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요왕연맞이로~ 제청신도업이웨다~.” 진녹색저고리에 연반물치마를 곱게 차려 입은 심방이 치렁치렁한 백지 술이 달린 신칼을 휘휘 내젖는다. 바람이 숨죽였다지만 그래도 바닷바람이라 야트막한 돌을 얼키설키 쌓아 에두른 각시당의 담장은 더없는 바람막이다. 어디 바람막이일 뿐인가. ‘벨방 바당 일만ᄌᆞᆷ수 일만어부’들을 살뜰히 보살펴 주시는 신전님의 성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영등달 열사흘의 구좌읍 하도마을 각시당은 빼곡하게 들어찬 ᄌᆞᆷ수들로 부산하다. 이른 아침 멀리 떨어진 본향당에서 당기(堂旗)를 모셔오는 일부터 시작해 초감제를 치르다보면 금세 점심나절이라 잠복했던 시장기가 득달같이 달려든다. 근처의 해녀탈의장에서 뜨뜻한 국물에 한 타래 말아먹은 국수 맛이 가시기도 이렇게 요왕맞이를 벌여 용왕 길을 닦는 것이다.

골골이 파인 주름살로 물아래 인생사를 대신 말하는 상군ᄌᆞᆷ수들부터 그네들의 딸이나 진배없는 하군ᄌᆞᆷ수들까지 궁둥이를 맞대고 쪼그려 앉아 심방의 몸짓에 눈길을 고정한다. 합장한 손을 쉴 새 없이 비벼가며 웅얼거리는 모습만큼 거룩하게 보이는 것도 없다. ‘괴낭~ 들낭 굉굉’ 요란한 연물장단에 흥을 참지 못하는 노인들은 심방 옆에서 오금을 들썩거리기도 한다.

굿이 말미에 이르러 짚배를 바다에 띄우고, ᄌᆞᆷ수들 개개인이 쌀, 향가지, 동전 따위를 백지에 곱게 싸서 주먹만 하게 만든 ‘지’를 물결 위로 던진다. 이른바 ‘지드림’이다. 용왕님 전에 한 해 물질의 무탈을 바라며 드리는 지에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다. 수십 명의 ᄌᆞᆷ수들이 바다를 향해 기다랗게 뻗은 둑을 따라 긴 행렬을 만드는 모습도 장관이다.

1980년대 초반에 명맥이 끊겼던 하도리 영등굿을 몇 년 전에 복원해 이렇게 이어오고 있다. 나 또한 이 일에 참가하며 복원이 가능할까 반신반의했지만 순풍에 돛 단 듯이 매끄럽게 진행되어 지금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굿을 치르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사정도 있었고, 워낙 바다 밭이 넓고 마을 안에 일곱 개 동네마다 ᄌᆞᆷ수회가 따로 있던 탓에 개별적으로 치성을 하며 굿이 중단되었었다. 그러나 다시 합심해 일사천리로 영등굿을 벌이는 광경을 지켜보며 목숨 건 바다 일은 믿음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ᄌᆞᆷ수질은 팔자에 태운 것이며, 그 일을 업 삼아 산다는 바다의 신성에 대한 믿음 없이는 엄두조차 못 낼 일이 아닌가.

제주섬토박이들은 ‘팔자에 태운’이란 말을 이따금씩 쓴다. 팔자에 타고 났다거나 실렸다는 말로 필연적인 운명이란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주비행사의 유영 같은 삶을 누가 살려고 하겠는가. 이 때문에 제주의 여성을 이야기할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으뜸으로 꼽는 것이 ᄌᆞᆷ수다. 생사를 오가는 바다 밭일에 목숨을 건 제주 ᄌᆞᆷ수의 믿음은 천 길 물속처럼 깊고 지극하다. 팔자에 태운 운명의 ᄌᆞᆷ수질이기에 요왕을 믿고 영등을 믿을 수밖에 없다.

여기 팔자에 태운 ᄌᆞᆷ수가 집안에 태운 조상신으로 좌정한 이야기가 있다. ‘구실할망’이란 여인의 정령이 주인공이다. 구슬을 따는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뜻의 ‘구실할망본풀이’는 제주의 다양한 본풀이 중 조상신본풀이에 속한다. 조상신본풀이는 일반신본풀이, 당신본풀이와 함께 제주도 무속신화의 세 가지 갈래를 이룬다.

일반신본풀이는 사람의 생로병사와 의식주 전반에 걸친 제반사항을 관장하는 신들의 이야기로 실제 굿판에서는 보통 ‘열두 본풀이’라고 부른다. 열두 본풀이에는 ‘천지왕본풀이, 멩진국할마님본풀이, 마누라본풀이, 초공본풀이, 이공본풀이, 삼공본풀이, 세경본풀이, 체서본풀이, 문전본풀이, 칠성본풀이, 지장본풀이, 멩감본풀이’ 등이 있다.

당신본풀이는 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당(堂)과 당신(堂神)들의 내력을 담은 이야기를 가리킨다. 일반신본풀이가 매우 긴 줄거리를 갖는 것에 비해 당신본풀이는 채 몇 마디도 안 되는 짧은 것에서부터 매우 긴 줄거리를 가진 것까지 다양하다.

조상신본풀이는 ‘조상, 일월, 일월조상, 군웅일월’ 등으로 불리는 조상신들의 이야기로 특정한 집안에서만 섬기는 게 보통이다. 제주의 굿에서는 조상신을 말할 때 ‘나한테 태운 조상’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조상신은 대체로 실존했던 조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경우에 따라 특수한 가업 때문에 조상이 아닌 신을 모시는 사례도 있다. ‘구실할망본풀이’는 조천읍 신촌리 큰물머리 나주김씨 집안에서 전해오는 사연이다.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옛날 신촌마을 큰물머리 김동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제주에서 나랏님께 올리는 진상품을 운반하는 소임을 맡게 되었다. 한양에서 일을 마친 뒤 서대문 밖으로 나가던 김동지의 귓전에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허 정승의 앳된 따님아기씨였는데, 부모의 심기를 거슬려 쫓겨난 터라 김동지와 마주치자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제주에서는 섬 밖으로 사람이 들고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서 김동지는 불쌍한 아기씨를 도포자락에 감춘 채 배에 올라 아무도 모르게 배 밑창으로 인도한다.

배가 제주에 닿자 김동지는 아기씨를 쥐도 새도 모르는 한밤중에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다락 속에 숨겨놓고 기른다. 힘겨운 다락 생활이었지만 꿋꿋하게 이겨낸 아기씨는 열여덟 살 꽃처녀가 되자 자신도 밥값을 하겠다며 물질에 나서려고 한다. 마지못해 허락한 김동지는 테왁이며 비창에 망사리까지 꼼꼼하게 마련해준다.

팔자에 태운 탓인지 아기씨의 물질 솜씨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 어느새 둘째가라면 서러운 상군ᄌᆞᆷ수의 반열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신통하게도 잡아들이는 씨알 굵은 전복마다 금진주, 은진주가 들어 있어 김동지의 집안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고, 정 또한 깊어져서 아기씨의 청혼으로 두 사람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나날이 잡아들이는 전복진주가 늘어나자 아기씨가 임금께 진상하자는 제안을 했고 김동지는 그대로 실행했다. 이에 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동지(同知)벼슬과 함께 금은보화를 내려준다. 동지벼슬과 넉넉한 살림으로 근심 없는 한 평생을 살던 두 사람은 딸을 아홉이나 낳는다.

늘그막에 다다른 아기씨는 장성한 아홉 딸을 불러놓고 자신은 죽은 뒤에 김씨 집안에 ‘구실할망’으로 들어앉을 터이니 제사와 명절은 물론 혹여 굿이라도 할 때에는 풍악소리 울리며 정성을 기울여달라고 부탁한다. 아기씨의 뜻대로 김씨 일가에서는 대대로 ‘구실할망’을 섬기게 되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제주에 전해오는 수많은 조상신본풀이들과 사뭇 다른 결말을 보이고 있다. 대다수의 조상신본풀이는 비극적 주인공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를테면 무병에 걸린 딸아이를 죽게 만들어 그 원혼이 집안을 상대로 해코지를 하는 탓에 제향을 바치게 되었다는 내력담이 많다. ‘구실할망본풀이’와 거의 내용이 일치하는 ‘광청아기본풀이’만 보아도 쉽게 확인된다.

‘광청아기본풀이’는 구좌읍 동김녕마을의 송씨 집안에 전해오는 조상신본풀이인데, 송동지가 한양으로 진상을 갔다가 광청아기라는 여인을 만나는 일에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하룻밤 뒤면 궁녀가 되어야 할 운명에 놓인 광청아기를 우연히 만난 송동지가 그의 간청으로 인연을 맺는다. 짧은 인연의 종지부를 찍은 송동지는 그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가 다시 오른 진상길에서 임신한 광청아기와 맞닥뜨린다. 출륙금지령이 두려운 송동지가 아무도 몰래 뱃길에 오르려는데, 그의 뒤를 밟은 광청아기도 따라서 배에 오르려다 그만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그 뒤 송동지의 막내딸 몸에 빙의한 광청아기가 한풀이를 하자 송씨 집안에서 대대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이야기는 출륙금지령으로 족쇄가 채워졌던 제주의 역사와 더불어 ᄌᆞᆷ수들의 생활사를 보여준다. 가뜩이나 삶의 환경이 척박한 섬인데다 탐관오리들의 수탈 또한 극심해 제주를 탈출해 뭍으로 도망치던 사람들이 많아 조선시대에는 출륙금지령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조정의 입장에서는 조세는 물론 부역을 담당할 백성들이 줄줄이 도망치는 사태를 목도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를 막기 위해 내려진 것이 출륙금지령이었다. 고향을 떠나 전라도와 경상도는 막론하고 멀리 중국과 일본까지 가서 서러운 타향살이신세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나은 선택이었다. 당시 제주에는 ‘육고역(六苦役)’이란 게 있었다. 백성이라면 당연히 군역을 비롯한 각종 부역의 의무가 있었던 시대인데 제주의 그것은 혹독하기 그지없는 일이어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잠녀(潛女), 포작(浦作), 목자(牧子), 과원직(果園直), 선격(船格), 답한(沓漢)’의 육고역, 이 중에서도 가장 모진 것이 잠녀라고 불리던 ᄌᆞᆷ수질이었다.

사정이 이러한데 ‘구실할망본풀이’는 전혀 다른 미담으로 전개된다. 귀하디귀한 진주를 손쉽게 구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좀체 동의하기 어렵다.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어쩌다 얻은 귀한 진주 몇 알을 진상한 것이 부풀려져 이런 이야기로 발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탐라순력도 中 병담범주(屛潭泛舟) 속 물질하는 잠수들

제주에 전복진주가 그렇게도 많았을까? 지금으로 봐서는 많았다기보다 유명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고려사에 탐라 구당사 윤응균이 문종임금에게 제주에서 구한 진주 두 개를 바쳤는데 너무나 황홀한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야명주(夜明珠)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황홀한 보석이 제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구실할망본풀이’는 사실여부를 떠난 신화적 가공물이다. 물질을 할 운명을 갖고 태어난 ‘팔자에 태운 ᄌᆞᆷ수질’을 하는 여인이 ‘집안에 태운 조상’으로 좌정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대목은 제주ᄌᆞᆷ수들의 비중이다. 박토가 대부분이라 소출이 작은 탓에 일찍부터 제주에서는 소농경제 중심의 자급자족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장남이라도 결혼하면 분가하는 문화는 숟가락 숫자가 많으면 그만큼 굶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빚어낸 관습이다.

한 집안에서 남자만 노동하는 것도 막막한 일이었다. 때문에 제주의 옛 여인들은 남자 못지않은 노동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반농반어의 쉴 새 없는 노동 가운데 ᄌᆞᆷ수질이 여성들의 주업이 된 것도 이와 같은 배경 때문이다. 물론 먼 옛날에는 남성도 ᄌᆞᆷ수질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남녀가 발가벗고 자맥질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유교적 시선 때문에 언제부턴가 여성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구좌읍 하도리 영등굿 中 지드림

다시 하도리 영등굿을 떠올린다. 어느새 현무암을 닮아버린 거친 손을 도두 모으고 쪼그려 앉은 ᄌᆞᆷ수들을 보면 ‘강인한 제주해녀’라며 여기저기 광고하는 프로파간다의 문화정치에 울화통이 터지려고 한다. ᄌᆞᆷ수들의 농담처럼 뱉는 “ᄌᆞᆷ수덜은 기사 쎈 게 아니라 팔자가 쎈 거주.”라는 신세타령이 딱 들어맞는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팔자에 태운 ᄌᆞᆷ수질’을 하는 것이다. 그네들도 여리고 여린 여성이며 물질 없는 편안한 삶을 꿈꾸는 보통사람들일 뿐이다.

구좌읍 하도리 영등맞이에서 잠수들이 '지'를 싸는 모습

유네스코문화유산 지정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ᄌᆞᆷ수의 슈퍼우먼화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해녀축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발표와 지정토론이 끝난 뒤 이어진 방청객 토론에서 도두동의 ᄌᆞᆷ수 한 분이 마이크를 요청했다. “우린 ᄀᆞ만이 이신디 ᄌᆞᆷ수여, ᄌᆞᆷ녜여, 해녀여 허는 축젠 무신 말이우꽈.” ᄌᆞᆷ수가 그렇게 자랑스럽다면 더 이상 부끄러운 짓을 벌이지 말자.

*참고자료

김나영, 조선후기 호적자료를 통해 본 鮑作의 사회적 지위, 역사민속학29, 한국역사민속학회

김헌선, 제주도 조상신본풀이연구, 보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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