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며 뛰어오듯 살아오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내가 참 사회로부터 받은 게 많은 거에요. 그 고마움을 주위에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세월이 벌써 28년을 지나고 있네요.”

첫 자원봉사는 ‘자원봉사’라는 개념이 굳이 있지도 않았던 88년 봄이었다. 그 전년도에 사무관으로 승진되고서야 숨도 고를 수 있었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조금 생겼기 때문이다.

뭘 해야지 하고 마음먹을 필요도 없었다. 평소 독거노인의 말벗이 되고 싶었던 생각을 알고 주위분이 소개해준 건입동의 한 장애인 독거노인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그렇게 ‘봉사’를 시작했다. 그 노인과는 20년 인연을 이어갔다. 임종 때는, 없는 가족을 대신해 입관까지 해드렸었다. 이상호 제주사라의집 원장의 이야기다.

이상호 원장(68. 제주사라의집) △자원봉사 이력 △88년 첫 독거노인 자워봉사 이후 현재까지 활동 △2000년~ 독거노인 밑반찬 배달 시작 △2006년 ~ 제주애덕의집 방문봉사(농협직원들과 함께) △2006년~ 제주시청 무한사랑봉사회, 창암재활원 봉사 △2007년~ 도내 한센병 가정 돌보기(다미안회) △2006~ 천주교 시자 임종 시 염 봉사활동 △2012~2013 호스피스 봉사활동 △2014~제주교도소 방문 수감자 교화, 활동보조 △2014~ 광양성당 노인대학장 △2008~2015 제주시자원봉사센터장 △2015~제주사라의 집 원장직 봉사

그는 공직자 생활만 수십년. 2006년도에는 제주시 부시장도 역임했었다. 1987년 지방공무원 사무관으로 승진하면서 그 다음해부터 독거노인을 보살피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제주시청의 ‘무한사랑봉사회’도 공직 퇴임을 하고난 지금까지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주로 독거노인을 보살피는 일부터 장애인 활동보조까지 웬만한 봉사활동은 다 거쳐왔다.

“저보다 더한 분들이 훨씬 많지요. 그분들 노고에 비하면 제 봉사는 두드러질 것 없어요. 다만, 꾸준히 그저 꾸준히 해왔지요.”

이제 곧 일흔을 앞둔 이 원장은 봉사와 떼놓을 수 없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도 그를 드러내는 일이 영 익숙하지 않다. 흔한 활동사진 한 장 품고 있지 않았다. 누구에게 보일려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받은 유공자원봉사자상 ‘국무총리상’ 시상식 사진 한 장 청해드렸더니, 없다고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제주사라의 집 원장 활동도 무보수로 임하고 있다.

29명의 장애인 치매 노인들이 생활하는 제주사라의 집. 이상호 원장은 지난해 8월부터 무보수 봉사직으로 원장을 맡고 있다.

“나만의 약속이니까 지켜왔던 거죠. 어르신의 말벗이 되고, 어르신의 밑반찬을 전해드리는 일. 누군가의 외로움을 덜어드리고 어려움을 나누는 일이 제 보람이었으니까요.”

2008년 제주시자원봉사센터장을 시작한 그 해 전국 최우수 자원봉사센터로 선정됐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연속 3회에 걸쳐 같은 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1월 센터장 일을 마쳤지만 보람되는 기억 중 하나다.

“공직자 생활을 수 십년 해왔던 노하우가 어느 정도 반영됐던 것 같아요. 자원봉사의 체계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체계적으로 갖춰갔죠. 자원봉사 인구도 꾸준히 늘어 2008년 제주시자원봉사센터에 등록된 단체가 381개였던 것이 지난해 1000여개 단체까지 늘었죠. 워낙 부지런히 활동하는 분들도 많았고요.”

행정의 입장도 알고, 자원봉사자의 입장도 아는 그다. 때문에 행정과 자원봉사자의 ‘가교’역할을 해낼 수 있기도 했다. 어느 땐가는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80세의 독거노인을 도와드린 일도 있었다. 여러 사정으로 호적상 실종신고 돼 주민등록증이 없어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노인이었다. 그는, 그의 행정의 노하우로 호적 복원과 주민등록증 발급을 무리 없이 도와드릴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노인에게 매달 비정기적으로 찾아가 인사드리고 새해 세배도 빠짐없이 찾아가고 있다.

“행정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소외된 이웃들이 여전히 많아요. 그들에게까지 도움을 넓히기 위해선 관심도 중요하지만 단체와 기관, 개인의 조금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이상호 원장이 제주시 부시장이던 2006년부터 제주시청 직원들과 함께 활동해온 '무한사랑봉사회'. 퇴임 후인 지금까지도 봉사회 활동으로 매달 한센병 가정과 창암재활원 등을 찾아가고 있다.

자원봉사자로서 현장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다. 제주시만 하더라도 자원봉사자 인구가 10만명이 넘어가는데 활동인구가 그 절반 정도에 머무르는 건, 아직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과 교육, 행정의 밀도 등 여러 박자가 완전히 맞지 않다는 판단이다.

“기본적으로 봉사는 ‘무조건의 희생’정신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제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실비’정도의 지원이 필요한 때이기도 해요. 마일리지 제도 등 지금의 좋은 제도들을 조금 더 살리면 현재의 자원봉사자들을 유지하기도, 비활동 인구를 끌어올 수도 있겠죠.”

자원봉사도 이젠 양이 아닌 질로 성장시켜야 할 때라는 말이다. 봉사인식을 키울 수 있는 행정의 홍보와 교육 노력도 더해져야 한다고 이 원장은 강조했다.

30년 자원봉사 인생을 돌아보며, 함께 하는 봉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더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숨은 곳, 이곳 저곳에서 항상 봉사를 해오고 계신 선후배님들이 많지요. 저도 힘이 되는 한 나이 상관없이 언제든 동참하겠습니다. 기력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멈추지 않을 거에요”

지난해 12월 이상호 원장은 제주시자원봉사센터장을 퇴임한 직후 유공자원봉사자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평소 자신이 하는 일을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 그는, 활동사진은 물론 시상식 사진도 갖고 있지 않아 관계 기관으로부터 기자가 따로 요청해 받았다.

이 원장에겐 또 다른 계획이 있다. 말기암 환자나 임종을 앞둔 환자를 보살피는 ‘호스피스’로서의 활동이다. 지난 2008년 제주대학교 병원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수강하기도 했지만, 바쁜 활동으로 꾸준히 이어오질 못 했다는 아쉬움이 남아서다.

그는 천주교인으로 신자들 임종 시 염 봉사를 2006년부터 지금까지도 해오고 있다. 그는, 죽음을 앞두거나 죽은 이들에 대한 봉사로 삶의 끝부분까지 도움의 손을 전하고 싶단다.

“자원봉사란 특별한 게 아니에요. 우리의 삶과 맞닿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에 온기를 전하는 일일 뿐이죠. 하지만, 그렇기에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되겠죠.”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