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절반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돼 있다. 그중 성폭력과 가정폭력 발생건수는 몇 년 째 인구수 대비 전국 최고다. 강력범죄 10건 중 8건 이상이 여성대상 범죄다.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고 있다.

더는 외면 않고 여성대상 범죄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고 있다. 당신의 이야기, 또는 당신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여성 인권이 불안에 떨고 각종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 제주의 현실. 제대로 봐야 할 때다.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왜’ 살아남는 일이 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주>

[제주투데이 13주년 창간기획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①<성폭력>]

[제주투데이 13주년 창간기획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②<가정폭력>]

*평화의 섬 타이틀에 가려진 ‘성폭력 위험지역 제주’

제주는 평화의 섬이 아니다. 적어도 여성에게는. 몇 년 전 WHO의 안전도시에 선정됐지만 과연 각종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제주여성의 삶을 비춰볼 때 앞뒤가 맞는 명함일까?

[제주지역 연도별 성폭력 발생건수, 2011~2015 (인구 10만명 당)] @제주투데이

매년 때마다 나오는 성폭력 통계에서 제주는 전국 1,2위에 이름을 올린다. 제주지역 성폭력 범죄건수는 259건(2011년), 285건(2012년), 495건(2013년), 370건(2014년), 437건(2015년)으로 최근 5년 사이 30%가 넘게 늘었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의 성폭력 발생건수는 이미 237건을 넘어섰다. 평균 1일 1건이 넘는 꼴이다.

성범죄자 증가율도 만만찮다. 지난해 9월 경찰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지역 성범죄자수는 137명(2013년)에서 336명(2015년 6월 기준)으로 245%나 늘었다.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이는 경찰이 주소지를 관리하는 일부 ‘성범죄자’에 대한 통계일 뿐이다.

성범죄가 가장 많이 접수된 법원도 제주지법이다.(2015. 사법연감) 성범죄 재범율 또한 6.89%로 전국에서 두 번째다.

[만13세 미만 아동 성범죄 발생 비율(2011~2015. 인구10만명당)] @제주투데이

아동-청소년 성범죄 발생비율 역시 전국 16개 시·도 중 제주가 가장 높다. 지난해 경찰청 공개 자료(2011년~2015년 8월까지의 아동·청소년 성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13세미만 아동대상 성범죄 발생비율은 제주가 인구 10만명 당 22.2건으로 전국 평균 10.21건보다 2배나 높다. 15세 이하 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비율도 제주가 28.91건(인구 10만명당)으로 전국 최고다.

[만15세 이하 청소년 성범죄 발생 비율(2011~2015. 인구10만명당)] @제주투데이

다수의 전문가들은 “성폭력 신고율은 전체 성폭력 피해자의 10%도 안 된다.”고 말한다. 성범죄의 특성상 ‘숨은 범죄’가 많다. 성범죄 통계는 모든 걸 드러내지 않는다. 앞서 나열한 통계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위험수위’는 이미 넘었다. 불안이 잠식한 제주.

전국 251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평가한 ‘성범죄 위험도’(한국형사정책연구원.2015)에서 제주는 ‘고위험군 지역’에 포함됐다. 전국 평균을 100으로 두고 수치가 높을수록 위험성이 높음을 의미하는 데, 강간위험도는 114.6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성범죄 위험도(113.4), 성추행 위험도(110.5)도 서울에 이어 전국 두 번째다.

제주사회가 이 같은 통계를 ‘오명’과 ‘불명예’로 애써 외면하는 사이, 제주여성들은 불안이 잠식된 사회에서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다.

시도별 범죄위험에 대한 안전인식(2014. 통계청 [사회조사])을 보면 제주지역 여성들의 약 70%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야간보행에 대한 안전인식에선 제주여성은 절반이 넘게 ‘두렵다’고 답했다.

성별로 범죄피해에 대한 두려움 정도를 살펴본 연구에선(2014. 제주도 여성·가족 실태조사-성폭력실태) ‘모든 항목에서 남성보다 최소 5배 이상’ 범죄피해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는 집단은 ‘평소 성폭행 피해를 입을까 두렵다’에 응답자 절반이 그렇다고 답했다.

*‘사후관리’에 초점 맞춘 정책... ‘성폭력 예방’은 뒷전.

성폭력 관련 정책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과거 성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바라봤던 사회인식이 조금씩 변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해 늘어나는 성폭력 범죄건수는 해당 정책들의 ‘실효성’을 묻게 한다.

2011년 제주도는 ‘여성폭력 방지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지원의 대부분은 ‘사후관리시설’로 성폭력 방지를 위한 ‘예방’은 정책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은 <제주지역 여성폭력 통합적 대응시스템 구축방안. 2015>에서 “제주도의 여성폭력방지정책은 폭력 피해자 지원 서비스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피해자 지원은 물론, 초기대응과 가해자 처벌, 예방교육의 내실화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고명희 대표(제주여성인권연대)는 “성폭력을 인지하는 피해 인식 범위는 넓어진 반면, 가해자의 인식 범위는 여전히 좁다. 따라서 성폭력 예방교육 등이 활성화 돼야 하지만 현재 공무원 등 특정 직업군만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대상자’로 포함돼 있어 사회 인식의 변화를 도모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그나마 시행되는 ‘예방교육’도 형식적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고 대표는 “소규모로 예방교육을 시행해야 그나마 효과가 있을 텐데, 공무원 등 의무대상자 교육은 집단으로 이뤄져 다소 형식적인 부분이 있다.”면서 “성폭력 예방교육 대상자가 '비의무대상(전국민)'으로도 확대(성폭력방지법 개정 2013.6)된만큼 다양한 대상을 상대로 보다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예방교육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술한 ‘피해자 지원’... 촘촘한 안전망의 부재.

성폭력 피해자들이 처음 문을 두드리는 곳은 경찰 등 사법기관 또는 1366과 같은 상담시설 등이다. 그러나 제주지역 전체 성폭력 피해자의 약 8.8%만 경찰에 신고하고, 피해자 지원시설 이용률도 7.0%에 불과했다.(2014. 제주도 여성·가족실태조사-성폭력 실태)

신고율·피해지원 시설 이용률이 이처럼 낮은 데는 관련 기관과 정책에 대한 홍보가 덜 됐기 때문이라는 평이 많다.

고명희 대표(제주여성인권연대)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체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피해자 이용률은 낮다.”면서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이런 정책, 이런 시설들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한다. 제주도가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정책과 시설들을 도민들이 일상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은 <제주도 여성가족 실태조사. 2014>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거나, 관련기관의 존재를 몰라서 공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 응답자가 상당수다. 성폭력 지원기관이 존재하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지원 체계]@성범죄 알림e 자료

*속 빈 여성범죄 대책 “체계적 매뉴얼부터”

얼마 전 신안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섬에 여교사를 배치하는 것을 자제하겠다고 하면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왔다. 성폭행 사건을 ‘환경적 요인’으로만 분석, 여성의 활동 범위를 제약하는 차원의 대책은 여성 성범죄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달 9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권미혁, 정춘숙, 표창원 의원들은 국회의원회관에서 “정부의 여성대상 범죄 종합대책이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여성대상 범죄는 성별 권력관계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에서 기인하는 것. 따라서 정부가 세운 여성 대상 범죄 종합대책의 1순위로 환경개선을 배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교양학부)는 ‘여성·평화·안전을 말하다’ 심포지엄에서(2015.10) “무조건 여성을 범죄의 피해자로 보기보다는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의 추세와 원인을 모색하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며 “가부장적 권력의 불평등 속에서 사회인식의 개선 및 강력한 법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사회 안전망을 갖추기 위한 장기적 전망과 종합적인 계획이 수립돼야 하지만 제주도는 예방은 뒷전, 사후관리도 ‘실효성’이 지적돼고 있다.

현재 제주는 여성폭력 신고접수부터 피해자 보호까지 지원되는 ‘여성폭력 HOT_LINE 대응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민관 합동으로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서비스인데 말은 ‘통합’이지만 현장의 기능이 '통폐합' 됐을 뿐 실속은 없다는 지적이다.

고명희 대표(제주인권연대)는 “피해자 지원에 대한 체계적인 매뉴얼이 없다. 시스템은 있다고 하지만 실제 피해자 이용 사례가 적다는 것은, 홍보가 부족할 뿐 아니라 지원체계가 하나의 방식으로 ‘통합’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제주지역 여성 성폭력을 예방하고 줄이기 위해서는 보다 촘촘한 사회의 안전망과 체계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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