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무성영화의 ‘변사’가 떴다. 스크린과 관객을 이으며 많게는 40명의 목소리로 쉬지 않고 극을 펼치는 변사. 이 시대 마지막 변사인 최영준(63)씨가 공연을 위해 제주를 찾았다. 5일 그를 만났다.

“왜 변사를 하냐고요? 제가 재미있어서 하지요.”

1인 40역까지도 소화를 한다. 영상에 맞춰 관객의 마음을 줄타기 하며 때론 애달픈 목소리로, 때론 간드러진 목소리로. 연출과 극본, 제작까지 오롯이 그의 땀으로 만들어낸 무성영화 변사 극으로 그는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이어왔다. 

본래 연극인이었지만 1970년대 초반,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변사였던 故 신출 씨의 극을 보면서 “이거다!” 싶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성영화를 왜 하느냐 질문도 많이 받았지요. 그건 안 본 사람들 얘깁니다. 무성영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세요?”

무성영화와 변사, 그 매력에 푹 빠진 그는 100번을 넘게 연습에 연습을 더했다. 이수일과 심순애를 각색해 극을 올리고 우리나라 마지막 무성영화인 ‘검사와 여선생’도 부활시켰다. 해도 해도 재미있어서, 젊은 시절 열정을 그렇게 고스란히 받칠 수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혼자 하는 맛’이 있어서 극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작은 공간이면 그 공간에 맞게, 조금 부족하더라도 ‘변사’ 한 사람의 연기로 관객들과 호흡하며 스토리가 채워지는 무성영화의 재미. 옛 마당놀이처럼 같이 놀고 즐기는 것과 다름없다. 살아있는 영화인 셈이다.

“차원을 넘나드는 극이지요. 1947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가 변사를 만나 연출되면, 더는 과거의 영화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영화가 되는 겁니다.”

이 시대 마지막 변사 최영준씨. 예순을 넘겼지만 음악에 라디오 DJ에 연출가에 그는 8개 직업을 갖고 있다. 뭐든 재미있고 해보고 싶은 건 모두 해봐야 해서다.

그날 날씨에 따라, 상황에 따라, 관객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변사의 연기. 많은 연습과 오랜 공연의 내공이 뒷받침 돼야 가능한 극이다. 가끔, 변사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지만 ‘100번 이상 연습할 수 있느냐’는 각오를 묻는 질문에 선뜻 나서는 이들은 없다고 한다. 고된 일이기도 하고, 이제는 ‘변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이 변사에 관심이 없지요. 최근에는 이렇게 여러 지역에서 불러줘서 공연을 다니지만 항상 그렇진 않았거든요.”

공연 자리를 일부러 만들어하진 않았다. 찾아주는 곳이 있으면 가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예술은 배고픈 것. 힘들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그 철학을 믿어서다. 근성이 생긴 그는, 애타게 변사를 지켜야 한다고 그 역사를 봐달라고 외치진 않는다. 다만, 그 재미와 매력에 스스로 푹 빠져 살 뿐이다.

“웃기는 변사도 있고, 슬픈 변사도 있습니다. 하나의 극 안에서 웃겼다가 눈물짓게 만들기도 하지요. 그런 변사의 놀음을 보는 재미에 관객들은 즐거워하는 겁니다. 그 즐거움이 이어지면, 자연히 무성영화 변사 극을 찾게 되겠지요.”

1986년 최 변사가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한 '이수일과 심순애'. 감독은 코미디언 전유성이 맡았다. 최 변사는 이 작품으로 처음 변사 극을 시작했다.

그의 변사 극 ‘이수일과 심순애’를 제주에서도 볼 수 있다. (사)제주영상위원회는 ‘찾아가는 영화관’ 사업으로 밤마실 극장을 마련하는 데 5일 오후 8시 한림 3리 사무소 앞마당을 시작으로 6일(판포리 해거름 전망대, 8시), 7일(선흘리 동백동산, 8시)에 각각 최 변사의 공연을 진행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내달 3일과 4일에도 서귀 중앙초등학교와 서귀포 법화사에서 만날 수 있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