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정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

※ 제주도교육청이 영어회화전문강사(이하 ‘영전강’) 집단해고를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영전강은 영어공교육 강화와 발전을 위해 지난 2009년 도입된 제도이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도입, 추진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영전강은 3단계 전형방법(서류전형, 수업실연, 영어면접), 매해 교원평가(동료, 학부모, 학생)와 근무평정 평가 등 엄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선발됩니다. 이렇게 선발된 영전강은 각 학교에서 정규영어수업, 영어관련 대내외 행사 주관, 원어민 교사 관리, 동아리 활동(영어듣기, 말하기 지원), 영자신문 수업 등 다양한 방식의 영어교육을 진행하며, 영어공교육 발전에 이바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영전강의 고용은 매우 불안정합니다. 영전강은 매해 재계약을 합니다. 학교장에게 찍히면 재계약이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간제 노동자는 2년 이상 근무하면 자동적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이 이루어져 고용을 보장받게 됩니다. 하지만 영전강은 2년 이상 근무해도 무기계약직 전환이 되지 않습니다. 한 학교에서 4년 이상 근무할 수도 없습니다. 4년을 넘겨 계속 근무를 하고 싶으면 신규채용에 응시해야 합니다. 평생 비정규직 신분인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영전강의 사용자는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이라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때문에 학교를 옮겨 신규채용 방식으로 일했다 하더라도 4년 이상 근무한 영전강은 무기계약직이라는 판정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무기계약직인 영전강을 정당한 사유없이 해고한 것은 명백한 ‘부당해고’입니다.

 

<이석문 교육감님께 드리는 두 번째 편지>

이석문 교육감님!

혹시 답장없는 편지를 밤새 쓰고 난 뒤 부칠까 말까 고민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첫 번째 편지를 드리고 나서 답장을 기대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답장이 없어 솔직히 서운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답장이 없을까봐 편지를 쓰면서도 사실 고민이 듭니다. 부치지 못할, 아니 부칠 필요가 없는 편지를 굳이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 말입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이렇게 두 번째 편지를 드립니다.

아마 4년 전 이맘때쯤이었을 겁니다. 양성언 교육감이 학교급식 노동자들 배치기준을 변경하는 바람에 400여명의 급식노동자가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학교급식노동자 집단해고를 막기 위해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투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교육위원이었던 교육감님은 “학교급식노동자 집단해고는 있을 수 없다”며 우리의 투쟁을 적극 지지해 주셨었고요. 양성언 교육감에게 “교육청의 배치기준 변경 하나로 수백명의 학교급식노동자를 집단해고 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며 집단해고 방침 철회도 요구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노조와 함께 학교비정규직 고용안정 정책토론회도 개최했었고요. “교육감이 아니어서 큰 힘은 안되지만 최대한 집단해고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해보겠다”고 결의도 밝혔었고요. 그러면서 “제주도의회와 교육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이 더 가열차게 투쟁해야 한다”고 얘기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로부터 4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교육감님은 4년 전 힘이 없다던(?) 교육위원이 아니라 힘이 있는 교육감이 되셨고요.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고 하잖아요? 화장실 들어가기 전이랑 나온 후랑 달라지기도 하고요. 그래서일까요? 힘이 있는 교육감이 되신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학교비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해 힘쓰겠다던 교육감님이 오히려 학교비정규직 집단해고를 강행하고, 더 가열차게 투쟁하라던 교육감님이 공무원과 경찰을 동원해 노동자의 투쟁을 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게 되네요.

교육감님은 작년 연말에, 그리고 올해 첫 업무를 시작하는 날 갑자기 영어회화전문강사(이하 ‘영전강’) 집단해고 방침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밝혔습니다. 당사자와 아무런 사전 소통도 없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2019년까지 119명의 영전강을 전부 해고하는 것이 영어공교육 정상화 방안이고, 영어공교육 발전방안이라면서요. 그런데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영전강제도 때문에 영어공교육이 비정상적으로 되고, 영어공교육이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영전강제도만 없애면, 그들만 학교 밖으로 내쫓아버리면 영어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영어공교육이 발전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지난 1월 8일 제주도의회 강경식 의원과 노조가 공동으로 영전강 고용안정 정책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많은 영전강 선생님들이 참석했고, 집단해고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교육청 관계자에게는 영전강제도를 갑자기 폐지하는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요구도 했고요. 그런데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교육청이 졸속적으로 결정한 영전강제도 폐지 정책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없었습니다.

지난 연말에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영전강 해고에 대해 ‘비록 영전강을 학교장 명의로 채용했다 하더라도 사용자는 교육감이고, 4년 이상 고용했다면 영전강은 무기계약직이기 때문에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정이 있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은 4년 이상 고용한 영전강을 당장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서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판정이었습니다. 그 판정문이 나오고 나서 전국의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이 발칵 뒤집혔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던 영전강제도 폐지방침이 결정되었고요.

저는 졸속적인 영전강제도 폐지 및 집단해고 결정은 영전강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제주도교육청이 부리는 꼼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영전강제도 폐지 근거에 대해 아무 것도 제시하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데 단 며칠 만에 밀실에서 이렇게 졸속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요? 유독 4년이 된 영전강만 새로 고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을까요

제주도교육청은 영전강제도 폐지 철회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교육청에서 한번 내린 공문(정책)은 철회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박근혜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면서 “정부에서 결정한 정책이기 때문에 철회할 수 없다”는 것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제주도교육청은 정부의 그런 방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부에 시정요구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제주도교육청의 그런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당연히 정부방침을 철회하고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에서 책임져야 하는 거고요. 그런데 제주도교육청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잘못된 정책을 철회해서는 안된다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내가 하면 로멘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요?

교육감님은 ‘배려와 협력으로 모두가 행복한 제주교육’이라는 교육지표를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사전에 당사자와 아무런 소통도 없이 결정하는 게 교육감님이 얘기하는 ‘협력’인가요?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는 걸 회피하기 위해 영전강을 집단해고 하는 게 교육감님이 얘기하는 ‘배려’인가요? 차라리 없는 게 나은 그런 ‘배려’와 ‘협력’으로 ‘행복’해 할 ‘모두’는 누구인가요? 교육감님의 귀에는 집단해고 당한 영전강 선생님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나요?

마직마으로 요즘 한창 뜨는 드라마 ‘응팔’을 인용해 약간 건방져보일지 모르지만 교육감님에게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영전강의 외침에 “응답하라! 이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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