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오늘날 제주의 상징이며 삼다 중 하나인 ‘바람’은 천변만화하는 기후현상에 속한다. 지난 회까지는 돌을 테마로 제주의 신화와 전설을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바람으로 대표되는 기후현상을 테마로 삼아 제주의 옛 이야기 속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천상에서 태어난 고귀한 존재였지만 하늘 아래 세상을 그리워해 스스로 지상에 강림한 신이 있었다. 그는 삼위태백으로 내려올 때 3천여 명에 이르는 하늘의 선인(仙人)을 이끌었고, 그들 속에는 풍백, 우사, 운사가 섞여 있었다. 그렇게 지상에 강림한 환웅은 웅녀와의 혼인을 통해 우리나라의 건국시조 단군을 낳았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신화다. 서두부터 결말까지 누구나 잘 아는 이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꺼내는 이유는 환웅과 함께 한 세 신 때문이다. 하필이면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대동했는가가 오늘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수렵, 목축, 농경, 어로로 삶을 이어가던 옛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후현상은 밤낮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시간의 순환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이 중 시간의 순환은 반복적인 규칙성을 지니고 있어서 천기를 읽어 세시(歲時)를 고안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후현상은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있는지 모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예상할 수 없는 불규칙성을 지니고 있어서 초자연적인 존재가 지배하는 것으로 여겨 왔다. 그 때문에 세계 도처의 최고신들은 공통적으로 시간의 창조주이면서 기후를 조절하는 권능의 소유자로 신봉되어왔다.

힌두신화 속 인드라의 뇌전 바즈라-출처 letscc.net

인도의 힌두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왕 제석천 인드라의 바즈라, 올림푸스의 지배자 제우스가 손아귀에 쥐고 있는 케라우노스, 북유럽신화 속의 영웅신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보자. 최고신의 권능을 상징하는 이 무기들의 공통점은 천둥과 번개를 일으켜 벼락을 내리치는 도구라는 점이다. 여러 가지 기후현상 중에서도 번개가 최고신의 상징이 된 건 아무래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벼락이 일으키는 공포가 무엇보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제우스의 뇌전 케라우노스-출처 letscc.net

최고신들이 언제든지 벼락을 내리칠 기세로 움켜쥐고 있는 무기인 뇌전(雷電)은 인류의 종교사에서 신이 사람을 닮은 ‘인간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되기 이전 단계의 ‘동물신’이나 중간단계인 반인반수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유럽의 지붕 알프스의 산자락에 무려 4만 점에 이르는 암각화가 있어 세계적인 명소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몽베고 지역에는 황소 신인 ‘베(be)’의 머리가 그려진 바위가 있다. 당연히 동물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그림이다. 이 바위그림의 주인공인 베의 얼굴 속에는 주술사로 보이는 사람이 다리를 벌리고 곧추 서서 양팔을 하늘을 향해 뻗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흥미롭게도 그 주술사의 신체는 그림 속에서 황소 신 베의 이목구비 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주술사와 황소 신이 하나가 된 신들린 상태의 모습일 수 있다. 황소 신의 뿔은 주술사의 손에 잡힌 도구로도 보인다.

프랑스 몽베고산의 암각화 中 황소신 Be의 모습

이 도구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은 농경민의 입장에서는 괭이일 수도 있고, 수렵민의 입장에서는 창이나 칼일 수도 있다며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두 가지 해석은 모두 풍요와 결실을 바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양쪽 모두 설득력이 충분히 있는 해석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서 천공을 향해 두 팔을 길게 뻗어 황소 신의 뿔을 잡은 주술사의 행위를 비, 바람, 번개 따위를 일으키는 뇌전(雷電)으로 보면 어떨까? 이처럼 이 그림을 신과 하나가 된 주술사가 풍요의 비바람을 일으키는 의식의 장면으로 보는 것 또한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제주시 용담동 내왓당 무신도 中 제석천왕마누라

그렇다면 제주신화 속에는 기후를 조절하는 존재가 없을까? 없을 리 만무하다. 1만8천에 이른다는 제주의 신들 중 최고신인 천지왕에게도 당연히 그와 같은 권능이 있다. 천지왕본풀이에 천상의 신인 하늘옥황 천지왕이 지상의 여신인 바구왕 총맹부인과 혼인하기 위해 지상으로 하강했다고 전해온다. 정성을 다해 천지왕을 대접하려고 했던 총맹부인은 지상 최고의 거부 수명장자에게서 귀한 쌀을 얻어다 밥을 짓는다. 그러나 악독한 구두쇠로 소문난 수명장자가 빌려준 쌀에는 모레가 잔뜩 섞여 있었다. 모레 섞인 밥을 씹어 분기탱천한 천지왕은 수명장자의 악행을 낫낫이 살펴본 뒤 징벌을 내린다. 천지왕이 내린 징벌 중 하나가 베락ᄉᆞ제, 화덕진군으로 하여금 불벼락을 내리친 것이다. 천둥과 번개의 신이 천지왕의 부하라는 점은 환웅을 보좌해 지상으로 함께 하강한 풍백, 우사, 운사가 자연히 겹쳐진다. 이렇게 신 중의 신은 천기를 조정하는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되는 대목이다.

소별왕이 좌정한 제주시 오등동 본향 오드싱당

어디 천지왕만 그런 권능을 지녔겠는가. 그의 쌍둥이 아들인 대별왕또와 소별왕또도 마찬가지다. 두 형제가 이승과 저승을 놓고 서로 마음에 드는 곳을 차지하기 위해 벌였던 경쟁 중 한 장면을 보라. 태초에 하늘과 땅을 갈라놓은 거인 도수문장이 청의동자 반고씨의 네 눈동자를 뽑아 해와 달을 두 개씩 만들어버린 바람에 지상의 뭇 생명들은 밤이면 추워 죽고 낮이면 더워 죽기 일쑤였다. 천지왕이 두 아들에게 이것을 해결하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라고 말하자 대별왕또가 천 근 활 백 근 살을 들어 해와 달을 한 개씩 맞춰 떨어뜨리자 세상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이 장면을 일러 연구자들은 ‘일월조정’이라고 하는데 우주의 순행원리를 확립했다는 점이 으뜸이지만 추위와 더위를 조절했다는 점에서 대별왕또와 소별왕또에게도 기후 조절의 권능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기후현상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신들을 향한 사람들의 기원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최고신을 향한 의식은 최고의 인간들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된 권한이었다. 만인지상인 최고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왕이다.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렸던 환웅의 아들 단군왕검, 단군이라는 이름도 무당을 뜻하는 ‘단골’에서 유래한 것처럼 과거의 왕은 제사장을 겸하던 ‘무당왕 (Shaman king)’이었다. 환웅이 지상에 강림할 때 환인에게서 하사 받은 ‘천부인(天符印)’ 삼보(三寶) 또한 왕권의 상징인 동시에 천기를 조정하는 신권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따금 TV사극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임금이 그 원인을 대해 자신의 부덕 때문이라며 자책하는 장면을 종종 연출하는 이유도 이 같은 샤먼킹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왕이 하늘에 기원하는 의식 중에 기후와 관련한 것으로 ‘기우제(祈雨祭), 기청제(祈晴祭), 기설제(祈雪祭)’가 있었다. 사람의 생존과 생업에 없어서는 안 될 물에 대한 의례인 탓에 기우제는 왕이 중심이 된 국가의 의식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많이 행하던 것이었다. 나라의 기우제를 보면 삼국사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시조의 능과 명산대천에 기우제를 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시대에는 무당을 불러들인 뒤 흙으로 용을 만들고 비가 내리도록 비는 취무도우(聚巫禱雨)의 의식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국행기우제(國行祈雨祭)라고 하여 12제차나 되는 복잡한 의식이 정기적으로 치렀다고 한다. ‘영제(禜祭)’라고도 불렸던 기청제(祈晴祭)는 고려에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던 의례로 장마가 가을까지 계속되거나 궂은 날씨가 이어질 때 날이 개이기를 바라며 치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기설제(祈雪祭)는 눈이 내리기를 기원하며 치르던 의식이다. 눈이 와야 할 시기에 눈이 오지 않으면 이를 천재(天災)로 여겨 음력 11월과 12월에 기설제를 치렀다고 한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많은 임금들이 기설제를 지냈던 것을 알 수 있다.

임금이 집전하거나 주관하는 기후의례가 있는 것처럼 왕도와 떨어진 지방관아에서도 수령이 거행하는 의식이 있었다. 조선시대 제주목에서 치르던 의식을 간추리면 사직대제(社稷大祭), 석전제(釋尊祭), 한라산제(漢拏山祭), 둑제(纛祭), 풍운뇌우제(風雲雷雨祭), 성황발고제(城隍發告祭), 여제(厲祭)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풍운뇌우제가 기후의례에 해당된다.

임금이 직접 모시던 풍운뇌우산천성황단(風雲雷雨山川城隍壇)과 비슷했던 제주의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과 풍운뇌우제(風雲雷雨祭)는 국가의 의례규칙을 집대성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예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임금 외에는 누구도 지낼 수 없는 의식인데 유독 제주에서만은 공공연히 치제(致祭)되고 있어서 이형상 목사 재임시절에 철폐된 바 있다. ‘절 오백 당 오백 불천수’로 제주섬 곳곳에 이름을 떨친 그인데 자신이 직접 봉행해야할 의식 중에 풍운뇌우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참을 수 있었을까? 더욱이 그의 눈에 비친 제주의 풍운뇌우제는 무속의 신을 섬기는 음사(淫祀)와 별반 다를 바 없었을 테니 충절의 마음을 다해 상소를 올려 뜻을 관철시켰으리라. 이형상이 제주목사 시절에 만들었다는 탐라순력도의 건포배은(巾浦排恩)을 다시 한 번 보시라. 제주섬 곳곳에 타오르는 불길, 불타는 신당(神堂)을 병풍 삼아 북녘의 임금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그의 위업 속에 감춰진 천여 년을 이어온 풍운뇌우단의 잿더미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제주가 어떤 섬이던가. ‘풍재(風災), 수재(水災), 한재(旱災)’의 삼재(三災)가 끊이지 않는 곳인데 막는다고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제아무리 이형상이라고 해도 영원히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가 불태워 없앤 신당들이 다시 제 모습을 찾은 것처럼 풍운뇌우제는 채 삼십 년도 지나지 않아 복원되기에 이른다. 숙종실록에 따르면 숙종 45년 제주목사 정동후는 이런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본도에 본래 풍우뇌우단이 있어 천여 년 동안 경건하게 받들어 왔습니다. 임오년에 이형상이 주현관(州縣官)의 본분으로서는 감히 하지 못할 일이라며 장계를 올려서 철폐한 바 있습니다. 그 뒤로 기후가 고르지 못하고 재해가 끊이지 않았으니, 만일 옛날과 같이 다시 풍우뇌우단을 마련하고, 한라산신제의 예법을 따라 향과 축문을 내려주시면 본분에 감히 하지 못할 일을 한다는 혐의도 없을 것이며, 아울러 백성들의 의혹도 풀리게 될 것입니다.”

천재지변의 원인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며 하늘제사를 지내 풍운뇌우의 신께 반성의 기도를 올렸을 신성이 지배하던 시대가 있었다. 적어도 그 시대에는 천변만화하는 자연계의 기후현상에 대한 두려움보다 천재(天災)로 말미암아 구휼을 호소하던 백성들의 애원성이 더욱 두려웠던 임금이나 목민관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을 보라. 다리가 무너지고, 빌딩이 쓰러지고, 배가 침몰하는 인재(人災)가 끊임없이 반복되어도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 한 마디로 끝내는 위정자들이 있다. 선거철이면 하늘제사를 올렸던 옛 임금들의 지극한 정성보다 더욱 깊은 애정으로 시민을 대하던 인사가 여의도에 입성만하면 돌연 딴사람이 되고 만다. 나라 안에서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나라 밖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21세기 세계의 정치인들이다. 이들과 유착해 지구의 살과 피를 오염시키는 기업가와 그들의 공장뿐인 세상이다. 생각할수록 넌더리가 난다. 마음 같아선 풍운뇌우단을 다시 세우고 하늘의 신께 하루 빨리 멸망으로 이끌어달라고 재촉하고 싶어진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이상복, [이상복 박사의 바위그림 이야기]설산에 그려진 바위그림 종교적 신성 간직, 경상일보, 2009.07.28

정재서·전수용·송기정,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조성윤, 19세기 濟州島의 國家儀禮, 탐라문화16,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최종성, 기우제등록과 기후의례, 서울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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