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절반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돼 있다. 그중 성폭력과 가정폭력 발생건수는 몇 년 째 인구수 대비 전국 최고다. 강력범죄 10건 중 8건 이상이 여성대상 범죄다.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고 있다.

더는 외면 않고 여성대상 범죄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고 있다. 당신의 이야기, 또는 당신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여성 인권이 불안에 떨고 각종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 제주의 현실. 제대로 봐야 할 때다.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왜’ 살아남는 일이 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주>

[제주투데이 13주년 창간기획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①<성폭력>]

[제주투데이 13주년 창간기획 "제주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②<가정폭력>]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가정폭력’

지난달 4일 제주시 연동에서 사실혼 관계였던 동거남이 동거녀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제주서부경찰서는 동거남이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행사해왔지만 피해여성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제때 구조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가정폭력’. 공공연한 비밀처럼 우리 사회 깊숙이 퍼져있는 가정폭력의 그늘은 이제 ‘사회적 범죄’로까지 퍼지고 있다. 가정 내 문제로만 바라봤던 인식이 조금 달라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고립돼 있고, 여전히 위험하다.

제주지역 가정폭력 발생건수(2011~2015년) @ 제주투데이

지난 11일 제주도와 제주지방경찰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제주지역 가정폭력 발생건수는 800건으로 2014년 299건보다 2.7배나 증가했다. 2011년 58건과 비교하면 5년 사이 10배가 넘게 증가한 수치다.

경찰은 지난해 2월 가정폭력전담반이 신설돼 건수가 늘었다고 원인을 분석했지만 신고까지 이어지는 가정폭력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히 넘길 통계는 아니다. 실제 가정폭력전담반이 신설되기 전 2013년도 가정폭력발생건수는 320건으로 2011년(58건) 대비 5.5배나 늘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의 특성으로 ‘은폐성’을 꼽는다. 사회에서 발생되는 다른 폭력과 달리 가정내 폭력은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묵인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고명희 대표(제주여성인권연대)는 “가정폭력은 그 특성 때문에 더욱 다루기 어려운 문제. 가정 내 범죄가 사회적 범죄로 인식되는 전환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정안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 피해자는 대를 잇는 ‘고통’

제주도 가정폭력사범 접수건수 및 처리현황(2013~2015. 대검찰청 내부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접수건수는 1만7191건(2013년), 2만3527건(2014년), 4만2492건(2015년)이었지만 이중 재판까지 이어진 ‘기소’처리는 10% 정도다.

가정폭력 가해자 검거인원은 128명(2010년), 56명(2011년), 101명(2012년), 325명(2013년)이지만 이중 구속조치는 0건(2010년), 1건(2011년), 3건(2012년), 7건(2013년)이었다.

가정보호의견송치도 1건(2010년), 0건(2011년), 1건(2012년), 28건(2013년)으로 실제 가정폭력 발생건수에 비해 법적 처벌 건수는 크게 낮다. (2011~2013. 제주지방경찰청 자료)

제주지역 가정폭력 검거 및 조치현황(2011~2013) @제주투데이

가정폭력을 신고하더라도 대부분 불기소 됐고 ‘가정보호사건’으로 넘어갔다. 대게 가정보호사건 처분은 가해자의 폭력성행을 ‘교정’하는 것이지 ‘처벌’은 아니다.

반면 피해자들은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시달린다. 특히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적 피해’는 피해자들의 삶을 서서히 피폐화 한다. 그들이 겪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장애를 Walker(1979)는 ‘매맞는 여성 증후군’으로 이름 지었다.

가정폭력을 ‘사회적 범죄’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폭력이 대물림 되는 사례가 늘어난 데도 이유가 있다. 폭력의 대물림, 폭력의 재생산으로 가정폭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커졌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사람이 다시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비율이 53%(남성), 64.4%(여성)로 나타났다. 강력범죄 수형자 중에서는 성범죄자의 63.9%, 살인범의 60%가 가정폭력 경험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부족한 자립지원 정책... 다시 매 맞는 집으로.

주부 A씨는 아이를 낳고 돌이 되기 전에 집을 나왔다. 결혼 초반부터 손찌검으로 시작해 집안 물건을 부수고 던지는 남편의 폭력은 심해졌고 아이가 태어나자 자신에게 향했던 폭력이 아이에게로 향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아이를 업고 나온 세상은, 막막해도 너무 막막했다. 지원시설을 찾았지만 아이가 자랄 때까지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란 어린 아이를 둔 엄마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죽기보다 싫지만 다시 매 맞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방법밖에 보이질 않는다.

APAV 인권단체의 가정폭력 포스터

제주지역 가정폭력 피해자의 보호시설 입소율이 낮아지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보호시설에 들어가서는 직장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호시설은 가해자의 재폭력을 막기 위해 철저히 ‘비공개’로 운영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때문에 가정폭력에 시달린 피해자는 ‘일시적’으로 보호시설로 들어왔다가 경제적 자립을 이유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폭력은 다시 반복되고, 보호시설은 ‘임시’ 보호시설의 기능에 멈춘다. 경제적 자립이 가정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 중 하나인데,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 적용으로 사실상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시설 입소를 꺼린다.

현재 제주도는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피해자를 위한 상담소와 보호시설 등을 운영 중이다. 상담소는 제주시 2곳, 서귀포시 2곳이고 보호시설은 총 3곳으로 서귀포시는 ‘모자보호시설’ 1곳이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이중 자립과 자활을 위한 지원은 극히 미약한 수준이다.

때문에 직장유무별 비공개 보호시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또한 제주도의 가정폭력 피해자 자립지원 정책이 여성가족부의 정책과 다르지 않아 ‘지역 실정에 맞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온다. 제주의 산업구조 특성상 저임금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일반여성이 혼자 벌어 자녀를 부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은 <제주도 여성·가족 실태조사(2014)>에서 “소득과 주택소유여부와 관계없이 보호시설 외 임시거주지를 신청할 경우 피해자보호를 위해 도에서 우선적으로 한정된 기간 동안 지원해 주는 ‘긴급주거비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또 가해자에 대한 사법처리 강화와 가정폭력 예방교육의 확대, 피해자 비밀보장 강화, 통합 시스템 구축 및 지원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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