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허먼 멜빌은 그의 소설 ‘모비딕’에서 거대한 유령 같은 흰 고래를 추적하는 에이헤브의 선원 이스마엘이 되어 피쿼드호에 몸을 실었다. 이스마엘로 변신해 당대의 고래학과 포경업에 대한 방대한 저술을 남긴 그의 소설 모비딕의 한 구절은 제주의 본풀이와 굿을 헤아릴 때마다 나도 몰래 문뜩문뜩 떠올라 방향타 노릇을 톡톡히 해준다. 그는 소설 속에서 고래의 생태적 특징을 설명하면서 이런 문장을 남겼다. “고래에게 있어 본능은 신이 내린 지성이다.” 이 구절이 떠오를 때마다 인간이 발명해낸 수많은 문명의 산물 중에 신화야말로 가장 위대한 작품이며, 멜빌이 말하는 본능처럼 신이 내린 지성이라는 생각을 단단히 굳히곤 한다.

신화는 본능적이다. 신화를 담아내는 그릇인 의례 또한 본능적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본능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을 상상하게 했고, 실상과 상상의 경계에 신화의 나무를 심어놓은 것이라 여겨진다.

실상의 부족함은 상상을 통해 채워진다. 현실의 부족함과 어려움을 채워주는 상상의 시공간, 신화와 의례는 현실 너머 어딘가에 있을 이계(異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유토피아나 파라다이스처럼 천국 같은 공간이 있는가 하면 무저갱의 나락이나 지옥도 있다. 제주토박이들의 상상 속에도 천국과 지옥을 닮은 곳이 넘쳐난다.

제주는 섬이다. 바다로 에워싸인 섬이기에 제주토박이들의 이계(異界)는 주로 바다 건너 어딘가에 있다. ‘강남천자국’이라 하여 오늘날의 중국이 아니며, ‘일본주년국’이라고 해서 현실의 일본이 아니다. 제주의 옛이야기 속의 시공간 그것이 ‘개성 송악산 금모래왓’이 되었건 ‘서울 남산 먹자골’이 되었건 인간의 세상이 아닌 상상의 공간이다. 바다 건너 어딘가에 있다는 신들의 땅이다. 제주사람들에게 바다는 신들의 땅을 이어주는 중간계이며, 한편으론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이계인 ‘동이용궁’이거나 ‘요왕수정국’이다.

굳이 지리학적 지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섬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안다. 섬이 바다를 통해 세상과 만난다는 사실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것이 바다를 건너왔기에 제주토박이들은 바다를 숭배했다. 더욱이 바다는 바람을 낳아 풍요의 순풍을 보내거나, 고난의 폭풍을 보낸다. ‘샛ᄇᆞ름, 갈ᄇᆞ름, 마ᄑᆞ름, 하늬ᄇᆞ름, 궁근새, 지름새, 겁선새, 건들마, 산두새, 도깽이주제, 노대ᄇᆞ름, 강쳉이, 멩지바람, ᄂᆞᄅᆞᆺ’ 등 수많은 바람을 보시라. 이 모든 풍운조화의 근원이 바다에서 솟아나 제주섬을 향하는 것이다.

바람을 낳는 곳이 바다이기에 제주의 신들은 물결의 이랑을 거슬러 머나먼 요왕수정국을 찾아가 신성을 얻어온다. ‘할로영주산 상상고고리 섯어깨’에서 솟아난 신들도 무쉐석함에 실려 용궁을 다녀오고, 강남천자국이나 서울 남산에서 솟아난 신들도 용궁을 거쳐 제주로 들어온다. 세화리본향당의 ‘백줏또’, 김녕리 궤네깃당의 ‘궤네깃또’, 용담동 내왓당의 ‘천잣또마누라’ 등 수많은 신들이 용궁에서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신비한 보물을 얻어 제주섬의 신으로 좌정했다. 어린 ᄌᆞᆷ수의 희생으로 천연두의 신 ‘호구대별상서신국마누라’를 물리쳤다는 전설 ‘산호해녀’의 신비한 무기 ‘산호수’ 또한 용궁에서 비롯된 보물이었다. 이렇게 제주의 바다는 용궁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신들에게 권능을 내려 섬사람들을 보살펴 주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용궁을 이를 때 ‘동이용궁’이라 하여 동해 어딘가에 용왕의 수정궁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영등굿이나 ᄌᆞᆷ수굿에서 펼쳐지는 요왕맞이를 할 때면 심방들은 으레 ‘동이청요왕, 서이백요왕, 남이적요왕, 북이흑요왕, 중앙황신요왕’이라고 노래하거나 ‘ᄉᆞ해용신’이라고 이르며 용왕이 여럿이라고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 속에서는 줄곧 ‘동이용궁’이라고 밝히는 이유는 뭘까?

제주굿의 기메 中요왕차사기

동서남북과 중앙을 일러 오방이라고 부르며 오행과 오상 등의 오행론을 만들어낸 것은 제주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이다. 특히 중앙을 황제 또는 황룡의 성역으로 여겨 가장 으뜸으로 꼽았으며 한 나라의 임금도 중앙을 뜻하는 황색을 자신의 상징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왜 이런 전통적인 사유체계 속의 중앙과 어긋나는 ‘동이용궁’이 신화의 단골손님이 된 것일까?

동이용궁의 수수께끼는 오행론의 사유체계가 제주에 전해지기 이전의 신화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동서남북이라는 한자어가 즐겨 입말로 잡기 전에는 ‘새노마한’ 또는 ‘새하마노’라는 말을 썼었다고 한다. 새하마노의 ‘새’는 동풍을 의미하는 샛바람의 ‘새’다. 서풍을 뜻하는 ‘하늬바람’의 ‘하’, 남풍을 뜻하는 ‘마파람’의 ‘마’, 북풍을 뜻하는 ‘높새바람’의 ‘노이 우리 조상들이 방위의 명칭으로 사용했던 단어이다. 여기에 동이용궁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동쪽을 ‘새’라고 불렀던 이유는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난 방위이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아침이면 해가 뜨는 방향이 어디인가. 동쪽은 그렇게 해를 낳고 시간을 창조하는 생명력을 품은 방위이기 때문에 ‘새’라고 불렸던 것이다. 아마도 제주의 동이용궁은 나날이 새로운 창조를 연출하는 해의 본향을 상상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말하자면 해와 바람을 낳는 곳이 제주의 동이용궁인 셈이다.

제주도 북동부 신앙권의 본향으로 불리는 송당리본향당의 금백조와 소로소천국 사이에서 태어난 ‘밥도 장군 떡도 장군 궤네깃또’는 두 이레 열나흘 동안 잦아들지 않는 ‘두샛ᄇᆞ름’을 일으켜 마을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그토록 엄청난 권능을 갖게 된 연유도 동해용왕 막내딸의 남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주시 건입동 보향 칠머리당의 요왕기(당기)

동이용궁은 오랫동안 제주도 무속사회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아왔다. 심지어는 제주섬의 옛 나라 탐라의 개국신화에도 ‘동해 벽랑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고득종이 지은 ‘영주지(瀛洲誌)’ 등의 옛 문헌에는 바다로부터 들어온 삼공주와 그들의 사자가 자신들은 고량부 삼신인과 동해 벽랑국에서 왔다고 고하는 대목이 있다. 물론 다른 문헌에는 ‘일본국’이라고 소개되기도 하지만 이는 구전되는 신화를 유교적 관점에서 서술하면서 사실처럼 각색한 결과일 뿐이다. 아무튼 동해 벽랑국은 동이용궁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제주도 무속연구의 선구자 현용준은 바다를 뜻하는 옛말 ‘바랑’의 이두식 표기가 ‘벽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견해대로 벽랑이 바다로 해독된다면 그곳이 당연히 용궁이고, 동해라고 명기했으니 동이용궁으로 보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미지의 이상향 동이용궁의 찬란한 광채는 근래에 이르러 또 다른 이상향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바다에 의탁한 인생인 ᄌᆞᆷ수들만의 것으로 전락했다. 또 다른 이상향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전설 속의 이야기가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의 섬이 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어도’가 새로운 이상향이다.

제주시 건입동 본향 칠머리당 영등굿 中 요왕맞이

이어도에 대한 전설은 여러 가지이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음직한 제주의 파라다이스다. 오늘날 제주 남쪽 바다 먼 곳에 해양과학기지가 들어선 수중의 암초가 진짜 이어도일까? 낭만을 즐기고 상상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곳이 이어도라는 것을 애써 부인한다. 왜냐하면 이어도는 전설 속의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어도에 얽힌 사연은 오랫동안 전승된 제주의 전설이며 그 섬은 진짜 이상향일까?

이미 설문대할망설화를 다루면서 언급한 사실이지만 다시 복기하기로 한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설화라고 한다. 설화는 다시 ‘신화, 전설, 민담’으로 분류된다. 신화는 의례와 짝을 이뤄 종교의 경전 역할을 하는 이야기다. 신화 속의 주인공이 제 아무리 신출귀몰한 신이라고 해도 그를 향해 기도하는 의례가 없다면 그의 이야기는 전설로 분류된다. 전설은 자연현상과 자연물, 사물 등으로 이야기의 증거를 남긴다. 승천하지 못한 용마가 굳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의 증거로 용두암이 우뚝 솟아있다. 민담은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 전래동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입담 좋은 사람들이 신화와 전설을 개작하며 가공의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것이 민담이라는 말이다. 신화가 의례에서 분리되어 전설이 되었고, 전설은 다시 민담으로 이어졌다. 설화의 뿌리가 신화라는 말이다. 이렇게 설화의 분류와 발전양상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이어도담론이 지닌 문제를 파헤칠 수 있다.

신화가 전설의 원천이라면 제주의 본풀이가 이어도 전설을 낳았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어도에 대한 본풀이는 단 한 편도 없다. 그만큼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여리불도할망’, ‘여돗할망’ 등으로 불리는 당신(堂神)들의 이름 속 ‘여도’를 이어도라고 해석하지만 설득력이 전혀 없다. 차라리 불교와 연관지어 ‘여래불도’로 해석하는 쪽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

이어도전설은 이용호(李容鎬)의 시문집 ‘청용만고(聽舂漫稿)’에는 이여도(離汝島), 제주사람 강봉옥이 개벽(開闢)지에 발표한 글과 일본인 다카하시 도루의 “民謠에 나타난 濟州女性-‘이허도(離虛島)’전설”에서는 이허도(離虛島)로 소개되고 있다. 이 기록 자료들은 모두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모두 이어도를 노래와 연관 지어 소개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노래는 무엇일까? 제주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으쌰으쌰’라는 후렴구의 노래를 말하는 것일까? 아쉽게도 이 노래는 아니다. 이 노래는 1960년대 초반에 무용의 배경음악으로 쓰기 위해 누군가가 창작한 노래다. 물론 제주의 민요에는 비슷한 후렴구를 가진 노래들이 허다하다. ᄌᆞᆷ수들의 ‘네 젓는 소리’의 ‘이여도사나, 이여싸나’를 비롯해 ‘이여 이여 이여도 ᄀᆞ레’, ‘이여 이여 이여도 방에’, ‘어야도홍아 어야홍아’ 등 여러 가지다. 이렇게 비슷한 후렴구들은 별다른 뜻을 두고 않고 노래의 조음을 맞추는 여음구이다. 이여도, 이어도라고 한다고 해서 반드시 전설의 섬 이어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정든 사람과 이별한 섬, 죽어야만 갈 수 있는 저승의 이상향이라는 이야기가 노랫말에 결부되어 대중적으로 유포된 것도 20세기의 사정이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와 김능인의 가요 ‘이어도’를 비롯해 영화에서 수필에 이르기까지 이어도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20세기에 대대적으로 알려졌고, 현실 속의 수중암초 ‘소코트라 록’에 전설이 덧입혀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20세기 초반 이어도전설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배경에는 무서운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일본인 학자 다카하시 도루나 조선총독부의 입장에서는 이어도전설이야말로 조선 지배의 당위성을 보장하는 이야기였음이 분명하다. 섬나라인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한 행위의 정당성을 찾는 일에 부심했던 그들은 제주사람들이 이상향이라고 여기는 이어도가 섬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조선사람들의 이상향을 일본으로 비정했다. 제주의 이상향은 이어도, 조선의 이상향은 일본이라는 등식을 만든 것이다.

미지(未知)의 이어도를 기지(旣知)의 이어도로 탈바꿈시킨 전설의 현실화, 그 속에는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 공교롭게도 소코트라 록을 이어도로 비정한 80년대 이후의 이어도해양과학기지 또한 더 이상 이상향이 아니라 한중일 삼국의 첨예한 대립공간이 되어버렸다.

 

*참고자료

강정식, 제주도의 해양신앙, 도서문화27, 도서문화연구소

김동윤, 이여도 담론의 스토리텔링 과정 연구,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14, 원광대학교인문학연구소

제주의 소리, '피안의 섬' 이어도, 19C 문헌서 최초 발견, 2014.11.28.

최현배, 우리말과 글에 對하야(12), 동아일보, 1922.09.10,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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