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3일

-2016년 7월 1일

 

강정해군기지 반대싸움이 시작된 후

9년 하고도 한 달 18일째의 날이다

 

언젠가 한때는

분노의 깃발이 울울창창 나부끼고

저항의 행렬이 거리를 가득 매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랜 투병에 효자 없듯이

오랜 투쟁에 사람들은 지쳐갔다

 

해군, 국방부, 경찰, 해경,

검찰, 법원, 언론, 국정원,

국회, 청와대, 재벌자본, 미국,

제주도정, 도의회, 우익세력, 마을 내 찬성파들까지

사면에 사면을 곱한 전방위 십육면초가(十六面楚歌)로

마을은 숨 막히고 짓눌린 채 결국 해군기지는 완공되었다

 

강정천은 체념의 한숨으로 힘없이 흐르고

구럼비 바위는 무기력의 눈물로 고개를 파묻고 있다

 

그러나 아직 여기 사람들이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지지 않는다고

투쟁일자를 하루하루 넘기며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도둑질 강도짓 기지건설 10년의 마지막 작전으로

34억원 구상권 어뢰를 마을에 터뜨리고

행정대집행 함포를 중덕 삼거리 식당과 망루에 발사해도

 

그러나 여기 여전히 사람들이 있다

강정대행진으로 제주섬 일주하며 평화의 창의를 알리고

그깟 벌금 구상권 몸으로 때우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싸움이 시작된 후

9년하고도 한 달 18일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3,333일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비록 저 육중하게 들어선 기지보다도 더욱 큰

눈물과 한숨, 무기력과 체념의 안타까운 나날들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절체절명의 신념이 있기에

절망 속에서도 오직 사력을 다한 희망이 있기에

그 신념이 널리 감염되고 그 희망이 모두를 전염시켜

 

언젠가 다시

분노의 깃발은 울울창창 나부끼고

저항의 행렬은 거리를 가득 매울 것이다

 

강정천은 희망의 완력으로 당차게 흐르고

구럼비 바위는 부활의 생명으로 당당하게 일어설 것이다

 

 

김경훈 시인

시인의 말

 

세계‘평화’의 섬, 제주‘평화’포럼, 제주4・3‘평화’공원. 이 세 가지 모두 평화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이들은 모두 진정한 평화를 담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그것은 ‘정의(正義)’를 비켜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주평화포럼의 명칭은 언제인가 슬그머니 평화를 떼고 ‘제주포럼’으로 바뀌었습니다. 제주도는 세계평화의 섬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엔 해군기지가 들어섰습니다. ‘죽은’ 평화를 담보로 하여 ‘살아있는’ 전쟁이 제주도를 위협합니다. ‘정의 없이 평화 없다!’ 이 슬로건이 평화의 핵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6년 7월 1일은 ‘참된’ 평화를 위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싸움이 3,333일이 되는 날입니다. 이 지난하고도 지극한 숫자 속에 당신의 평화는 함께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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