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격랑과 폭풍이 잦아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 그대로 물명주 빛 물결 위로 실바람이 춤을 춘다. 구름 너울에 바람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여신이 심술을 거둔 것 같다. “때가 되었다. 삼대선 황포돛대 높이 올려라! 도사공아! 출항이다. 무른 메주 즈려 밟듯 먼 바다로 배 띄워가자!” 소금바람에 잔뼈가 굵은 선장의 목소리가 어찌나 걸쭉한지 흥타령에 가깝다. “그래, 이제 드디어 출사를 하는구나. 내 기필코 이번 과거에서 급제하리라. 비나이다. 비나이다. 사해바다 용왕님네, 부디 순풍을 내주시어 뭍까지 한달음에 닿게 하소서.” 제주선비 김복수는 이렇게 단단히 각오를 다지며 배에 올랐으리라.

지금과 같았으면 쾌속선을 타거나 그보다 훨씬 좋은 비행기를 타고 훌쩍 날아가기라도 하련만 옛사람들의 육지출행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때문에 포구 한 귀퉁이에 해신사를 차려놓고 무사고를 기원하지 않고서는 뱃전에 오르는 일이 일절 없었다. 그렇게 지극정성을 다해 뱃길을 떠나더라도 풍파를 만나 익사하거나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땅에 표착하는 일도 잦았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기행문이라는 최부의 표해록(漂海錄)도 제주바다에서 비롯된 표류기이다. 애월읍 애월리 출신의 선비 장한철은 과것길에 올랐다가 유구, 지금의 오키나와까지 표류했다 돌아온 사연을 같은 제목의 표해록으로 남겼다.

여기 장한철처럼 과것길에 올랐다가 이역만리 타국까지 가야했던 제주선비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때는 조선시대였다. 제주의 선비 김복수를 실은 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장쾌한 질주를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뜻밖의 폭풍우를 만난다. 파도에 풍비박산이 난 배의 잔해에 힘겹게 의지한 채 밤과 낮이 몇 차례나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표류가 이어졌다. 하늘이 도왔는지 구사일생으로 마른 땅을 밟게 된 김복수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열대의 야자수가 웃자란 난생처음 보는 해변이었다. 누군가의 인도에 이끌려 표류민촌에 지친 몸을 뉘고서야 이곳이 말로만 듣던 안남국(安南國-오늘날의 베트남)임을 알고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이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며 김복수는 마음을 다잡고 타국생활을 시작했다.

표류민촌에는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로 인종전시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은 안 통해도 너나없이 같은 신세라 가족처럼 더부살이를 하던 중에 김복수는 유구국에서 표류해온 임춘향이라는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 세월이 흘러 십여 년이 지나자 두 사람 사이에 아들 셋, 딸 셋이 생겨나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향한 향수를 가족애로 달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청나게 큰 상선이 항구에 들어왔다. 거대한 배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복수 부부도 인파 속에서 배를 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구경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그 배의 선원을 만난 부부는 놀라운 말을 듣게 된다. 그 배는 이제 곧 출항해 유구와 제주를 거쳐 조선까지 갈 계획이란다. 이에 복수 부부는 자신들을 태워달라며 애원성을 토하며 통사정한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뱃사람들의 금기 중에 낯선 여인을 태우면 반드시 난파당한다는 말이었다. 복수는 태어줄 수 있어도 춘향은 안 된다는 말에 포기하려는 순간 춘향은 복수를 설득한다. 혼자서라도 배를 타서 유구엘 가시라. 그곳에서 자신의 오랍동생 임춘영을 만나 그와 제주를 찾은 뒤에 다시 자기를 찾아 안남으로 돌아오면 될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전혀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지만 복수는 춘향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이후 상선을 타고 유구에 도착한 복수는 임춘영을 만나 자신들의 사연을 전한 뒤 그의 배를 타고 제주를 향한다. 제주에 도착한 춘영의 배는 며칠 간 항구에 정박하는 것 말고는 일체의 하선을 금한다는 조선의 국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천만다행이도 복수는 제주사람이기에 고향마을 찾아갈 수 있었고, 춘영은 출항날짜를 받아놓고 복수를 기다려야 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복수가 돌아오자 그의 집안은 난리 북새통이 되었다. 몇날 며칠 긴긴 잔치가 이어졌다. 상봉의 기쁨에 취한 복수는 그만 출항날짜를 놓치고 말았다. 복수를 기다리던 춘영은 조선의 법에 따라 속절없이 떠나기에 이른다. 완전한 생이별이 되고 만 것이다. 출륙금지령으로 더는 제주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복수는 휘영청 달이 뜨는 밤이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닷가의 높은 절벽에 올라섰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통곡을 하다 지치면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하는 제주민요 오돌또기를 부르며 수절했다고 전한다.

구구절절이 길게 늘어놓은 이 이야기는 오돌또기라는 제주민요 속 ‘춘향’이라는 인물에 얽힌 전설이다. 이 이야기에 대해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근래에 입담 좋은 누군가가 만들어서 유포시킨 20세기의 창작물이라고 여겨왔다. 더욱이 노랫말과 선율이 다른 지방의 민요 ‘사당패소리’와 매우 비슷해서 육지의 민요가 제주에 유입된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역된 이원조의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는 김복수가 실존인물이며 그의 안남표류기 또한 사실로 기록되어 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더는 임춘향을 볼 수 없이 절벽 위에서 오돌또기를 불렀다는 김복수의 행적에 대한 전설의 내용과 달리 그저 먼 바다를 바라보며 곡(哭)을 했다는 사실 뿐이다. 민요 오돌또기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구자들은 김복수의 표류기와 이 노래는 큰 관계가 없다며 기존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반박되기 시작했다. 노랫말을 중심으로 육지의 민요가 유입된 것이라는 해석은 선율 분석을 통해 그릇된 판단임이 밝혀졌다. 알다시피 한국 민요의 특징 중 하나는 5음계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제주민요 오돌또기의 후렴부에는 반음이 나타나고 있어서 6음계를 사용하는 남방 음악적인 성격이 뚜렷하다. 더불어 베트남, 태국 등 인도차이나 반도와 중국의 장족 등 소수민족의 전통음악에서도 같은 선율의 노래가 발견되고 있는바 이 또한 남아시아에서 전래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바람이 그렇듯이 제주의 옛사람들에게 바다는 고립과 단절만 야기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미 지난 회에 ‘동이용궁’을 추적하면서 바다를 통해 들어온 수많은 신들과 만난 바 있다. 바다를 항해하는 돌인 ‘무쉐석함’을 타고 쿠로시오해류의 가파른 물살을 가르며 멀리 남아시아까지 오고 갔을 제주의 선인을 상상해보라. 제주의 돌하르방과 닮은 석상이 남아시아 곳곳에 있다. 누군가는 원나라가 탐라총관부를 설치해 지배하던 시기에 유입된 몽고의 훈촐로가 돌하르방의 원형이라고 하지만 남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바다를 접한 나라와 민족마다 판에 박은 듯한 석상들이 즐비하다. 적도를 중심으로 아시아는 물론 멀리 이스터섬의 명물 모아이에 이르기까지 환태평양 석상 벨트가 존재한다는 남방문화론의 주장도 있다. 멀리 인도에서 제주까지 바닷길로 이어지는 수많은 나라에 ‘정낭’과 쌍둥이처럼 닮은 대문이 존재하며 기능조차 똑같다.

신화 속에서 바다를 건너온 신들만으로 남방의 해양문화를 설명하는 것이 빈약하다면 다른 사연도 넘쳐난다. 선사의 신화시대와 역사시대의 경계에 있는 건국신화들을 보시라. 고조선시대부터 삼국시대의 건국신화들은 하늘에서 하강한 신이 나라를 열었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탐라의 신화는 다르다. 고량부 삼신인이 땅에서 솟아났다. ‘하로산또’라는 이름을 지닌 수많은 신들이 ‘할로영주산 상상고고리 섯어깨’라는 한라산 꼭대기에서 솟아났다. 무쉐석함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이야기를 ‘상주표착(箱舟漂着)’의 신화라고 부르고, 땅에서 솟아나는 신들의 이야기를 ‘지중용출(地中湧出)’의 신화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 형태는 제주에서 바닷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 주로 발견된다. 예전에 살펴본 ‘돌미럭’의 현신도 남방계통의 신화다. 우리나라 다른 지역의 미륵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속에서 솟아난다. 그와 달리 제주의 미륵은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다. 이 또한 남방의 신화가 지니는 공통점이다. 이렇게 제주도 문화의 퇴적층 맨 밑바닥에는 남방의 해양문화가 댓돌처럼 단단하게 박혀 있다. 그 선사시대의 퇴적층 위로 역사시대의 산물인 북방의 대륙문화가 쌓이며 뒤섞인 것이 오늘날 제주의 신화이며 민속이다.

제주도 굿의 무악기 연물-데영, 설쒜, 울북

그뿐이 아니다. 바람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아시아의 바다를 누비던 제주의 옛사람들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주 특유의 무속음악인 ‘연물’을 만들어냈다. 연물은 제주의 무속에 사용하는 악기와 음악을 동시에 이르는 말이다. 제주도의 연물 악기는 “울북, 데영, 설쒜, 삼동막 살장귀”로 이루어진다. 울북, 데영, 설쒜는 한 조로 편성되어 춤 반주에 쓰이고, 삼동막 살장귀는 노래의 반주에 쓰인다. 이 가운데 울북과 설쒜는 악기의 모양과 연주법이 각각 일본의 ‘카쿠라 타이코’, 인도네시아의 ‘가믈란’과 매우 비슷하다. 북을 세워놓고 양손을 교차하며 연주하는 방식이나 설쒜를 눕혀놓고 위 아래로 내려치는 것은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제주 특유의 삼동막 살장귀의 경우에는 고려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장고가 제주까지 전파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중동과 인도, 남아시아 등지의 장고류의 악기인 ‘무리당감’ 등과 매우 비슷한 모양과 연주법을 지니고 있어서 이 또한 남방문화와 혼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아시아의 악기 가믈란-출처 letscc.net

연물의 장단에도 남방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굿음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제주도 연물의 음악적 특징을 쉽사리 알아차린다. 다른 지방의 굿음악은 엇박자 구조로 만들어진 10박자 계통의 리듬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제주의 연물에는 엇박자가 거의 없고, 12박자 계통의 단순한 리듬이 대부분이다. 이를 두고 제주의 연물에 대해 음악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종종 하는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짧은 소견이다.

남아시아의 악기 무리당감-출처 letscc.net

의례의 음악은 하늘과 땅을 울려 신을 일깨우는 기능을 한다. 하늘을 깨우는 음악의 박자는 10박자로 구성된다. 그것은 동양 역법(曆法)의 근간인 천간(天干)과 지지(地支) 중에 천간을 뜻한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십간이 10박자로 구현된 것이다. 12박자는 당연히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십이지와 맞아떨어지는 땅을 울리는 음악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을 섬기는 신화의 대륙문화, 땅에서 솟아난 신을 섬기는 신화의 해양문화가 낳은 차이인 것이다.

음악이 이러하니 다른 지방과 달리 제주의 굿춤은 수직적인 점프나 도약이 많지 않고 수평적인 이동 위주의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또한 수직적인 우주관이 아닌 수평적인 우주관과 잇닿아 있다. 저승이 반드시 지하에 있거나 하늘이 천공에만 있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제주의 신화관이며 남방의 해양문화가 빚어낸 결과다.

조천읍 신흥리 잠수굿 中 굿의 시작을 연물연주로 하늘에 고하는 '삼석울림'

이렇게 바람과 물결은 제주를 세계 곳곳으로 인도했다. 제주의 굿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요왕ᄃᆞ리’, ‘시왕ᄃᆞ리’, ‘할망ᄃᆞ리’, 등이 섬과 섬, 섬과 대륙을 이어주던 신들의 다리이다. 신들의 다리는 제주를 에워싼 바다를 자유로이 오가는 바람과 물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대륙문화의 남방한계선이며 해양문화의 북방한계선인 제주는 문화지리학적 가치가 무궁무진한 섬이다. 누가 섬이 고립된 공간이라고 했던가. 섬은 바람과 물결로 세상 모든 곳과 이어진 연대와 교류의 공간이다.

*참고자료

김병모,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1, 2, 고래실

이원조,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1, 2 , 제주교육박물관

현용준, 무속신화와 문헌신화,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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