짠하다. 아무 생각 없이 누리는 이런 행복과 편안함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 몸이 저려 와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고개 들어 주민센터 쪽으로 고마움의 눈길을 보낸다.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이 있다. 남을 위하고자하는 마음들이 모여 작지만 희망 연대의 끈을 이어가는 소중한 곳이다. 이웃들과 함께 서로의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것 또한 사람향기 가득한 세상으로 이끄는 길로 닿게 하리라 믿고 싶다. ‘주민을 위한다는 위민정신의 자세를 지켜 나아겠다.’라는 일념으로 탄생한 무뚱쉼터는 주민센터 방문객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각종 편익을 제공하고 더욱 사랑받는 장소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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