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혜경 박사(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워원)

섬 공간은 제한된 자원들을 연결하여 순환과 소통 체계를 만들어내는 생태적인 공간이 되어야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공동체가 미래세대와 더불어 지속적 삶이 가능하다. 과유불급은 섬 공간에서 지켜야할 명제와도 같은 고사성어이다. 그런데 현재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드락’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포화상태,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드락(gridlock)이란 말을 찾아보면 교차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교통 정체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누가 만든 말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를 처음으로 유행시킨 사람은 1980년대 뉴욕시 교통국 수석 엔지니어였던 샘 슈워츠(Sam Schwartz)라고 한다. 그는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교통 파업이 일어났을 때, 그리드락을 언론에 설명하면서 ‘그리드락 샘(Gridlock Sam)'이란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그는 이 말이 자신이 만든 말이 아니고, 전부터 교통국 직원들 사이에서 쓰이던 말이라고 하였다.

곧 이어 [뉴욕타임스매거진(New York Times Magazine)]이 그리드락을 심층적으로 다루면서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고, 적용범위도 넓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방송에서 동시에 발언해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것을 ‘음성 그리드락(Vocal gridlock)’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경제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소유권이 경제활동을 방해하고 새로운 부의 창출을 가로 막는 자유시장의 역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도 적용되었다. 그리드락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는데, 특허의 누적은 새로운 제품 개발 속도를 둔화시키는 장애가 되었다. 특허에 대한 대가 지불 총액이 신제품 예상 이익을 초과해 신제품 개발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리드락은 ‘지나침’에서 오는 것이다.

이런 그리드락의 안개가 제주사회에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을 둘러싼 사적 소유권의 확장과 갈등으로 인한 부동산 그리드락은 팽배해져 가고 있고, 64만 인구에 40만대를 넘어선 차량등록수와 교통 그리드락, 원주민과 이주민들간의 소통 부재로 나타나는 음성 그리드락, 행정과 의회 대결로 부분 업무가 정지되는 정치적 교착 상태 등 다양한 형태의 제주형 그리드락이 나타나면서 섬 공동체의 긴장관계 수치를 높이고 있다. 한때 섬의 이상적 삶을 위하여 수행되어 왔던 여러 행위들이 이제는 오히려 독이 되는 단계에 이르면서 그리드락이 제주사회에서 서서히 중요한 문제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제주에서 대두되고 있는 그리드락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이다. 교통량만 놓고 본다면 차량 등록수가 20만대(2004년)에서 30만대(2013)가 되는 기간은 8년이 걸렸지만, 40만대(2015)를 넘어서는 데는 고작 2년이 걸렸다.

이 속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그리드락을 해결할 수 있는 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 그리드락을 의제로 삼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정략적으로 삼아서 이것을 만든 세력을 척결 대상으로 삼는 증오의 정치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함께 더불어 지속 가능한 섬 공동체 삶을 만들어가자는 의지와 함께 진정성이 수반된 신뢰를 바탕으로 섬 공공성과 네트워크를 새롭게 조화시켜나가면서 지나침과 부족함을 조절하여 소통과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관계 맺음의 중요성이 다시 거론될 수밖에 없다. 긴장관계의 수치를 낮추고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섬 속에서 같이 살아가야 하는 법을 논의해야 한다.

슈퍼자본주의 시대 ‘이동’과 ‘흐름’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관계 맺음의 소홀로 한 공동체가 급격히 무너지는 것이 목격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의 플란트시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가 되어버렸다. 제주 그리드락은 소통과 공존을 통해서만 예방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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