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사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쌓아온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67·서울대 명예교수).

서구의 이론 수입에 급급했던 초창기 사회학계 풍토에 ‘토착적’ 사회학을 정립하고 정착시킨 학자라는 평을 받는 그는 제주인이다.

1937년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8살때 일제의 주민 소개령에 의해 고향을 떠나 광복 직전 가족과 함께 대전으로 강제 이주 당하는 등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한국전쟁을 맞은 때는 그의 나이 열 세살때.

소년시절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참혹함을 보았던 그는 '왜 민족이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늘 따라다닌 주제 '민족'

결국 격동의 소년기와 유년기를 보낸 그는 '민족' 문제를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4·19혁명과 6·3항쟁에 적극 참여하는 '4·19 세대'로 역자적 문제의식을 하나 둘씩 키워나갔다.

당시 서울대 재학시절 최문환 교수의 '사회사상사'와 이상백 교수의 '사회사'강의에 매료된 그는 이후 대학원으로 진학, 본격적인 사회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최 교수가 경제학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다시 경제학도의 길을 걷게된 그는 1964년 '한국자본주의 성립과정의 연구'란 제목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28살의 젊은 나이에 경제학과 전임강사를 따내는 진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그의 주제는 늘 '민족'이란 단어를 떠나지 못했다.

'민족'이라는 주제아래 고조선 시대부터 21세기에 대한 전반적 현상까지 한국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그의 열정은 학업적 성과로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가 사회학과 한국의 근대사를 결부시키는 연구가 주를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연구 업적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독립운동사 연구'.

'독립협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일제 강점기 전후의 한국 민족의 역사와 한국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민족문제 특히, 일제감점기 전후의 민족문제를 연구하는데 독립운동의 역사는 필수과목이라는 그의 평소 지론은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 등의 저서로 사회사(社會史)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백범학술원' 설립

▲ 백범 김구.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호 백범(白凡), 아명 창암(昌岩), 본명 창수(昌洙)였으나 개명하여 구(龜,九), 법명 원종(圓宗). 초호 연하(蓮下)다.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의 결의에 반대하여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창했다. 그후 북한으로 들어가 정치회담을 열었으나 실패했다.

이후 정부수립에 참가하지 않고 중간파의 거두로 있다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했다.

2000년 그가 '근대 최고의 애국자'로 꼽는 백범 김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백범학술원'을 만들고 2002년 10월 백범 기념관을 건립하는데 적쟎은 노력을 바친 것은 그의 학업 정신과 면면히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민족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신 교수는 "김구 선생은 18살 때 동학 농민운동에 뛰어들어 황해도 선봉장으로 활약했고 을미의병에 참가해 일본군 첩자를 처리한 것으로 사형언도까지 받았다"며 "또한 한말애국구국운동과 신민회 등 국권회복운동에 헌신해 18년형을 언도 받았지만 임시정부시절 경무국장과 국무령을 거쳐 임시정부 주석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근대 최고 인물이자 스승인 김구 선생은 북한에서도 비록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이지만 최고의 애국지사로 평가한다"며 "이승만의 경우 단기적으로 성공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역사의 평가가 김구에게 손을 들어주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 '백범 김구사상과 독립운동'.
이 처럼 백범사상과 연구에 심취한 신 교수가 최근 '백범김구 사상과 독립운동'(346쪽.서울대출판부.1만5000원)을 펴냈다.

7년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면서 자신의 전 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겨레의 큰 스승이자 민족독립운동가인 백범.

그는 일제의 침략 아래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살길을 열고자 해방된 통일조국 건설에 혼신의 힘을 다하다가 끝내 비명에 간 백범의 생애에 대한 모든 것을 이 한권의 책에 담았다.

2부로 나눠진 이 책은 저자가 그 동안 백범 김구 선생의 사상과 활동에 대해 쓴 글 가운데 12편을 뽑아 엮은 것.

제1부에는 백범의 사상과 활동에 대한 한 편의 작은 전기와 다섯 편의 학술 논문을 수록했다.

제2부에는 다섯 편의 계몽 논설과 『백범일지』 판본 해설 및 백범 연보를 담았다.

연보는 백범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생각한 그는 꼼꼼히 추적한 백범의 발자취를 자세하고 알기쉽게 정리했다.

독립 논문들의 모음이지만 중복된 논문들은 빼고 전체적으로 백범의 사상과 운동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단행본처럼 편집된게 특징이다.

신 교수는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들이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온 생애를 조국과 민족의 자유 해방·독립·통일에 바친 근대 한국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요 큰 스승"이라며 "우리나라가 통일되고 자유로우며 높은 문화를 가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전 세계 인류와 함께 손잡고 세계 평화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그의 소망은 아직도 21세기에 후손들이 성취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학자에게 정년은 없어

지난 2월 정년퇴임한 그는 한마디로 "연구를 하는 학자에게는 정년이 따로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학교 재직시절에도 '공부 하는 교수'로 정평이 나있던 그는 "단지 공부하는 시간이 늘었을 뿐"이라며 제자들에게 쓴 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한국 근대사를 해석해 놓은 몇 안되는 학자로도 유명하다.

올해 2월 정년퇴임때까지 그가 낸 학술논문은 249편, 저서도 무려 45권을 펴냈다. 이번 출간된 '백범사상…'외에 이미 원고가 완성돼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저서도 5~6권에 이른다.

'민족'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늘 강조해왔다.

그가 말하는 실사구시의 학문이란 '곧 사회적 사실이 이론보다도 선행한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여 사실에 의거해 이론을 정립하고 사실에 비추어 이론의 진위와 적합도를 판별하는 학문'을 일컫는다.

다산 정약용이 학문적 스승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학문과 실천에 대한 연계성을 늘 고민해 온 그의 지칠줄 모르는 탐구정신은 '한국사회사'라는 학문 영역을 구축하기도 했다.

지난 3월 한양대 석좌교수로 위촉된 그는 평생 수집한 한국학 연구자료 1만여점을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 기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제주4·3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제주인의 시각에서 담아낸 4·3진상보고서를 만들어내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지난 10월 15일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가 최종 통과될 때 군·경 보수위원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저력'을 과시, 진상보고서가 통과되도록 하는 숨은 '1등 공신'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시를 쓰고 싶었다는 젊은 시절의 꿈과 이 곳 저곳을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는 여행을 접고 오직 연구 외길을 걸어 온 신용하 교수.

그의 발자취는 점점 엷어지는 학자적 자세를 가진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신용하 교수.

1937년 제주생이다.

8살때 일제에 의한 강제 이주로 인해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13살때 한국전쟁을 맞으면서 처음 '나라'와 '민족'에 대해 떠올렸다.

서울대 문리과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석사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백범학술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한양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는 '백범 김구의 사상과 독립운동'(서울대출판부, 2003.11),  '일제강점기 한국민족사(중)'(서울대출판부, 2002.9), '독도영유권에 대한 일본주장 비판'(서울대출판부, 2001.12)'일제강점기 한국민족사(상)'(서울대출판부, 2001.8),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사회사'(서울대출판부, 2001.6), '갑오개혁과 독립협회운동의 사회사(서울대출판부, 2001.5), 'IMF체제의 사회과학적 진단'(서울대출판부, 1998.12.30), '단군(증보판)'(서울대출판부, 1994.10), '한국근대 민족주의의 형성과 전개'(서울대출판부, 1987.7), '박은식의 사회사상연구'(서울대출판부, 1982.11) 등이 있다.

<목차>

제1부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I. 백범 김구의 생애와 독립운동(백범 김구 약전)

1. 백범 김구의 청소년 시절

2. 동학농민군의 팔봉접주

3. 청계동에서의 유학의 청강

4. 의병부대 참가와 일제 밀정 차단

5. 승려생활과 환속

6. 기독교 입교와 애국계몽활동

7.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주석과 독립운동

8. 백범의 환국과 순국

II. 백범 김구와 韓國勞兵會

1. 머리말

2. 한국노병회의 취지와 목적

3. 백범과 한국노병회의 결성

4. 勞兵의 양성방법

5. 戰費의 조달방법

6. 한국노병회의 활동(一)

7. 한국노병회의 활동(二)

8. 한국노병회의 해산

9. 맺음말

III. 백범 김구와 韓人愛國團의 활동

1. 머리말: 한국독립운동사에서의 한인애국단의 위치

2. 한인애국단 창립의 배경

3. 상해 임시정부 特務隊로서의 한인애국단의 창립

4. 李奉吉 의사의 東京 의거

5. 한인애국단의 일본국사령부·出雲號 폭파 활동

6. 한인애국단의 일본군비행장 格納庫와 무기창고 폭파계획

7. 李德柱·兪鎭植 의사의 朝鮮總督 특공계획

8. 尹奉吉 의사의 上海 의거

9. 崔興植·柳相根 의사의 大連(關東軍사령부·關東廳장관·滿鐵총재) 특공계획

10. 백범의 한인애국단의 활동의 역사적 의의

11. 맺음말: 독립운동 특공작전으로서의 한인애국단 활동

IV. 백범 김구의 韓國光復軍 창군

1. 주제의 한정

2. 중국 군관학교 한인특별반의 군사간부양성과 한국광복군의 창군 준비활동

3. 한국특무대독립군과 학생훈련소

1) 韓國特務隊獨立軍 조직

2) 학생훈련소의 설치

4. 韓國光復軍의 創軍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의 성립

5. 한국광복군 各支隊의 편성

6. 중국측의 광복군 활동 저지와 ‘9個項 行動準繩’

7. 光復軍의 군사통일·朝鮮義勇隊의 편입

8. 맺음말

V. 백범 김구와 大韓民國 臨時政府의 발전

1. 머리말

2. 임시정부 수립과정에서의 특수위치

3. 統合臨時政府의 수립과 독립운동사에서의 위치

4. 백범과 고난기의 임시정부

5. 백범과 임시정부의 聯合政府로의 개편

6. 맺음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사상의 위치

VI. 백범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카이로선언

1. 머리말

2.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對日本 宣戰布告와 열강의 반응

3. 임시정부의 외교활동과 중국의 적극적 반응

4. 信託統治論 대두에 대한 임시정부의 대응

5. 카이로회담 준비와 蔣介石의 1943년 7월 26일 임시정보유인에 대한 약속

6. 카이로회담과 ‘카이로선언’

7. 임시정부의 신탁통치안 반대운동

8. 맺음말

제2부 백범에 대한 수상록

VII. 백범 김구의 사상과 독립운동의 전개과정

VIII. 백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IX. 백범의 동학접주 시절과 동학농민혁명운동

X. 백범의 新民會 시절 활동

XI. 한국민족의 영원한 스승 白凡

XII. 『白凡逸志』판본 해설

1. 『白凡逸志』의 구성

2. 『白凡逸志』1929년 필사본(필사본①)

3. 『白凡逸志』1948년 초엽 필사본(필사본②)

4. 『白凡逸志』하권 계속분(필사본③)

5. 『白凡逸志』국사원판 간행본

XIII. 백범 김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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