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제주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성난 시민의 함성이 가을밤 하늘을 덮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에 기가 막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분노의 함성이었다.

11일 밤,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 등에서 진행되었던 촛불집회에는 행사 주최 측 추산으로 100여 만 명이 참석하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최대 인파였다.

한 여인의 치마폭에서 놀아난 무능한 정권, 무책임한 정부, 무분별한 꼭두각시 권력을 규탄하는 분노한 시민 행렬은 노도(怒濤) 같았다.

공적 기능 붕괴와 소수 계층에 의한 부패 스캔들이 국가 시스템을 농락하며 와해시킨 참담한 현실에 대한 분노였고 항거였다.

그 도도한 물결은 거침없이 도심을 휩쓸었지만 평화로웠고 질서 있었다.

빛나는 민주시민 의식을 세계만방에 돋보이게 한 집회문화 기록이었다.

어린 아들과 딸을 동반한 가족들이 손에 손 잡고 촛불을 들었다.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젊은이들은 스마튼 폰 후레쉬를 터뜨리며 목소리를 모았다.

연예인들은 춤과 노래로 언제 폭발할지 모를 분노한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다독였다.

경찰과의 대치로 과격한 돌출 행동이 염려돼 ‘질서’와 ‘비폭력’을 외치는 성숙한 시위문화는 민주시민의 역량이었다.

평화시위를 당부하는 경찰의 대응도 유연한 인내심을 발휘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유연한 경찰의 대응으로 1백 만 명이 참여한 촛불 집회는 큰 불상사 없이 마무리 되었다.

그렇다고 이처럼 거대 인파가 참여하는 분노한 항의 집회에 마냥 손뼉 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제어능력이 개입하지 못할 정도의 돌발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손 쓸 수 없는 사회국가적 혼란과 위기가 닥칠지 모를 일이다.

용광로 같은 분노가 감당할 수 없는 과격 폭력 시위로 폭발했을 때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끔찍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안위를 걱정하고 국민 불안과 국민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혁명적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대통령의 결단이다. 그것도 오늘(14일) 당장 내놔야 한다. 기회를 잃으면 겉잡을 수없는 파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1백만 촛불 민심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래야 한다.

국민은 시민에 의해 무자비하게 쫓겨나는 불행하고 비극적 대통령을 바라지 않는다.

국정중단과 국정 공백에 의한 파국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법은 없는가. 하야에 버금할 수 있는 자발적 ‘2선 후퇴’도 하나의 선택지다.

정치나 정무 적 꼼수보다는 새누리당을 탈당 하여 당적을 버리고 모든 권력을 내놓는 것이 첫걸음이다.

국방과 외교안보 등 국가원수·군 통수권자로서의 상징적 고유권한을 제외하고 국회가 추천한 국무총리에 내치의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스스로 상징성만을 갖는 ‘식물대통령’임을 자임하고 비상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거국구국내각 구성은 지금 내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옵션이다.

물론 이것으로 사태와 관련, 대통령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적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고 위법 사항이 드러나면 대통령 자신을 포함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체적 진싱 규명’을 위한 환골탈태의 검찰 수사 능력이 기대되는 이유다.

지금까지의 검찰권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해소하는 절체절명의 기회다. 검찰이 사느냐 죽느냐의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대통령도 검찰 수사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만이 아니라 어떠한 종류의 특검도 마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회 청문회는 물론 국정 조사 등 진실 규명 차원의 가능한 모든 법적 초치를 빨리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당당하게 검찰에 나가 법 앞에 발가벗어야 한다.

재임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퇴임 후라도 감옥에 갈 각오로 책임지겠다고 비장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1백만 촛불 민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국가 위기의 비상사태를 위한 여야 정치권의 역할도 막중하다.

지리멸렬 상태의 여당은 물론 야권도 사태의 심각성이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회의 정부 감시·견제 기능을 포기함으로써 나타난 현상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더 이상 여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사면초가에 고립무원으로 퇴로가 막힌 대통령의 곤경에 ‘친박’ ‘비박’ 간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불똥이 튈까 모른 채 손사래 치는 여당이 제대로 된 여당일 수는 없다.

해체해야 할 폐족 일 뿐이다.

대통령이 잘 나갈 때 바지 가랭이에 매달려 공천을 따내고 호가호위하던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대통령을 ‘누님’이라 아양 떨며 교만 부리던 그 잘난 ‘동생’들은 어디에 숨어 있나.

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며 따르고 곤경에 처하면 모른 채 곁눈질이나 하는 염랑세태(炎浪世態) 집단 일 수밖에 없다.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표정관리하며 ‘박근혜 정부의 민심 이반’ 사태를 즐기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여소야대 구조의 야3당은 정부 여당을 향해 ‘불통이오 오만과 독선’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국회 국무총리 추천’을 제안하자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고 청와대의 여야영수 회담 제안도 또 다른 조건을 걸며 거절하고 길거리 투쟁을 택했다.

‘불통’을 욕하면서 ‘불통’고집에 사로잡힌 꼴이다.

야권은 촛불 민심에 편승하여 대통령의 ‘백기 투항’이나 ‘완전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 질서를 파괴 했다는 이유로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 일각에서도 “혁명과 구데타가 아니고서는 본인 의사에 반해서 하야 시킬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헌정 질서와 헌법의 규정 절차에 따라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묻고 추궁해야 한다‘는 논리다.

‘대통령 하야’ 등 ‘2선 후퇴 요구는 위헌적 발상이기 때문에 차라리 탄핵 절차를 밟는 것이 법적으로, 헌법 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이라는 야권 중견 정치인의 지적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국민의 당 소속 박주선 국회부의장의 주장이다.

박 부의장은 문제인 더민주당 전대표가 박대통령을 향해 ‘군 통수권 등 고유권한을 내려놔야 한다’는 주장에 “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을 하든 기소를 해서 구속을 하는 것이지, 국민이 만들어 준 권력을 통째로 탈취하려는 자세는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야권 일각의 시각을 감안해서라도 국회는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국회추천 총리 거국 내각 구성등 국정 혼란 수습에 동참해야 한다.

1백만 촛불집회 민심도 여야 정치권 등 국회기능 정상화를 통한 국정 혼란 수습을 요구하는 것이지 당리당략이나 차기 권력 욕심으로 혼란을 부추기고 정권을 타도하라는 주문은 아닌 것이다.

비상한 시국에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의 국회에 보내는 국민적 요구는 그만큼 엄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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