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더는 ‘이상’이 아니었다. 촉촉한 비가 내리던 23일 토요일 저녁,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첫 발을 디딘 서귀포성당에서 시민들은 ‘평화’로 하나가 됐고 그 꿈이 멀지 않은 길이라 함께 확신했다. 그곳에는 정치도, 이데올로기의 색깔도 없었다. 그저 한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평화!’. 도란도란 모여 영화를 통해 평화를 얘기하자는 소박하고 선한 움직임은 그렇게 큰 발을 딛었다.

서귀포성당을 가득 메운 1천여명의 시민들. 그들은 하나 같이 '평화'를 얘기했다. 자연스러운 자유로움,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아름다운 개막식으로 사람들에게 기억을 남겼고, 이들은 이미 다음 영화제를 기대하고 있었다. @변상희 기자

특별한 공연도, 성대한 퍼포먼스도 없었지만 영화제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 점수를 받았다. 다들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또 평화롭게 영화제에 녹아들었다. 초 단위로 큐시트가 짜여지고 화려한 이슈꺼리로 채워지는 여느 영화제에 뒤지지 않는다는 게 영화제 개막식에 참여한 시민들의 말이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부지영 감독은 “앉고 서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영화제 개막식이 진행되는 건 처음. 역시 강정영화제만의 개성이 있다”며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국제영화제가 만들어지는 건 전례가 없다. 장소 변경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러 자원봉사자 등 시민들만의 노력으로 성공적으로 문을 열게 됐다. 다들 수고가 많으셨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축사로 "평화는 오로지 평화를 통해서만확보된다는 인식을 강제평화영화제가 확산하기를. 모두 평화지킴이가돼달라."고 말을 남겼다. @변상희 기자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는 "지도자들의 호전적 모험을 멈추게 하려면 시민들이 나서는 수 밖에 없다. 평화연대만이 고조되는 위기상황에서 세상을 구한다. 평화는 오로지 평화를 통해서만 확보된다는 인식을 강제평화영화제가 퍼뜨리길. 모두 평화 지킴이가 돼 달라."고 축사를 남기는 등 채현국 이사장(효암학원), 김성환 신부,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 등이 개막식 무대에 올라 강정영화제의 문을 함께 열었다.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오로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그 바탕에는 뭣보다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큰 힘이 됐다. 영어통역사 등 전문분야 봉사자와 자원봉사단 ‘붉은발똥게’가 모인 수십 명의 자원봉사의 힘은 영화제 개막의 성공을 이끌어냈다.

용인에서 온 영어통역가 알렉스 유. 그녀는 이런 영화제는 처음이라며 사람들이 모두 자기일처럼 다방면으로 영화제를 진행하는 걸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변상희 기자

영어통역가로 참여한 알렉스 유(용인시)는 “강정과 특별한 인연은 없었지만 지인들을 통해 영화제 소식을 듣고 뒤늦게 참여했다. 주로 영화제에 초대된 게스트들을 케어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워낙 다분야로 일처리를 해주고 계셔서 크게 어려움은 못 느낀다”며 “여러 행사에 가봤지만 이렇게 자유롭고, 서툴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영화제는 처음이다. 설상가상 문제가 있더라도 다들 슬기롭게 해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실 엊저녁 최종회의에서만 해도 행사가 어떻게 진행이 될까 했는데, 오늘 개막식을 치르고 보니 시민들의 반응도 너무 좋고 예상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어느 문화제, 영화제보다 진지하고 수준이 높다”며 “올해는 뒤늦게 참여했지만, 내년에는 첫 시작부터 함께 해서 더 아름다운 영화제가 되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고 영화제 참여 소감을 전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김동빈 감독의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업사이드 다운’이 상영됐다. 감독과 함께 개막식에 참여하기 위해 세월호 유가족 다영이 아버지와 재욱이 어머니가 먼 길을 찾아왔다.

강정국제평화영화제의 개막작 '업사이드다운'의 김동빈 감독과 세월호 유가족들. 다영이 아버지, 재욱이 어머니는 평화영화제의 개막을 축하하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함께 하자는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변상희 기자

다영이 아버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이제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우리나라에 대해 참사 이후 이렇게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지 그 중심에서 확인했다.”며 “이 계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가꿨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욱이 어머니는 “제주는 우리 유가족들에게 특별한 곳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수학여행 목적지이기도 하고, 이곳 한 대학에 단원고 희생자 7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며 “역사는 민초들이 써간다. 평화도 실천하는 것”이라며 세월호를 잊지 말고 앞으로도 함께 해달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영화인 김부선씨가 인사를 전하자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있다. 이날 영화제에는 '다섯대의 부서진 카메라' 가이 다비디 감독과 '러브 오키나와'의 카케야마 아사코 감독 등 여러 외국인 영화감독들과 임순례, 정지영, 김성제 감독 등 국내 유명 감독들도 자리에 함께 했다. @변상희 기자

한편 이날 강정국제평화영화제에 함께 한 시민은 영화제측 추산 1000여명이 넘었다. 한 시민은 “서귀포예술의전당이 대관을 거절한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강정영화제 개막식에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찾아왔다”며 “오로지 평화와 인권을 얘기하는 아름다운 영화들이 기대된다. 그들이 얘기한 정치적, 편향성은 오늘 개막식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공무원들(?)이 이 개막식을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고 소감을 말했다.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26일(화요일)까지 이어진다. 다섯 개 섹션으로 나뉜 34편의 영화가 준비됐고, 대부분의 영화들은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도 함께 마련된다. ‘기억 투쟁으로써의 영화’ 등을 주제로 한 평화포럼과 평화영화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강정국제평화영화제 홈페이지 www.ipffig.org에서 확인하면 된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