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제주인 김용해 민족교육자 추도회

"금의환양의 꿈을 안고 1943년 18세 때 고향 제주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온 소년 김용해(金容海) 선생님은 그 꿈을 접었습니다."

"이쿠노구에 있는 오사카시립키타쓰루하시(北鶴橋)초등학교에서 대학 재학중인 1951년부터 1987년까지 36년간 민족학급 담당 상근 교사로서 근무하셨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 오직 교육자 외길만을 걸어오신 선생님은 그후, 오사카민단본부 문교부장, 민단중앙본부 민족교육위원장 등을 역임하시면서, 민족학급의 체계화 등을 확립 시키면서 민족교육에 다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재일본 제주도 친목회장>직을 맡으시고 제주 발전의 원점이 된 밀감 보내기 운동을 성공적으로 추진 시켰습니다."

"종친회 활동에서는 <재일 광산김씨> 친족회장을 다년간 역임하시고, 외국에서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종친회 공동묘지를 나라(奈良)현에 조성하여 친족간의 친목과 유대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셨습니다."

5월 16일 오후 6시 30분부터 이쿠노구민센터에서 열린 <김용해 선생님 추도회>에서 재일광산김씨 친족회 임원이며, 민단 오사카본부 부단장을 맡고 있는 김명홍(金明弘) 추도회 실행위원장이 참석자에 대한 감사와 첫머리처럼 고인에 대해 간단한 소개후, 김용해 선생의 생전의 활동을 편집한 비데오 상영이 있었다.

정현권(鄭鉉權) 민단 오사카본부 단장은 추도사에서 민족학급 교사 당시 쌓은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민단조직 간부로서 일본 교육행정과 많은 협의와 교류 속에 동포 자제들의 민족교육에 헌신적인 공헌을 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김성필(金成弼) 재일광산김씨 친족회장은 대학나무로 불리웠던 제주 감귤 보내기 운동과 종친회 공동묘지 조성에 크게 이바지한 고인의 업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고용철(高用哲) 동포보호자 연락회회장은 1974년에 발간하고, 1996년에 재발간한 김용해 선생의 <본명은 민족의 긍지>이라는 책을 읽고 그 동안 사용해온 통명(속칭 일본명)을 버리고 본명을 사용하면서 갈등의 혐오감에서 벗어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고용철씨는 이를 계기로 자신의 본명만이 아니고 가족은 물론 일본에 있는 부모 산소의 묘비명의 통명까지 전부 삭제하고 새로운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필자가 가르쳤던 민단에도 한국어를 배우러 왔었고 자기 아이가 다녔던 오이케(大池)중학교 선생과 동포 학부형들이 친목을 목적으로 구성된 <오야지반도>의 멤버로서 활동했다. 필자는 그를 소재로 졸저 단편소설 <오야지반도>를 쓰기도 했다.       

곽정의(郭政義) 키타쓰루하시초등학교 전 민족 강사는 고인의 후배로서 새로운 후배 양성에 대한 지도와 활동을 협의하면서 갈등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옳았다면서 고인을 기렸다.

<동포 어린이가 어머니와 함께 유원지를 가거나 전차를 탈 때에도 자신이 죠센징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 곁을 멀리하는 것을 듣고 보았을 때의 참담한 심정.>

이 굴절된 가족관과 민족관을 바로 잡기 위해 한눈 팔지 않고 일생을 동포 교육사업에 바쳐온 김용해 선생은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것을 재일동포사회에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었고, <금의환향>의 꿈을 고향만이 아니라 재일 1세로서 한일 양국에 깊게 심어 주었다.

"직계 가족장으로 검소하게 장례식을 치르라는 아버님의 유언을 따라 오늘 참석하신 여러분들께 알려드리지 못함을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1926년 1월 31일 제주시 이호동에서 출생한 김용해 선생은 1943년 3월 도일 후, 2016년 3월 10일 돌아가셨는데 향년 만 90세였다.  

유족 대표의 진솔한 인사 후, 민단, 제주친목회, 일본 교육계, 민족학교 강사, 광산김씨 종친회 등 약 250여명의 참석자들은 헌화 후에 준비한 음식들을 들면서 고인에 대한 담소를 나눴다. 이날의 추도회 알림은 아사히신문이 기사로서 내보내기도 했다.

"김길호씨 올해로 한국 나이로 90세인데 이것을 마지막으로 앞으로 연하장 보내는 것은 그만두겠습니다. 그 동안의 교류와 많은 협조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

작년 1월 1일 날 받은 연하장 내용이었다. 해마다 정성 들여 붓으로 써 주신 연하장을 받을 때마다 저한테까지 보내 주시지 않아도 선생님 괜찮습니다라고 말씀 드렸지만 이것만은 필자의 솔직한 요청도 들어주시지 않았다. 선생님,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김용해 선생은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민족학교 <학교법인 백두학원>,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학교법인 금강학원> 이사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1965년, <안유, 안창호, 안중근 약전>. 1973년 <더욱 좋은 내일을 여는 가정의례법-새로운 혼례와 상제>. 1989년, <알아두고 싶은 제사>. 1974년, 1974년 재발간, <본명은 민족의 긍지>. 2006년, <본명은 민족의 긍지:한국어판>이 있고, 평전으로는 2011년, <김선생님>이 있다.

수상력은. 1995년, <제주도문화상>. 2001년, 오사카부 교육위원회표창 <재일외국인 교육진흥에 기여>. 2005년, 대한민국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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