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예술기관은 행정의 기관일까, 시민의 기관일까. '공공'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행정의 운영기관은 맞다. 그러나 그 '공공'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주체는 당연 시민이 돼야 한다. 여기에 예술기관이라는 특성이 더해지기 위해서는 문화다양성의 보장이 기본이다.

공공예술기관에 있는 행정의 자의적인 판단은 그래서 위험하다. 다양한 시각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숫자 1을 보고도 여러 해석과 표현이 가능한 것이 문화예술분야다. 판단은 예술을 누릴 권리가 있는 시민에게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는 엄연히 '표현예술의 자유'가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서귀포예술의전당이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정치성을 띠고 있고, 편향성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대관을 거부했다. 정부시책에 반(反)하는 영화들이 영화제 주요상영작 목록에 있고, 후원단체에 강정마을회가 있어서다. 전당은 '정치성에 반하는 사항이 있으면 제한한다'는 운영규정을 이번 사안의 정당성으로 대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행정적'인 판단이다.

문화예술전문가나 시민의 의견은 들어가지 못했다. 루트가 없기 때문이다. 전당에 따르면 '심의위원회'가 있지만 이는 대관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만 운영된다. 이를테면 2곳 이상에서 같은 기간의 대관을 신청할 때 누구에게 대관을 하느냐를 두고 심의위원회가 움직인다. 이것이 예술기관의 '심의위원회' 수준이다. 전문가나 시민으로 구성된 자문기구도 물론 없다.

한 달이나 대관결정을 보류하면서 '관장' 차원의 자문기구가 움직였을 수는 없었을까? 한 지역의 대표 예술기관의 '관장'이라면 혼자만의 판단으로 결정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않았어야 했다. 물론 윗선인 서귀포시와의 논의는 있었을 것이다. 행정과 행정만의 논의가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 관장은 '독단'으로 했다고 하지만 그 배경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서귀포예술의전당 바로 윗선인 '주민생활지원국 국장'은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귀포예술의전당이 강정국제평화영화제 대관을 거부한 데 대해 "조례대로 운영되고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을 했다. 이번처럼 행사의 내용을 두고 '판단'할 때 전문가나 시민과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느냐의 물음에는 "관장이랑 얘기하시죠"로 대답이 끝났다. 서귀포예술의전당을 비롯 서귀포시 대부분의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는 실무국의 얘기다.

행정은 무슨 권리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서귀포시 주민생활지원국 국장의 말처럼 '조례대로 운영되고 있으면' 행정은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행정의 자의적인 판단 아래 OK 된 문화예술'만 향유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 문화예술을 누릴 시민의 권리 위에 행정의 조례가 먼저 있었나.

문화예술은 살아있는 '의식의 흐름'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시대가 반영되고 사회가 밀착돼 나타난다. 그 허용범위와 표현범위를 보장하는 게 '다양성'이다. 여기에 정치적 판단이 뒤섞이게 되면 바로 훼손되고 파장이 퍼지는 민감한 영역이기도 하다. 행정의 조례처럼 죽어있는 '글자'가 아니다.

공공예술기관은 그래서 단순 행정조직으로만 운영되서는 안된다. 적어도 한 지역의 대표 문화예술공간이라는 자부심을 세우려면 '전문성'은 갖춰야 하지 않나. 그 전문성이 행정으로 채워지지 못한다면 어디가서 '묻는' 성의라도 가져야 한다. 조례 운운하며 할 범위내에서 했다는 행정의 변은 그래서 문화예술인들의 비웃음을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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