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 당시 동양 최대 주정공장이 있었던 제주항 인근 주정공장 터에 쇼핑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같은 사실은 도내 모 일간지에 실린 분양광고로 확인할 수 있다. 주식회사 천마를 시행사로 하고 ㈜천마종합건설을 시공사로 하고 있는 제주365장터 임대분양 광고는 ‘제주국제자유도시의 관문 제주항 앞 제주최고의 쇼핑센터’, ‘최고의 입지조건’ 등을 내세우고 있다.

도내 모 일간지에 게시된 쇼핑센터 분양광고

현장을 찾아보니 시설물 공사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설물 공사가 한창 진행주인 쇼피센터

제주항 여객 터미널 길목에 위치한 쇼핑센터 부지는 광고가 내세우는 그대로 빼어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이런 입지조건에 위치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일제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지점으로 하여금 ‘무수주정 제주공장’이라는 동양 최대 규모의 주정공장을 건립하여 제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설탕·강냉이 등을 가지고 주정, 즉 알코올을 제조하여 이를 군사용 비행기의 연료로 보급하였다. 이때부터 제주 지역 농가에서는 얇게 썰어 볕에 말린 절간(切干) 고구마(일명 ‘빼떼기’) 생산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해방 후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은 미군정에서 신한 공사(新韓公社)를 통해 접수하여 계속 관리하다가 1946년 3월 신한 공사가 해체된 이후 미군정청 상공부로 이관되었다. 당시 무수 주정 제주 공장에 보관된 절간 고구마를 배급하여 도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장에 있던 발전기를 이용하여 전력도 보급하였다.

유족들이 세운 표석. 주정공장 터임을 알리는 유일한 표석이다.

1948년 제주 4·3 사건이 발발하자 군부대는 주정 공장을 접수하여 처음에는 무기를 제조하는 조병창(造兵敞) 시설로 이용하였다. 제주 4·3 사건 발발 이후 수용소로는 농업 학교 천막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1948년 가을 초토화 작전이 전개된 이후에는 농업 학교 천막만으로는 수용소 시설이 부족하였다.

4.3유적지이자 공유재산임을 알리는 표석

이에 따라 1948년 겨울부터 고구마를 저장하던 무수 주정 제주 공장 언덕 위의 10여 개 창고를 수용소로 쓰기 시작하였다. 시설이 대규모이다보니 나중에는 제주 지역 내 최대의 수용소가 되었으며, 특히 1949년 봄부터는 수용소하면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을 가리킬 정도였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매입한 주정공장 터 일부.

사건의 마무리 작전으로 토벌과 함께 선무 공작을 전개하여 비행기가 섬 전체를 돌며 귀순 권고 삐라를 뿌렸는데, 죄가 없어도 걸리면 무조건 죽던 시절과는 달리 산에서 내려가도 죽지 않는다는 말이 돌았다.

이때부터 하산자가 급격히 늘어나 한 달 만에 수감자는 1,500여 명으로 늘어났으며 1949년 4월 12일 상황 보고에는 포로가 3,600여 명으로 조사되었다. 포로들 중 대다수는 중산간 마을의 비무장 주민들로 무차별 학살이 무서워 산으로 도망갔던 죄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의 고구마 창고가 필요했던 건 이 때문이었다.

1951년 1월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은 이종열에게 불하된 이후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다가 1973년 1월 천마 물산이 인수하여 진로 주조에 임대하였지만 오폐수 처리에 따른 과다한 비용 및 원료 구입 문제 때문에 조업이 자주 중단되었다.

결국 1983년 조업이 완전히 중단됨에 따라 1989년 5월 12일 공장의 상징인 굴뚝이 해체되었다. 천마물산은 1993년 공장 대지에 3,293㎡ 규모의 창고를 건립하였으며 고구마 저장 창고가 있던 부지에는 아파트 8동을 건립하였고, 언덕 아래에는 천마주유소를 건립 운영해 왔다.

주정공장 터 일부는 우근민 도지사 시절에 제주도에 의해 매입(2011년도)되어 해마다 4.3 행불자 진혼제가 열리고 있으며, 4.3역사유적으로 공원화하기로 했으나 국비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몇 년째 공터로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엣 주정공장 터 공원화 사업 등 4.3유적지 재정비 사업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이유를 묻자  "국비 확보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사업이 미뤄지고 있다"면서 "내년도 국비 확보를 위해서 중앙정부와 절충에 나서고 있다"는 제주자치도 관계자의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제주 근대사의 아픔이 스며있는 옛 주정공장 터에 쇼핑센터가 들어선다는 분양광고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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