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문 교육감님!

국정교과서, 누리예산, 수능 등 산적한 교육현안 문제로 불철주야 애쓰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죠? 직접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이러저러한 얘기도 나누고 싶지만 워낙 바쁘실 것 같아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교육감님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네요. 2004년 공무원 노조 파업 때 지도부가 연행되자 밤중에 현장순회를 하면서 했던 조합원 간담회, 학교급식노동자 고용보장을 위한 토론회, 교육공무직 조례 제정을 위한 지역순회 간담회와 공청회 등 교육감님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교육감님도 알다시피 저는 공공운수노조의 교섭위원으로 제주도교육청과 만 3년이 넘게 단체교섭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4월 초쯤일 겁니다. 노조에서는 제주도교육청을 상대로 단체교섭 요구를 했었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학교장 고용 신분이었던 학교비정규직의 고용이나 처우가 너무 형편없어서 조금이라도 개선을 해보려고 했던 거였죠.

2011년 226명, 2012년 2월에는 390명이 ‘찍’소리도 못해보고 짤려나가야 했던 아픔을 겪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단체교섭은 자신들의 고용을 보장해줄 마지막 동앗줄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교육감이었던 양성언 교육감은 ‘학교비정규직의 사용자는 학교장’이라는 이유를 들어 교섭을 거부했었습니다. 교섭을 거부하는 교육감을 상대로 벼랑 끝에 내몰린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파업’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하루에 불과했지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해 11월 9일, 떨리는 마음으로 난생 처음 ‘파업’이라는 것을 해봤습니다.

그때 우리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야말로 저임금과 살인적인 노동강도, 극심한 고용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살리는 ‘응급구조사’의 역할과 같다고 해서 ‘119 파업’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제주도교육청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파업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더군요. 결국 노조에서는 교육감이 사용자이기 때문에 노조와의 교섭에 응하라는 소송을 했고, 고법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자는 교육감’이라는 판결이 나오자 제주도교육청은 마지못해 교섭에 응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지루한 힘겨루기가 시작됐고, 결국 2013년 11월, 교섭을 3주에 1회 한다는 합의를 하고나서야 겨우 본격적인 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한 지 무려 1년 10개월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첩첩산중’이라고 했던가요? 교섭만 시작하면 한 두달 안에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노동자들의 순진한 기대가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없더군요.

처우개선 얘기하면 “돈이 없어서 안된다”, 고용안정 얘기하면 “사용자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안된다”. 그렇게 제주도교육청은 노조의 소박한 요구안에 대해서조차 ‘수용거부’, ‘삭제’, ‘교섭대상 아님’이라는 무시무시한 칼로 난도질을 해댔습니다.

그럴 때마다 학교비정규직의 가슴도 같이 난도질당했습니다. 그때 우리 노동자들은 ‘우리도 진보교육감이 있었으면’하고 바랐습니다. 마치 전태일 열사가 어려운 한자로 된 근로기준법을 읽으면서 ‘내게도 대학생 친구 한명만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제주도의회 교육위원이었던 교육감님이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다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2013년, ‘교육공무직 조례’ 제정을 위해 노조와 같이 진행한 간담회, 공청회 등에서 보여줬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교육감님의 애정과 관심을 이미 경험했던 우리에게 교육감님의 출마 소식은 ‘가뭄 끝의 단비’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학교비정규직 고용보장과 처우개선’도 약속하셨고요. 그래서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교육감님의 당선을 위해 죽어라고 뛰었습니다.

오죽하면 10년 넘게 연락을 끊었던 지인들에게까지 일일이 전화를 해서 ‘학교비정규직도 사람 대접 받으려면 이석문이 꼭 당선돼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겠습니까?

그렇게 수많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염원을 안고 교육감님은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진보교육감’ 타이틀을 내건 교육감님이 당선되어도 우리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달라지는 게 없더군요.

여전히 제주도교육청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노조와 했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고요. 심지어 교육감님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공무원보다 임금이 더 높다”는 창조적(?)인 충고까지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알아서 다 해줄테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군요. 그때 제가 이렇게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공무원보다 진짜로 더 높다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공무원으로 전환하면 예산절감도 되니까 일석이조 아니냐?” 제 물음에 교육감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셨고요.

교육감님, 혹시 ‘송곳’이라는 드라마를 아시나요? 그동안 대한민국 드라마에서는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한 내용은 금기처럼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금기를 깨고 노동조합 활동을 전면으로 다룬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원작인 만화 ‘송곳’이 나온 지 꽤 됐는데 혹시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박근혜정권이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맞물려 요즘 인터넷을 한창 뜨겁게 달구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송곳’을 보면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쩜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이렇게도 똑같을 수 있을까하고요? 교육감님도 노동운동 20년 넘게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감님이 지금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 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물론 교육감님은 “나는 하나도 안바뀌었다”고 장담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송곳’을 보다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저기......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

“그렇죠?”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사람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요. 노동운동 10년 해도 사장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인간이란 말이요.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혹시 교육감님도 ‘송곳’의 대사처럼 서는 데가 노동운동가에서 교육감으로 바뀌니까 풍경이 달리 보이시진 않나요?

끝으로 교육감님께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 질문 하나만 드리면서 편지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교육감님은 사용자인가요? 아니면 노동자인가요?”

쌀쌀해지는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 부디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 오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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