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대하여

-4.28 구억국민학교에서

그날 평화가 있었다고 한다 평화를 위한 협상이 있었다고 한다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협상이 있었다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사태해결을 위한 협상의 제스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평화냐 전쟁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협상의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평화는 파괴로 가는 길목의 어느 작은 정거장 정도였다고 한다 그냥 지나쳐버려도 무방한 무임승차가 배제된 그런 작은 역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평화란 미국에게는 어떤 미세한 위협도 차단된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평화란 그런 텅빈 상태를 만들기 위해 무력으로 완벽하게 제압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제압이라는 것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완벽하게 말살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식민지 조선의 작은 귀퉁이 제주섬에서의 1948년의 평화란 아예 멸종 상태의 정적과 침묵 그리하여 그 존재자체가 아주 무의미할 정도의 그런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렇게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평화라고 한다 이것이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4・28평화협상의 실체라는 것이라고 한다

김경훈
시집으로 [삼돌이네집], [한라산의 겨울], 강정 시편 [강정은 4・3이다] 등.
산문집 [낭푼밥 공동체] 등.
제주작가회의와 놀이패 한라산 회원.

시인의 말

 

‘제주4·3사건 초기, 김익렬 연대장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무장대진영으로 들어가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담판을 벌였다. 또한 강경 진압작전을 거부하다 미군정으로부터 해임되었다.’ 이는 제주4・3평화기념관 상설전시실 ‘의인 코너’에 있는 김익렬 연대장에 대한 기록입니다. 1948년 4월 28일에 있었던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평화협상에 대해 항간에 여러 설이 많습니다만, 저는 이 협상을 미군정의 ‘양동작전’이었다고 단언합니다. 평화를 표면에 내세우면서 뒤에서는 학살진압을 음모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당의정(糖衣錠)처럼 평화를 이용한 것입니다. 가증스런 전쟁 장사꾼들은 평화마저 이렇게 ‘애용’합니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